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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순간의 깨우침으로부터
화전에 가면 쌍굴이라고 부르는 폐 터널이 있다. 일제시대에 일본인들에 의해서 건설된 것으로 얼핏 들은 것 같다. 낡아서 무너질 것 같이 균열도 심하고 겨울이면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얼어붙어 기기묘묘한 고드름이 열린다. 오래전부터 그곳을 세트장으로 많은 촬영을 해 내었고 입상도 여러 개가 나온 걸로 알고 있다. 지금도 중요한 촬영이 구상되면 그곳을 촬영장소로 이용하곤 한다. 나의 퍼포먼스에 정말 많이 등장하는 곳이 그곳이다.
언젠가는 그곳에 페인트를 퍼부어 촬영을 한 적이 있다. 더 높은 곳까지 페인트를 끼얹기 위하여 봉지에 페인트를 담아 집어던져서 칠을 하였다. 세월의 흔적이 주름살처럼 거친 시멘트와 이끼와 바위옷이 슬어 을씨년스러운데 페인트가 줄줄 흘러내리니 처절함이 마치 패싸움을 마친 똘마니의 얼굴같이 처참하여 보였다. 당연히 좋은 작품들이 쏟아졌고 그런 작품에 적이 만족하여 희희낙락이었는데 웬 화가들이 몰려와 거칠게 항의를 하였다. 미협회원들이라는데 이 유적을 즐겨 그린다며 훼손에 대하여 항의를 한 것이다. 유적이라니 유네스코 등재된 유적인가? 이 터널은 내꺼야 네들이 여기 와서 그리지 말거나 내 허락을 받아서 그리도록.... 되받아 치자 멋 적게 물러선다. 후에 가보니 화가들이 숙련된 솜씨로 페인트를 알뜰히 지워 놓은걸 보고 장난이 아닌걸 알았다.
한번은 그 장소에 카리스마가 넘치는 강렬한 눈빛의 모델을 데리고 가서 포트레이트 촬영을 하였다. 한 새내기 사진인이 그날 촬영한 것을 3R 정도로 다 인화를 해 왔다. 아마도 수백장은 족히 되었으리라. 나보다 먼저 그 사진을 쭉 넘겨본 한 고참 사진인이 “이거 왜 찍었냐?” 하고 한마디 내지르고 가벼렸다. 분기가 탱천한 그 분 내게 뭐가 잘못 되었냐고 묻는다. 수백장의 사진을 다 보았는데 안타깝게도 한 장도 쓸 것이 없었다. 그 고참 작가가 화를 낼만도 하다는 생각도 들고 나도 괜스리 부아가 치민다.
“이거 왜 찍었는데?” 나도 똑 같은 소릴 했다.
“찍으라니까 찍었지” 그가 잔뜩 부은 목소리로 내 지른다.
“왜 모델 얼굴만 찍었냐고?”
“아 모델 세워두고 찍으라니까 찍었지”
“모델 낯짝만 찍으려면 좆 빤다고 그 험한데 까지 찾아가서 모델을 세우냐? 여기다 세워도 얼마든지 찍을 텐데”
“흠 듣고 보니 그러네"
그 순간 크게 깨우친바가 있나보다 얼마 후 부터 그의 사진은 확 달라져 있었고 동아국제사진살롱전 입상으로부터 무수한 상이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그렇다. 그 장소를 간 이유가 뭘까? 그리고 그 어떤 자리에 연출 감독이 모델을 배치하였다면 왜 그 자리에 배치하였을까? 연출자가 의도한 것은 무엇일까? 이 장소의 의미는 무엇일까? 여러분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촬영을 하십니까? 잠시만 생각하면 답을 풀 수 있고 사진의 원리를 터득하고 있다면 연출자의 머리꼭대기에서 봉산탈춤을 출수 있을 것이다.
안개속의 그녀를 보고....
이번에 안개속의 그녀 촬영한 작품들을 가지고 오신 몇몇 분들의 사진을 보면서 내가 연출을 잘못한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김옥성선생님 촬영분을 보면서 역시 나의 연출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 회원들 앞으로 공부 열심히 해야 될 것 같더군요. 저부터 열심히 뛰어 보기로 하겠습니다.
배경을 인식하고 화면을 짜임새 구성하고 작가의 의도를 삽입하고 조명의 각도와 노출을 간파하고 색온도를 파악하고 피사계 심도를 계산하고, 화면 안에 들어온 나무한그루, 돌멩이 하나라도 다 화면구성에 어떻게 작용을 할 것인가를 면밀히 분석하여 셔터를 눌러야 되는데 대다수가 모델의 코앞에서 모델만 꽉 차게 촬영을 하셨더군요. 모델이 이쁘서인지? 모델이 유명한 분이라서인지? 아니면 모델 기념촬영을 해 주려 한 것인지? 촬영자의 의도를 알 수가 없더군요. 브렛송은 “인식하라!”, 화이닝거는 “통찰하라!” 아담스는 “결과를 예측하라!” 김가중은 “분석하고 파악하라!”라고 주장합니다. 엎어 치나 메치나 같은 말입니다. 그냥 앞에 있으니 셔터 누르지 마시고 화면을 통해서 왜? 라는 문제를 제기하여야 되는 것 아닙니까? 김옥성 선생님 작품 보면서 속이 다 시원 하더군요. 정말 잘 찍으셨네 하면서 감탄사가 절로 우러나오더군요. 밀때 밀고 당길때 당기고 화면의 구성이 변화 무쌍하고 짜임새가 적절합니다. 배경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카메라의 메카니즘을 적절히 이용하여 아름다움이 넘칩니다.
물론, 자지도 말고 보지도 말고 발로 셔터를 눌러도 그까짓 공모전정도에 입상 몇 개는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기획 자체가 그것을 노리고 한 것이니까요, 부디 이 글 보고 열 받지 마시고 셔터 무조건 누르지 마시고 이모저모 생각해 보고 또 생각해 보고 그러고도 또 따져보고 박으시기 바랍니다.
브렛송이 “작가는 대상과 나에게 최대한 존경을 기울여야 된다.“ 라고 주장하였는데 이 말은 사물을 무심히 보지 말고 자지 말고 유심히 뚫어지게 들여다 본 연후에 박으라는 소리였습니다.
화면에 다른이들의 머리나 삼각대가 많이 촬영되고 자동차가 배경으로 들어 간걸로 보아 작은 키에 몸도 불편하여 좋은 촬영 위치도 확보 하지 못했음이 확실하다.
아래 작품과 맨 위의 예마당 야경은 누구보다도 일찍 도착하여 쉬지 않고 열심히 촬영한 덕분에 얻을 수 있었던 작품입니다. (여기 수록된 작품들은 다 김옥성님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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