호가 난다는 말은 아주 좋은 말인데 삐딱선이 느껴지는 말이다. 쪼께 유식허게 말혀서 부정적인 뉘앙스가 풍긴다는 야그다. 호래이는 뒈져서 까죽을 둠서 다시 살고 사람은 뒤지고 나서 이름석자 새길라꼬 아등바등 지랄을 친다는 말이렸다. 호랑이는 애초부터 이름이 없으니 가죽이라도 남겨야 되고 사람은 가죽이라 해봐야 낯가죽 외엔 얇부리해서 쓸 수도 없는데다 뺀질거리기가 얌생이 뺨치다보니 가죽 남길 일이 없어 이름에 집착하는 것일 터이다. 해서 이름을 남기려다 보니 그것도 욕심이 발동한 탓인지 이름을 와장창 지어 한사람이 와그르르 여러개의 이름을 동시에 남긴다. 어떤 호가 난 사람은 자니 호니 아호니 별호니 시호니 셀 수 없이 이름이 많다.
요즈음도 호를 쓰는 분들을 더러 만나고 대다수가 나이가 지긋하신분들인것 같다. 특히 서예니 동양화니 하는 고전적 예술을 하시는 분들이 주로이고 사진하시는 분들도 호를 사용하시는 분들이 제법 많다. 확실히 호를 쓰시는 분들은 대다수가 고전적인 사진을 주로 찍으신다. 이렇게 선배님들이 수십 년 동안 지고의 세월을 오로지 엇비슷한 작품들만 하니 이제는 새로운 사진을 하고 싶은 것도 인지상정일 것이다. 그러나 배운 도둑질이 그것이라고 늘 그런 사진만 봐온 탓이라 달리 해봐야 된다고 생각은 있지만 도무지 엄두도 안 나고 별 뾰족한 수도 없는 것이 우리네 후배들의 세계이다. 사진이랍시고 시작하고 답답한 마음을 누를 길은 없고 심기일전을 하면 사진이 될까하여 어느 날 홀라당 배코를 쳐버렸다. 집에선 미친놈이라고 불호령이 떨어졌지만 카메라를 메고 나가보면 예우가 보통이 아니었다. 국립극장인가를 갔더니 쟁이들이 무대에 붙어서는 바람에 객석에선 무대가 보이지도 않을 지경이었다.(당시만 해도 사진작가라면 어디든 통제 안 받고 마음껏 촬영할 수 있었다)어쩔 수 없이 무대 앞으로 나갔지만 도무지 낄 틈이 없었다. 그런데 웬걸 내 빡빡머리를 힐끗 보더니 슬금슬금 삼각대를 챙겨 다른 곳으로 자리를 비켜버리는 것이 아닌가? 그때부터 자리를 잡으려면 대가리부터 들이밀면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누구나 다 겪는 과정이지만 다큐를 한다고 한번쯤은 시도해 볼 것이다. 나도 역시 다큐에 흥미를 가지고 지하철이라는 주제를 설정하였다. 참으로 진부한 설정이지만 촬영만큼은 어렵기 짝이 없는 대상이 지하철일 것이다. 어쨌든 낮과 밤이 없이 어두운 지하생활이 시작되었다. 신도림역의 무수한 인파와 푸시맨, 새벽이나 심야에 일제히 잠든 시민들의 피곤한 일상, 나름대로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차곡차곡 기록되고 있었다.
심야의 지하도를 노렸으나 여간 위험한 것이 아니었다. 남대문 경찰서를 가서 협조를 요청하였으나 노숙자들은 경찰로서도 어쩔 수 없다는 거절이었다. 다시 배코를 쳤다. 미친 놈!
지금 생각하면 그 위험한 짓을 어떻게 했는지 꿈같다. 몇 번이나 위험한 고비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나에게도 어느새 이름이 하나 더 만들어 졌다. 까까중, 가짜중, 嘉中(伽中: 이렇게 쓰면 부처님 가운데 토막이란 뜻인데.....)이란 이름이 만들어 진 배경이다. 또 세월이 흐르고 이름이 하나 더 만들어 졌다 누드란 영문 이름이 그것이다.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이름이란 실체도 없는 헛것에 매여 사는 존재인가보다.
어른들은 때에 쩔었지만 파커라도 주워 입있고 박스라도 바닥에 깔았는데, 어린 형제들은 아직도 반바지에 신문지밖에 구하지 못했나보다. 저 아이들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나처럼 아직도 심을 피지 못하고 요 모양일까?
트라이-X인가 감도 400 흑백 필름으로 촬영한 것으로 기억된다. 흑백은 스캔을 맏으면 화질이 젬병이다. 그나마 원본은 컴퓨터 박살나 다 날아간것 같아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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