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8월 필자는 갑자기 부산 근무를 하게 되었다. 5-6개월 정도의 한시적인 근무라 사택이나 전세를 얻을 형편이 못되어 취사는 안하고 잠만 자는 조건으로 아파트 방 한 개를 월세로 얻었다. 지방 근무때 전세 얻었다가 떠날 때 전세 가격 변동이나 새 세입자 구하기 어려워 전세 보증금 회수에 애를 먹거나 일부를 떼이기도 한다는 얘기를 들은 터라서.
방 하나를 보증금 50만원에 월세 20만원으로 12월까지 살기로 하고 입주를 했는데 월세가 싸고 집이 조용해서 좋았다. 주인 할머니는 자식이 없고 할아버지 유산인 아파트 방세와 대학생 하숙을 치면서 어렵게 생활하고 계셨다. 방 셋중 하나는 본인 자신이, 다른 하나는 대학생 하숙을 치고 나머지 하나는 필자한테 월세를 줬던 것이다.
10월이 되니 부산 날씨도 싸늘해져 온수와 난방이 필요해졌는데도 보일러를 켜줄 기미가 안보였다. 밤 11시가 넘으면 전깃불 켜는 것도 빨리 끄라고 하니 TV나 컴퓨터 사용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겨울 방학에는 하숙비 수입도 없어 돈을 아끼느라 할머니는 난방도 켜지 않은 방에서 이불을 쓰고 겨울을 지내시는 것이었다. 난방을 해 달라고 항의도 하고 사정도 해 봤지만 막무가내였고 딱한 할머니 형편을 알면서 계속해서 요구를 할 수도 없어 감수할 수 밖에 없었다. 연말을 코앞에 두고 방을 옮기기도 어렵고 형편을 알면서 계속 싸울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퇴근하고 썰렁한 방이 싫어서 약속이 없을 때는 싸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pc방을 애용했다. 1시간에 천원이라 부담 없이 시간을 보내다 늦은 시각 집으로 갈 때면, 추운 골목길 불켜진 창문에서 도란도란 들려오는 얘기 소리와 정겨운 웃음소리는 여수를 미치도록 자극하였다.객지 생활 혼자하면서 제일 어려운 것은 세끼 다 사 먹어야 하는 식사와 가족을 떠난 외로움이다. 춥거나 비오는 날 저녁 식당에서 혼자 식사를 할 때에는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고 주위 시선이 부담스럽다. 그래서 주색잡기로 외로움을 달래다 신세 망친 동료들도 봐 왔지만 다행히 짧은 기간이라 그런대로 버틸 수 있었다.
이듬해 초 임차 계약이 끝나 서울로 오기전까지 여관방으로 숙소를 옮겼는데 드나들기에 낯이 뜨거웠지만 방 따뜻하지, 온수 나오지, TV도 볼 수 있으니 사람 살 맛이 났다. 여기가 천국이고 온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다. 지금까지 우울하던 세상이 갑자기 좋게 보이고 즐거워져 모처럼의 행복을 만끽했다.
요즘 세상에 온수 나오고 난방 되는 것에 행복해 하고 즐거워하는 사람이 과연 몇 사람이나 될까? 살아가면서 공기나 물의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듯이 우리는 일상의 편리함에 익숙하고 길들여져서 그 고마움을 모르고 산다. 아니 고맙다기보다는 당연한 것을 누린다고 생각한다. 적당한 욕심은 발전을 위해 필요하지만 지나친 욕심은 고통이자 불행이며 우리 인생을 아귀다툼의 전쟁터로 인도한다. 패륜아가 되고 수전노가 되는 끝없는 욕심이 인생을 망치고 세상을 황폐하게 만든다.
아는 사람이 북유럽을 여행한 적이 있었는데 어떤 할아버지가 도로 청소를 하면서 콧노래를 부르더라고 했다. 우리 기준으로 본다면 은퇴해서 늙은 할아버지가 손자 재롱이나 보면서 안락하게 지낼 연세에, 일하는 것도 측은해 보일텐데 거기다가 청소 일을 하면서 무엇이 즐거워서 콧노래를 부르는지 그 노인에게 물어보았답니다. 그러자 노인은 이 나이에 할 일이 있고 사랑하는 가족이 있으니 이보다 더 즐겁고 행복한 일이 있겠느냐고 되묻더라고 했다.
그렇다! 현실에 만족하고 눈높이를 낮추자. 지금 우리가 향유하는 모든 것 - 가족, 재산, 친구, 산, 강...등에 만족하고 감사한다면 그게 바로 행복이고 천국이다. 행복은 무릉도원에, 에베르스트 산 정상에 있는 것도, 청와대나 재벌 회장 금고에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 눈 앞에, 우리가 누리는 삶 속에 있다. 행복은 나의 가슴과 호주머니에 있고, 손을 뻗으면 잡히는 곳에 있다. 결코 먼 곳에 있지 않고 그 것을 얻는데 많은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다. 과욕의 안경을 벗고 아집의 방을 나서면 바로 그 곳에 행복이 있다. 단지 우리들의 끝없는 욕심이 행복을 보지 못하게 느끼지 못하게 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