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어린이
몇해 전 어느 모 어린이 사진을 주제로 한 공모전에 심사를 갔을 때였다.
우선 심사위원들이 모여 심사의 방향이며 기준 등에 대해 잠시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다른 심사위원들은 마치 합의라도 하고 온 듯, 자리에 앉자마자 “어린이 사진은
밝아야 돼”를 시작으로 천진난만한 동심을 잘 잡은 사진을 뽑아야 한다고
이구동성이었다.
하도 단정적이어서 나는 아무 말도 않고 듣고만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 사진이 밝아야 한다는 까닭을 알 수가 없었다. 밝은 사진을 뽑는 것이
소위 밝은 사회를 만드는데 도움이 될는지는 모르나, 그것이 예술작품 선정 기준이 될
수도 없거니와, 더구나 아이들이라고 언제나 밝을 수만도 없는 법이다.
아이들은 아이들 나름대로 슬픔도 있고 괴로움도 있는 법인 것을...........
내 어렸을 적이 그랬다. 아버지는 우편배달 관계로 항상 밤늦게 오시고, 어머니마저
농사 일로 저물도록 돌아오지 않으면 겁이 나서 큰 소리로 엉엉 울었다.
듣다 못한 이웃집 아주머니가 이리저리 달래어 봐도, 부모님이 오기 전까지 난 공포와
슬픔에 울음이 그쳐지지 않았다.
우는 어린이는 무엇 때문에 그렇게 섧게울까, 어른들은 너 이다음에 커 봐라,
그때야말로 정말 눈물이 무언지 알게다, 하는 투로 아이들의 눈물을 가볍게 웃어
버리지만, 울고 있는 아이들에게 그 슬픔은 절체절명의 슬픔일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 “밝은” 어린이가 울 까닭이 없는 것이다.
1985년 6월, 삼척의 신기 산길을 오르던 때였다.
산 중턱쯤에 나즈막히 엎드린 너와집이 한 채 보였다.
모두 들 일하러 나갔는지 텅 빈 집에 햇빛만이 가득했다.
너와집이 드물기도 해서였지만, 산과 골짜기를 누비는 시원한 바람과 그 맑은 햇빛에
취해 셔터를 누르고 있는데, 어디에선가 소년 하나가 나타났다. 무얼 하느냐고 묻지도
않고 내가 사진 찍는 모습만 이리저리 따라다니며 구경을 했다. 말이 없어서였는지 퍽
외로워 보였다. 그 외로움에 끌려서였는가, 소년을 세워 놓고 몇 번의 셔터를 눌렀다.
한참 세월이 흐른 지금 나는 어쩐 까닭인지 그때 외로운 섬에 들렀던 것 같은 착각에
빠지곤 한다. 산속의 절해고도, 주변에 다른 인가가 없어서가 아니라, 말 없던 그 소년의
얼굴에서 그런 고독감이 느껴졌던 것이 아닌가 싶다.
누군가가 그랬다.
우리 사람들은 이어진 대륙이 아니라, 하나하나의 섬이라고, 그래서 외로운 게라고
다만 외롭지 않은 체하며 살아갈 뿐이라고. 그리고 또 누군가는 그랬다,
어린이는 어른들의 아버지라고..........
그리고 그날,
천진난만한 모습의 밝은 어린이 사진이 대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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