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느 작
말이 필요 없는 말
사진은 말이 필요 없는 말이다. 말로 떠들 것 같으면 사진이 필요가 없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20년 전쯤 뉴욕에서 공부하는 한 미술학도가 왔다. 그는 뉴욕의 유명한 갤러리에서 초대전을 치룬 촉망받는 미술가였다. 당시에 그는 아직 학업 중 이었다.
“너 그림 엄청 잘 그리나보다.”
국내파, 아니 국내파도 못되고 길거리파인 나에게 그 실력파인 그 미술학도가 얼마나 잘 그릴 것인지 상상조차 힘들었다.
“아니 내가 우리 동급생들 중에서 제일 못 그려”
“뭐야? 그럼 너희 하교 학생들은 너보다 다 유명한 미술가들이겠네”
“아니 그렇지도 않아 다 나보다 못해, 나만 갤러리에 초대 받았어”
“너 김가중이야 왜 이렇게 앞 뒤가 안 맞어?”
“아니 나 말 잘해. 그래서 갤러리에 초대받은 거야”
김병규 작 베트남 기행 중에서
그의 말인즉 그때 이미 세계 예술의 중심지인 뉴욕에선 미학이란 개념이 크게 일어나 그림이나 사진 그 자체보다 그것들에 대한 개념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었던 것이다. 다다이즘이니 초현실주의를 넘어 아방가르드니 추상이니 전위예술이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사조들이 속속 등장 하는 현대 예술에 있어서 신라시대의 솔거가 벽에다 그린 소나무가 실물처럼 그려 참새가 앉으려다 부딪혀 죽었느니 하는 손재주가 곧 예술인 시대가 아니었던 것이다.
한상곤 작
(진시황 때 한 장관이 유명한 예술가를 데려와 알현을 시켰다. 그 유명 예술가는 옥으로 만든 나뭇잎을 바치면서 진시황의 뒤통수를 염려하였다. 감동받아 발딱 자빠질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자신의 작품 보고 여럿 그렇게 뇌진탕을 일으켰으니까, 그런데 그날의 뇌진탕은 화가 자신이었다. 진시황은 그 옥 나뭇잎을 보자마자 두 쪽으로 쪼개어 바닥에 던져 버렸다. “실물과 똑 같이 만들었다고 예술이라니? 흉내나 잘 내는 그런 것이 예술이라면 원숭이나 앵무새가 더 훌륭하지, 무릇 예술이란 자신의 주관이 있어야지” 살인귀 진시황은 운이 좋아 중국 최초의 영웅이 된 것은 아니었다.)
이희춘 작
오늘날의 작품은 주관적이다. 비평가나 큐레이트가 아무리 명쾌하게 해독을 해 내어도 작가의 말이 가장 중요할 수밖에 없는 시대이다. 결국 예술가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 명쾌하게 당위성과 의미를 풀어 나 갈수 있는 재능까지 겸비되어야 되는 시대이다. 그 학급에서 가장 못 그린 그림이 갤러리로 진출하였던 이유이다.
우리나라도 어느새 전시회에 가보면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 시시콜콜한 부분까지 주절주절 글로 써서 화려하게 장정까지 해서 함께 전시를 하는 것이 관행이 되어 있다. 이른바 작가 노트이다. 작가가 작품으로 말하기보다 스스로 말 잘하고 글 잘 쓰는 능력은 앞으로 갈수록 중요시 될 것이다. 잘 찍은 사진 잘 그린 그림 가지고 승부하던 시대는 끝났기 때문이다.
이희춘 작
보다에서 "사진과 글쓰기" 란 단기 아카데미는 그래서 적절한 시기에 무척 적절한 교육 프로그램이라고 생각된다. 의외로 우리 모두에게 일대 전기를 마련하게 되는 일이 될는지도 모른다. 시간 되시는 분들은 반드시 투자하시기 바란다. 더구나 한국사진방송 회원들에게는 반값으로 할인하여 주는 혜택도 준다고 하니 너무나 고맙다. (큰 행사 3제 기사 참조)
사진 잘 찍는 재능위에 한 가지 재능을 더 첨부 하시 길 바란다.
이희춘 작
인천 연안부두에서, 아래는 서울 시청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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