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호 김용복 손권홍 장덕윤 “사진, 꿈에서 그런 것처럼” - 사진을 일구는 농부들의 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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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호 김용복 손권홍 장덕윤 “사진, 꿈에서 그런 것처럼”

사진공간 배다리 포트폴리오 3기 결과보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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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호 김용복 손권홍 장덕윤 사진, 꿈에서 그런 것처럼사진공간 배다리 포트폴리오 3기 결과보고전

 

2017. 8. 12 ~ 8. 25

사진공간 배다리 2관 차이나타운 전시관

오프닝 : 2017. 8. 12 오후 5: 30

 

<서평>

 

사진, 꿈에서 그런 것처럼

 

사진은 두 가지를 변화시켰다. 하나는 예술의 개념이고, 또 하나는 사실에 대한 관념이다. 전자는 창작주체인 작가의 생각과 감정들이 작품 속에 있다고 하는 것이고, 후자는 현실에 존재하는 것들을 작품으로 알려준다고 믿는 것이다. 이러한 통념은 오늘의 예술에서 더 이상 추구하지도, 증명하지 못하는 것들이다. 이러한 변화의 원인을 제공한 매체가 바로 사진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습관적으로 사진에서 현실을 보고 아름다움을 감상하면서 그것을 작가의 산물이라 말한다. 무엇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관습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가?

 

사진은 마치 꿈에서 그런 것처럼 붙잡을 수도 말을 알아들을 수도 없는 먼 곳에 두고 온 것들을 향한 헛손질 같다. 생각해보자 사진에 찍혀진 대상에서 우리가 만나는 것이 무엇인지? 작가의 생각인가? 대상인가? 아니면 숨겨진 사물의 의미인가? 혹은 진리와 아름다움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부정할 수 없는 것은 의미를 찾는 우리의 의식일 뿐이다. , 나의 경험과 지식과 관습화된 어떤 생각들의 조합이란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사진에서 공통된 의견과 작품의 의미를 하나로 결론짓는 모든 행위는 가능하지 않다. 그것은 우리의 개별적인 의식도 작가의 고유한 생각도 아닌 사실상 약속된 맥락 속에서 잠시 머문 임시의미들이다. 그러니 사진에서 우리가 붙잡은 것들은 현실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꿈에서 그런 것처럼 이것은 현실이 아니다.”라고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는 것들이다. 다만 선잠 속에서 꾸는 악몽만이 이것은 꿈이다.”라고 외쳐 잠에서 깰 것을 요구한다.

 

사진이 예술이 된다는 것은 바로 그 악몽을 꾸는 것이다. 사진작업행위는 내가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일이다. 환상에서 깨어나 낯선 현실을 바라보는 일이다. 꿈속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결코 보지 못했던 것을 발견하는 일이다. 잠에서 깨어나야 꿈이 현실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는 것처럼 그것은 새로운 경험이자 새로운 생각들과 방법들을 찾는 과정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사진을 기존의 예술행위로 좁게 가두어서도 안 되고, 사진을 사실과 동일시하는 환각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무엇보다도 사진가는 자신의 작업을 내 보일 때 이것이 내 생각이라고 강요하거나, 착각해서는 곤란하다. 만약에 어떤 사진이 사진가의 생각이 고스란히 읽혀진다면, 그것이 성공한 사진일까? 그런 일은 일어나지도 않겠지만, 그런 사진은 사진가 고유의 생각이라기보다는 의미맥락 속에서 소통되는 약속된 기호일 뿐이다. 그것이야 말로 사진가 고유의 개별적인 생각이 없는 가장 환상적인 비몽사몽의 세계다.

 

 

사진가의 진정한 의식이 없는 좀비 같은 잉여적 사진은 세상에 넘쳐난다. 이것은 기존의 개념을 그대로 가져다 쓰는 받아 적기 문장이나 뺏겨 그린 그림일 뿐이다. 모든 새로운 창조적 행위는 불러주는 데로 받아쓰기하는 틀에 박힌 생각들이 아니다. 개념 안에서 생각은 결코 자유롭지 못하고 그 밖을 나갈 수도 없다. 무얼 찍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현재 사진을 찍지 않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생각이 너무 많아 작업을 못한다. 생각 없이 찍는 사진이 결코 의식 없이 작업하는 것이 아님을 사진 작업하는 자는 경험으로 안다.

 

지도교수 이영욱




















 

- 덕불고(德不孤) / 김용복

 

오늘도 어김없이 제 시간에 눈을 떠서 시계를 바라본다.

 

여느 때처럼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익숙해진 순서대로 몸을 움직여 출근 준비를

 

하다가 문득, 목적 없는 준비라는 걸 깨달으며 잠시 허탈감에 빠진다.

 

오랜 시간 얽매인 생활을 하다 보니 몸시계가 작동을 한 탓이다.

 

 

바쁜 와중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고 진중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위해 그동안

 

사진을 찍어 왔지만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했던 바쁜 일상은 멈춰 졌기에 이제는

 

몸시계가 아닌 내 자유의지대로 시간을 조각내어 카메라를 들고 집안을 둘러본다.

 

멈추면 비로소 보인다더니 한가함으로 가득한 지금, 시선 하나하나가 여유로워지며

 

모든 것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한다.

 

 

그런 시선으로 바라본 집안 풍경이 어쩌면 이렇게 달리 보일 수가 있을까?

 

나의 생활패턴에 맞게 형성 된 집안풍경, 그리고 그 안에 배치되어 있던 사물들,

 

나로 인해 형성되었고 나를 위해 존재했던 그런 사물들을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봐 주지 못했음이 미안해질 따름이다.

 

질주하듯 분주하게 살아왔던 날들, 집안에서 저마다 존재의 의미를 가지고 나와

 

친밀하게 관계를 맺었던 사물들을 바라보며 조용히 셔터를 누른다.

 

- 오래된 침묵 / 김윤호

 

나는 오랜 시간의 무늬가 있는 돌과 나무에서 침묵의 언어를 읽는다.

 

감춰진 아름다움을 보며 겹겹이 쌓인 옛 이야기와의 만남을 즐긴다.

 

오래된 침묵은 숲속에서 오는 울림이다.

 

나는 이 울림을 어떤 형식으로든 표현하고 싶었다.

 

오래된 침묵 / 김윤호

 

 

수취인 부재(受取人 不在) / 손권홍

 

재개발지역을 여러 곳 촬영해봤지만, 이처럼 피사체가 나에게 아픔으로 다가오기는 처음이다. 어느 곳이나 있었던 우편함, 그동안 보지 못했던, 아니 느끼지 못했던 우편함에 읽히지 못해 비에 젖고, 빛바랜 우편물들, 그 모습이 내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래서 우편물을 볼 수 없는 사연을 찾아 대문 안으로 한 발 한 발 들어가며, 그 사연을 이야기할 이미지를 찾고, 피사체에 쌓인 부재된 긴 세월의 흔적을 빛과 계절을 더해 표현하고자 했다.

 

수취인 부재(受取人 不在) / 손권홍

 

仙鶴洞 / 장덕윤

 

'아버지가 죽었다.'로 시작하는 짧은 글을 생각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라고 써 놓고 는 왜 이렇게 써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죽었다.'로 쓰면 불효인 듯 한 생각이 들었고, 아버지와 나 사이에 거리감을 느꼈다. 원래 모든 관계는 적당한 거리가 있다. 사람들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살아간다. '죽었다''돌아가셨다' 사이의 거리는 아버지와 나 사이에 있었던 거리와는 다르게 생각되었다.

정작 글을 쓰면서 '아버지가 죽었다'가 아닌 '풍선을 주웠다'로 시작했다. 길을 가다가 풍선을 보았고, 주워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뿐이다. 하지만 글은 완성되지 못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나에게 풍선은 무엇이었을까? 여러 날 생각했다. 지난 5년 여 동안 메모해 둔 토막 글을 다시 읽어보았다. 이 메모들이 나의 풍선은 아닐까.

 

그렇다면 아버지의 풍선은 무엇이었을까.

 

아버지는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고 먹고 살기 위해 '선학동'에 정착했다. 빈손으로 시작해 삼십 여 년 만에 단독주택을 지었다. 마당에 자두나무와 살구나무를 심었다. 동네 분들에게 막걸리 한 사발도 건네었다. 이 모든 것들이 아버지의 풍선은 아니었을까

 

'선학동'을 사진으로 담으면서 아버지와 나에 대한 거리를 기억을 통해 정리할 수 있었다. 기억은 과거에 있었던 사실에 대한 메모와 같다. 현재를 살아가는 내가 떠올리는 기억은 해석된 것이어서 허구에 가깝다. 살아가면서 기억을 떠올리는 일은 해석된 허구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과 같다. 해석된 허구는 기도와 같다는 생각을 한다.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죽었다''돌아가셨다'의 차이보다는 해석된 이야기가 아이들에게 울타리를 만들어 준다고 믿는다.

 

아버지가 '선학동'이라는 산을 오르기 시작하면서 느꼈을 희노애락을 '선학동'이라는 프로젝트를 준비하면서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한 것 같다. 이제 막 '선학동'이라는 산에 발을 딛었으니 올라가 볼 일이다. 이 결과물은 산을 오르기 위해 운동화 끈을 질끈 동여매는 것과 같은 것이다

 

仙鶴洞 / 장덕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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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가중 (kimgajoong@naver.com)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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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리고 가끔 비, 페인팅퍼포 컬러빅뱅, 걍 진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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