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전 지방 작은 도시의 좁고 번잡한 재래 시장에 차를 운전하여 간 적이 있다. 좌우의 차와 사람을 피해서 조심조심 운전을 하였으나 갑자기 튀어나온 사람을 피하려다 길 가에 주차한 차 뒷 범퍼 모서리를 약간 긁은 교통사고를 유발했다.
주차된 차 주인을 찾아 사과를 하니, 회사 차인데 긁힌 부분을 보고는 “별거 아니라 스프레이 한번 뿌리면 되겠네요” 라면서 괜찮다고 했다. 명함을 건네주고 오면서 요즘 세상에 참 착한 대장(사람)도 있구나 하고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하고 그 자리를 떴다.
그런데 이튿날 오후쯤 어제의 피해자한테서 전화가 왔다. 회사에 가서 차를 보니 아무래도 수리를 해얄 것 같아서 카센터에 차를 맡겼더니 견적이 많이 나왔는데, 가해자를 배려해서 수리 기간 동안 렌터 카도 소형 차를 사용하고 수리비도 최대한으로 깎아 40만원 정도로 합의를 했으니 보험 처리 하지 말고 수리비를 현금으로 보내 달라고 했다.
보험료 할증이 되지 않는 수리비 한도가 지금은 200만원으로 인상되었지만 그 당시에는 50만원이라, 딴에는 50만원 이상의 수리비가 나오는데 수리 비용을 최소한으로 삭감하여 가해자 보험료가 올라가지 않게 배려를 했다고 생색을 냈다. 수리비가 50만원 이상이면 보험으로 처리하고, 그 미만이면 현금으로 처리하는게 보험료 할증이 안되어 낫다고 생각하는 대개의 일반인들 보험 상식을 이용한 것이리라.
정말 황당하고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범퍼를 새 것으로 갈아도 20만원이 안되고, 이 사람 저 사람 타는 회사 업무용 차라 낡아 터진 차인데. 분명히 스프레이를 뿌리면 될 정도라고 했고, 차량은 10 여년 전 연식으로 범퍼에 덧칠한 페인트가 나무 껍데기가 벗겨져 떨어지는 것처럼 켜켜이 일어나는 상태였는데...주변 친구들의 부추김을 받았거나 이 기회에 용돈 좀 벌어보자는 욕심이 나서 마음이 바뀐 것이리라. 사고 당시 그 자리에서 수리비 요청을 하지 않은 것을 보면 수리비 받아서 회사에 납부할 리도 없고....
예전 초보 운전 시절 지방에 갔을 때 신호 대기중 경사진 도로에서 브레이크를 느슨하게 밟아 차가 뒤로 밀려 뒷 차 범퍼에 살짝 접촉한 적이 있었다. 전혀 범퍼에 흠이 없었는데도 막무가내로 행패를 부려 새 범퍼 값을 물어준 적이 있었다. 보험 처리를 할려고 해도 갈 길이 바쁘고 피해자들이 깍두기 머리에 인상도 험악해서 응하기는 했지만 하루 종일 기분이 언짢았다.
멀쩡한 범퍼 값을 물어준 경험도 있어서 보험사에 문의를 하니 보험사에서는 피해자가 수리를 요구한다고 무조건 다 들어 주는게 아니고, 무리한 요구는 응하지 않고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 수리를 해 준다고 한다. 예를 들면 페인트가 약간 벗겨졌다고 차 전체 도색을 요구해도 새 차가 아니면 전체 도색을 해 주지 않고 부분 도색을 해 준다고 한다. 이렇게 하면 가해자가 무리하게 요구하는 것을 보험사가 대신 방지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또 일률적으로 50만원을 기준으로 차량 보험료가 할증되는 것도 아니고 여러 가지 상황을 따져서 할증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에 일단 보험으로 처리하고 그 후에 할증 여부를 판단하여 추후에 현금을 납부하든지 보험 처리를 하든지 결정하면 된다고 했다. 그래서 피해자에게 보험처리 할테니 차를 정비공장에 입고시키고 보험사에 연락하라고 했는데, 6년여가 지난 지금까지도 피해자로부터 그 어떤 연락도 오지 않고 있다.
차는, 쉽게 얘기하면 어디를 갈 때 우리를 운반하여 주는 신발이나 마찬가지이고, 짐을 옮겨주는 좀 편리한 도구에 불과하다. 신발에 먼지 묻고 흑탕물 좀 튀면 어떻고 생채기 나고 좀 찌그러지면 또 어떤가? 한 가구에 차를 여러 대 가진 선진국에서는 차가 긁히고 찌그러져도 어지간하면 그대로 다닌다고 한다. 그들은 차가 생활 필수품이지 귀중품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좁은 도로를 지나거나 주차할 때 범퍼나 표면이 약간 스치기만 해도 부산을 떠는 것을 많이 본다. 새 차일 때야 속이 상하겠지만 어차피 몇 년 타면 흠이 나고 긁히기 마련이다.
못사는 시절엔 차가 사치품이고 특권층만 가진 것이라 조그마한 흠도 없어야 하고 항상 반질반질해야 했다. 우리나라처럼 차가 비까번쩍(?)하는 나라도 드물다고 한다. 아직도 못살던 때의 습성이 남아 자동차를 사치품이나 신주 모시듯 하는게 아닐까? 우리도 이제 살만해져서 어지간하면 차를 다 가지고 있는데 신발인 차를 신주 모시듯, 애인 받들 듯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차를 운전하는 우리는 언제든 교통사고 가해자도, 피해자도 될 수 있다. 가해자가 되었다고 군림하고 멀쩡한데도 병원에 들어누워 한 몫 챙기려는 생각은 버리자. 저주(?) 받은 돈 몇 푼 뜯어서 부자될 것도 아니고, 오히려 그 몇 푼이 부메랑이 되어 나에게 몇 배로 돌아 올 수도 있다. 운전하는 사람끼리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피해 본 만큼만 보상을 요구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