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영상 사진전
아프리카나 제주도나 - 다 생명의 땅이므로
장소 : 서울 종로구 관훈동 74. 통큰 갤러리
일시 : 2015. 12. 16(수) ~ 12. 23(수)
롤랑 바르트는 사진에 관한 책 '밝은 방'에서 사진의 엄중한 '사실성'에 주목했다. 사진은 '있는' 사실을 찍어서 '있었던' 사실로 만든다. 이처럼 사진이 무엇보다도 사실을 찍는다는 점은 사진으로 하여금 기본적으로 허구를 담고 있지 못하도록 한다. 안영상의 카메라 렌즈는 사진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속성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는 지점을 겨냥한다. 제주도나 아프리카의 풍경을 아무런 문명의 왜곡이 없는 순수한 눈으로 바라보고 카메라에 담는 그의 방식이 그러하다. 그의 사진은 섣부른 해석을 허용하지 않는다. 마치 시(詩)가 그러한 것처럼, 그가 찍은 사진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풍경을 무심하게 드러내어준다.
가까운 사람이나 가족 또는 사랑하는 사람의 옛모습이 찍힌 사진에서 우리는 시간의 가혹함을 목도한다. 인물사진은 사람이 세월의 흐름을 따라 변하는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줌으로써 시간에 종속된 운명적인 피조물로서의 인간을 어쩔 수 없이 드러낸다. 안영상이 농담처럼 사랑에 빠질까 봐 여자의 사진은 찍지 않는다고 말할 때, 이는 무심코 시간의 이러한 희생자를 피하고 싶어하는 마음에서인지도 모른다. 어쩔 수 없는 시간의 속박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아프리카는 시간을 초월한 절대의 순간을 사는 방식을 암시한다. 물론 그가 찍은 아프리카 사진에도 이따금 사람들은 등장하지만 그것은 풍경의 일부로서 풍경 속에 녹아 들어있다. 사진 속의 그들의 주름지고 억센 피부와 햇빛 속에 멀리 너르게 펼쳐진 사구 또는 지평선을 응시하는 그들의 시선은 그들을 낳은 어머니인 대지와 한 몸이 되어 살아가는 그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그것이 보여주는 것은 시간의 변화가 아닌 자연과 더불어 살아있는 생명의 공존이다.
아프리카를 떠올리면 사람들은 즉각적으로 문명화가 덜된 땅을 생각하게 되지만 그곳은 그곳 나름의 문명이 있고 그곳의 자연과 대지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사람들의 삶의 방식과 눈 밝은 지혜가 있다. 그들은 매 순간을 살고 있으며, 지나간 과거에 붙들려있거나 현재의 시간을 뛰어넘어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탐하려 하지 않는다. 이는 시간을 거스르지 않는 자연스러운 삶의 방식이다. 현대 문명에 과도하게 중독된 사람들이 연대기적으로 묶여진 모든 시간을 머리에 이고 다니는 무거운 삶을 사는 것에 비하면 그들의 삶은 매 순간이 시간의 중력에서 깃털처럼 벗어난 축복일 뿐이다.
그가 10년 동안의 아프리카 사진 찍기 여정에서 돌아와 제주도에 주목을 한 이유는 '바닷가 작은 바위 하나가 수 만년 동안 쉼 없이 대양의 파도와 부딪치며 일어나는 물보라, 바다와 하늘이 만나 추는 춤, 그 춤의 뜨거운 숨이 한라산에 걸려 만들어 내는 구름, 구름이 바람 되어 흔들어 놓는 들판'과 같은 모습들에서, 도시화 또는 관광개발이라는 끊임없는 문명화의 수난 속에서도 제주도라는 섬이 태고로부터의 생명력을 본질적으로 잃지 않고 있음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그의 카메라 렌즈 앞에 드러나는 제주도나 아프리카는 모두 시간의 테두리를 벗어난 생명의 땅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수 만년 동안 바람과 파도에 부딪치며 거의 변함이 없이 태초의 우주의 시간을 품고 있는 제주바닷가의 돌과 바위들이나, 광대하게 펼쳐진 아프리카의 초원이나 밀림 또는 사막은 모두가 같은 시원(始源)의 시간을 함축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의 시간은 대지의 시간에 속해있으면서도 점차적으로 사람만의 독립적이고 한계 지워진 시간의 가두리에 속박됨으로써 그 대지의 생명과 분리되어 왔다.
사람들은 늘 서둘러서 보이는 대상을 해석하려 하고 섣불리 자신의 생각으로 규정하려 한다. 그럼으로써 그들이 보는 것은 결국 자신의 헛된 욕망이 투사된 카르마(業)의 그림자일 뿐이다. 그러나 여기 안영상이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제주도와 아프리카의 풍경들은 조용히 바라보는 것만으로 충분히 그들의 나신 전체를 날것으로서 드러낸다.
소개글: 서길헌 (소르본대학.조형예술학박사)
사진은 하이쿠(排句)이다.
한 낮의 정적 /매미소리가 / 바위를 뚫는다.(바쇼)
번개에 / 한순간 드러나는 / 마른 강바닥(이싸)
하이쿠에서 중요한 것은 위의 시처럼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과
그것을 표현하는 가장 분명하고 깨어있는 언어일 것이다.
너무 울어 / 텅 비어 버렸는가 / 이 매미 허물은 (바쇼)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숙명적인 환경이라든지, 영원과 순간의 대비에서
오는 공간을 상상력으로 메우는 찰나적 감수성이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사진에서의 순간 포착이 중요한 것과 같다. 마음을 먼저 드러내기 보다는
현실의 모습을 통하여 인식의 깊이와 의식의 지평을 짧은 순간에
표현한다는 점에서 사진의 의미와 서로 통한다.
가을 깊은데 / 옆 방은 / 무엇하는 사람인가.(바쇼)
여름 소나기 / 잉어 머리를 때리는 / 빗방울(시키)
특별한 재주가 없으니 / 난 잠이나 잘련다 / 이 시끄러운 새들아(바쇼)
- 안영상 글 -
갤러리 통큰
서울 종로구 관훈동 74
tel 02-732-3848
안영상 사진문학가?
E-mail : olomuna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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