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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애 개인전 ‘해방해빙解放∙解氷’ 공간291
공간291에서는 오는 4월 11일(화)부터 한기애 개인전<해방해빙 解放∙解氷> 을 갖는다. 국문학을 전공한 작가는 이범선의 ‘오발탄’ 속 배경이었던 해방촌을 2014년부터 기록했다. 해방解放 후 월남민들이 정착했던 공간이 지금은 내외국인들이 타인의 문화를 수용하며 문화를 나누는 해빙解氷 의 공간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전시는 2017년4월 23일(일) 까지며 입장료는 무료다. (관람시간 11:00 – 18:00, 월요일 휴관)
봄봄_pigment print_40x120cm_2016
신흥시장_pigment print_35x95cm_2015
항아리와철조망_pigment print_40x120cm_2017
전시명: 한기애 개인전 < 해방해빙 解放∙解氷 >
전시기간: 2017년 04월 11일(화) – 04월 23일(일)
오프닝: 2017년 04월 11일(화)
관람시간: 11:00-18:00(월요일 휴관)
전시장소: 공간291 1층 전시장 (서울종로구부암동 29-1)
전시주최: 협동조합사진공방
전시문의: 공간291 (T. 02-395-0291) / www.space291.com
작가약력
연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하여 소설가가 되기를 꿈꿨으나 교사가 되었고, 다시 중앙대 산업교육원에서 사진을 전공하여 사람과 공간이야기를 사진으로 형상화하는 사진가가 되었다. 지난 2013년~2016년 4년간 ‘경기아카이브사진연구회’에 참여하여 화성, 파주, 성남, 남양주 지역에서 일 년 단위의 아카이브작업으로 그룹사진집 4권을 만들었다. 이 작업을 통해 사람의 삶과 공간에 대해 관찰하고 탐구하는 법을 터득해왔다. 2015년 서울사진축제에 <유희의 탄생> 그룹전에 참여했고 2016년 서울시립미술관 사진아카데미 <서울, 오늘을 찍다>그룹전에 참가했다.
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어떻게 공간과 조화를 이루며 사는가? 개인의 삶이 어떻게 역사의 한줄기를 이루는가? 등에 대한 관심으로 대상에 접근하며 그 표상을 찾으려고 애써왔다. 첫 개인전인 <해방•해빙 解放•解氷>은 2014년 가을에 해방촌에서 시작된 사람과 공간에 관한 주객관적 관심의 결과물이다. 다양한 삶의 양태와 이질적인 문화의 융화, 공간의 역사성과 사회성 등에 초점을 맞추었다.
작가노트
산비탈을 도려내고 무질서하게 주워 붙인 판잣집들이었다. 철호는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레이션 곽을 뜯어 덮은 처마가 어깨를 스칠 만치 비좁은 골목이었다. 부엌에서들 아무 데나 마구 버린 뜨물이, 미끄러운 길에는 구공탄 재가 군데군데 헌데 더뎅이 모양 깔렸다.(오발탄’(1959년作)중에서)
고등학교 때 읽은 이범선의 소설 ‘오발탄’에서 처음으로 나는 해방촌을 만났다. 6•25 전쟁으로 북에서 유복하게 살았던 철호네 가족이 월남하여 남산의 비탈진 해방촌에 둥지를 틀지만 혹독한 가난과 가치관의 혼란으로 급기야 자신이 조물주의 오발탄인지도 모른다며 극한의 절망적 상황을 토로하는 소설이다. 당시 이 소설을 읽고 고향을 잃고 실성하거나(어머니), 애를 낳다가 죽거나(아내), 범죄자(남동생)나 양공주(여동생)가 된 한 가족의 비극에 가슴저려했던 기억이 지금도 남아 있다.
그로부터 삼십오 년 후, 2014년 가을에 나는 우연히 카메라를 들고 해방촌을 오게 되었다. 뜻밖에도 해방촌은 소설가가 설정한 가상적 공간이 아니라 실존하는 공간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허름한 판잣집들은 자취를 감추고 다세대주택들이 다닥다닥 들어서 있지만 여전히 어깨를 스칠만한 비좁은 골목도 남아 있고 남산자락을 따라 무질서하게 들어선 집들이 옛 모습을 어림짐작하게 한다. 나는 무엇엔가 홀린 듯 그날 이후로 무조건 이곳을 찍고 싶었다.
해방촌을 갈 때 나는 지하철을 타고 녹사평역에 내려 남산 쪽으로 걸어 올라간다. 해발 34m에서 시작된 길은 철조망이 쳐진 미군 부대의 담벼락을 지나 한신도요의 수많은 크고 작은 항아리들을 거쳐 신흥대로변에 외국어간판을 붙인 레스토랑이나 펍, 카페, 세탁소 등 이국적인 가게들로 이어진다. 해발 60m에 있는 종점약국까지 이런 풍경이 펼쳐지는데 이곳에서는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들을 자기 동네를 어슬렁거리듯이 길거리에서 흔치않게 만나게 된다. 그들은 주한미군, 영어강사 또는 노동자, 대학생들과 여행객들이었다. 어떤 이는 고향 친구들을 만나서 한잔하기 위해 다른 이는 고국의 식재료를 사러 이곳에 들르기도 했다. 이곳의 외국인의 비율은 열 명 중 한 명꼴이라고 하는데 중국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대림동과 달리 유럽계나 아프리카계 등 다국적 외국인들이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인종과 국적을 초월하여 그들은 펍이나 슈퍼 앞에 놓인 테이블과 의자에 앉아 서로 맥주를 마시며 어울리는데 나에게는 이곳이 이방인들의 해방공간처럼 느껴졌다.
종점약국부터 신흥대로가 가팔라 길가에 이국적 상가보다는 주로 주택들이 들어서 있다. 걷기에 숨이 차오른다 싶으면 해발 100m에 위치한 해방촌오거리가 나온다. 이곳은 아랫마을과 달리 한국인들이 많고 용산2가동 주민자치센터 앞에 앉아 열변을 토하시는 할아버지들과 해방교회 앞 긴 의자에서 담소를 즐기시는 할머니들이 정겹게 다가온다. 이제는 퇴락하여 근근이 유지되고 있는 신흥시장의 다소 을씨년스런 풍경과 충청이니 경상이니 향우회 현판들이 이곳을 지탱하고 있는 사람들의 인정스런 면면을 대신해 주는 것 같다. 60년대부터 가난을 못 이겨 도시로 일자리를 구하러 상경한 사람들이 남대문시장을 근거로 생활했는데 당시 많은 사람들이 주로 편물업에 종사했다고 한다. 지금은 두서너 집이 기계편물을 하고 있어 그 흔적을 볼 수 있다. 동네 어르신들은 향우회나 교회를 중심으로 매우 끈끈한 유대감을 지니고 있었다.
한때 용산에 불어닥친 재개발 광풍으로 마을 공동체는 다소 약화되었지만 여전히 많은 분들이 악착같이 일해서 자식을 키우고 살아온 이곳을 지키고 있었다. 떠나간 분들도 사람이 그리워서 자주 놀러온다고 한다.
해방촌을 오르내리며 실제로 북에서 월남하신 여러 분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평양에서 시집오신 장씨 할머니, 원산후퇴 때 내려오신 이씨 할머니, 선천에서 오셔서 아직도 슈퍼를 운영하고 계신 황씨 할아버지 등 이런 분들이 전쟁이 끝나면 곧 고향에 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고령의 나이에 여전히 해방촌에 남아 회한의 삶을 살고 있다. 당국 몰래 사제담배를 만들며 생존해야했던 월남 1세대 대다수들은 이미 한 많은 이 세상을 떠나가고 없다. 현실은 이렇듯 부조리한 것이다.
일본군이 물러간 자리에 들어선 미군 부대 옆에 무허가건물을 지으며 극한의 조건 속에서 생존해야했던 6∙25전쟁의 월남민들, 산업화시대 남부여대로 시골에서 상경한 가난한 지방민들, 그리고 국제화 바람으로 타국에서 흘러온 생경한 외국인들이 모여서 어울려 살아가는 해방촌. 이처럼 대한민국의 근현대사가 응축되어 있는 곳이 있을까?
처음에 해방 후 월남민들이 정착한다하여 해방촌이라고 불렸다. 하지만 이제는 친숙한 다른 공간에서 떠나 느닷없이 이곳에 살게 된 내외국인들이 낯선 공간과 타인의 문화를 수용하며 어느새 마음을 열고 차갑게 언 마음을 녹여 모두 함께 열린 마음으로 문화를 나눌 수 있게 된 해빙 공간으로서 해방촌이 지금의 현주소가 아닐까? 얼마 전에 찾아 읽은 강신재 소설 6∙25전쟁 직후를 배경으로 쓴 ‘해방촌 가는 길’(1957)의 주인공이 뜻밖에 내 이름과 같은 기애여서 매우 놀랐는데 가난 속에 절망하는 가상적 인물 기애와 과거의 흔적을 찾으며 해방촌을 헤매고 다닌 현실적 인물 기애가 어떻게 만났는지 <해방∙해빙>이 보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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