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일용 개인전 갤러리 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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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결 The Grain of Time’ 展

등록날짜 [ 2019년10월28일 16시48분 ]

이일용 개인전 ‘시간의 결 The Grain of Time’ 展 갤러리 나우

이일용 사진전 [시간의 결 The Grain of Time] 展

2019년 11월 20일(수) 6:00 PM

2019년 11월 20일(수) - 11월 26일(화)

10am - 6pm

갤러리 나우 -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길 39, 관훈동 성지빌딩 3F

02-725-2930 / gallerynow@hanmail.net

[전시 서문]

시간의 결

진성규 (중앙대학교 역사학과 명예교수)

여기 이일용 교수의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그는 본래 사진작가도 아니었고 다만 인생의 계기가 있어 어느 날 전공과는 거리가 먼 사진세계로 침잠하여 카메라 렌즈의 초점을 맞추게 된 것이다. 거기에는 젊은 날의 염원이 깃들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진솔한 그의 사진들이 우리의 시선을 붙들어놓고 있다.

필자 자신은 사진에 대해 무지하다. 오랫동안 전국의 문화유산을 찾아 적당히 사진을 찍었을 뿐 특별한 사진 수업을 받아본 적도 없고, 사진 기법에 대해서는 무지하다. 추천사를 작성하게 된 것은 역사 전공자라는 점에서 작가의 요구에 응하게 된 것이니 독자들의 양해를 바랄 뿐이다.

이번 전시회 사진은 조선시대 창덕궁과 후원, 종묘사진들이다. 창덕궁(昌德宮) 사진은 일제 강점기 때 찍은 사진과 최근의 사진을 합성한 것이고, 후원(後苑) 사진은 여러 사진을 겹쳐 모자이크한 것으로 사진의 기법 상 특이한 면이 있다. 게다가 동궐도에 창덕궁과 후원의 현판을 담은 것은 작가의 착상이니 나름 의미가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종묘(宗廟)의 정전(正殿)과 영녕전(永寧殿) 사진에 어진들을 담았다. 뿐만 아니라 공신들의 전신상까지 합성하여 궁궐의 중층성까지 담으려는 작가의 의도가 엿보인다. 결국 이번 사진전은 5대 궁궐 중 가장 잘 남아있는 창덕궁과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종묘 사진을 담았으니 그 의미가 크다고 하겠다. 천겁을 지나도 옛날이 아니고, 만세를 걸쳐도 언제나 지금(歷千劫而不古亘萬歲而長今)이라는 불교의 말이 새삼스럽다.

이제 창덕궁, 후원, 종묘로 역사여행을 떠나보기로 하자. 창덕궁은 1405년(태종 5년) 건립된 왕궁이다. 처음에는 법궁(法宮: 임금이 사는 궁궐)인 경복궁에 이어 이궁(離宮: 행궁으로도 불리는데, 왕이 거둥할 때 머무르던 별궁)으로 세워졌지만 이후 임금들이 주로 창덕궁에 머물면서 실질적인 법궁의 역할을 한 셈이다. 태종이 경복궁을 두고도 엄청난 재정을 투입해 창덕궁을 세운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 아마도 ‘왕자의 난’을 거치면서 이복동생을 죽이고 정적 정도전까지 죽인 후 왕위에 오른 태종으로서는 피의 숙청의 현장인 경복궁을 피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창덕궁의 전각을 대충 분류하면 왕과 왕비의 공간, 왕자의 공간, 신료들의 공간으로 대별된다. 창덕궁의 정전인 인정전(仁政殿)은 왕의 즉위식이나 신하들의 하례, 외국사신을 접견하는 장소이고, 선정전(宣政殿)은 왕의 집무실이고, 대조전(大造殿)은 침전으로 왕비의 생활공간이다. 특히 대조전 옆 흥복헌(興福軒)은 1910년 경술국치의 뼈아픈 역사현장이기도 하다. 왕자의 공간으로 성정각(誠正閣)이 있고, 왕을 가까이 보좌하기 위해 궁궐에 세운 궐내각사(闕內各司)가 있다. 그 외 역대 왕실의 어진을 모신 선원전(璿源殿)과 헌종의 서재 겸 사랑채였던 낙선재(樂善齋)가 그대로 남아 있다.

창덕궁은 경복궁과는 달리 주변 자연환경에 맞춰 건립되면서 가장 한국적인 궁궐이라는 호평을 받으면서 다른 궁궐의 건축에도 영향을 미쳤다. 조선시대는 궁의 동쪽에 세워진 창경궁(昌慶宮)과 경계 없이 사용하여 두 궁궐을 ‘동궐’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현재 남아 있는 동궐도(東闕圖)는 동궐이 가장 전성했던 당시의 그림으로 복원에 결정적인 자료가 되고 있다. 창덕궁은 1997년 후원(後苑)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한국을 대표하는 궁궐로 자리매김을 하였다.

후원은 창덕궁의 정원으로 일명 북원(北苑)• 금원(禁苑) 등으로도 부른다. 비원(秘苑)이란 명칭도 보이지만, 후원으로 가장 많이 부르고 있는 것 같다. 후원은 태종이 창덕궁을 조성할 당시부터 조성되면서 왕궁의 사랑을 독차지하였고,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황폐화 되자 광해군 때 창덕궁과 함께 재건되기 시작하였다. 인조, 숙종, 정조, 순조 등 여러 왕을 거치면서 현재의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후원은 북악산 한 줄기인 응봉(鷹峯)을 등지고 자연지형을 적당히 활용하여 골짜기마다 아름다운 정자를 만들어 절묘한 솜씨를 보여주고 있다. 후원에는 크게 네 개의 골짜기가 있는데 부용지(芙蓉池)• 애련지(愛蓮池)• 관람지(觀纜池)• 옥류천(玉流川) 영역이 그것이다. 후원 안으로 깊숙이 들어갈수록 인공적인 것에서 자연적인 것으로, 개방된 곳에서 깊숙한 숲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잎이 돋기 시작하는 초봄에 후원으로 들어가 보라. 자신이 숲이고 숲이 내 자신인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된다. 후원 서쪽 깊숙한 곳은 출입금지로 막혀있지만 서글픈 대보단이 있고, 제사공간인 선원전도 자리 잡고 있다.

후원은 왕실의 전용 휴식공간이기도 하지만 자연풍광을 즐기면서 시를 짓고 학문을 논하기도 하는 공간이다. 때로는 과거시험 장소로, 종친을 모시고 연회를 베푸는 장소로, 군사 훈련과 활 쏘는 장소 등으로도 활용되었으며 여유 있고, 넉넉함을 느낄 수 있는 대표적 정원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종묘(宗廟)는 조선시대 역대 왕과 왕비 및 추존된 왕과 왕비들의 신주(神主)를 모시고 제사 지내는 국가의 최고 사당이다. 종묘는 태조가 1395년 한양을 수도로 정하면서 짓게 되었지만, 현재의 종묘는 임진왜란 후 1608년에 중건한 것이다. 그러나 모실 신주가 계속 늘어나면서 수차례 건물 규모를 늘려 현재와 같은 모습이 되었다.

현재 종묘는 정전과 영녕전을 합쳐 종묘라 부르지만, 조선시대에는 지금의 정전만을 종묘라 불렀다. 정전의 신실 19칸에는 태조를 비롯한 왕과 왕비의 신주 49위를 서쪽을 상으로 해서 모셨다. 영녕전은 정전에서 조천(祧遷)된 34위의 신주를 16칸에 소목제도(昭穆制度: 신주를 모시는 차례로 왼쪽을 昭, 오른쪽을 穆이라 함)에 따라 모셨다. 조선시대는 종묘사직이라 하여 종묘를 짓고 사직단을 세워 제사지내는 것을 가장 으뜸으로 여겼던 것이다. 중국의 주례(周禮)에 따라 경복궁을 가운데 두고 동쪽에 종묘(宗廟)를 서쪽에 사직(社稷)을 모셨다. 유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혼백(魂魄)으로 분리되어 혼(魂)은 하늘로 올라가고 백(魄)은 땅으로 되돌아간다고 보았다. 혼을 모시는 공간이 사당이고 백을 모시는 공간이 무덤인 것이다. 결국 종묘는 왕과 왕비의 혼을 모시는 공간인 셈이다. 따라서 조선사회에 있어 종묘는 왕권의 상징이자 왕권을 공고화시키는 기능도 담당했던 것이다.

종묘의 구성을 보면 제사를 모시는 공간과 제사를 준비하는 공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사를 모시는 공간으로 정전, 영녕전, 공신당, 칠사당이 있고, 제사 준비공간으로는 제궁, 향대청, 악공청, 전사청 등이 있다. 종묘는 사자의 공간이므로 건물의 장식과 기교를 절제하여 단조로워 보이지만 존엄과 신성한 분위기가 의도적으로 연출된 건물이다. 게다가 종묘에는 제례와 제례악이 그대로 보존되고 있어 1995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시간의 결’이란 주제의 사진집을 발간하고 전시회를 준비하는 작가의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 인생의 제2막을 시작하면서 사진 예술을 통해서 즐거움과 행복감을 만끽하길 바라며, 계속된 사진작업으로 작가의 꿈이 실현되어 후속 사진집의 발간과 전시회가 개최되는 날 다시 만날 수 있길 고대한다.

[평론]

구원으로서의 사진

김소희 (독립큐레이터)

시간과 겨루기에서 슬프지 않은 것이 없다고 했다. 평범하거나 왕후장상의 피를 이어받았다 하더라도 모든 인간의 삶은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하기 때문이다. 하여 동서고금에 영생과 영속에 대한 얼마나 많은 욕망들이 있었던가. 인류의 문명은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형성되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세계인들은 나름의 가치관과 인생관, 종교관에 따라 다른 장례문화를 만들어왔다. 어떻게 살고 어떤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에 대한 성찰은 인간의 영원한 화두이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남은 무덤을 방문하고 다양한 장례문화를 들여다보는 것은 곧 삶과 죽음의 의미를 통찰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사진을 찍는 것은 소멸하는 시간에 맞서는 행위이다. 셔터를 누른 순간은 곧 과거가 되어버리지만 사진 속에 포착된 시간은 현재성을 담보한다. 그러므로 사진은 흐르는 시간을 잡아 두기 위한 훌륭한 방편이다. 사진 속에서는 덧없는 것들도 영원성을 획득한다.

대학 교수의 정년퇴직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이일용은 몇 해 전에 사진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그가 첫 작업의 소재로 선택한 것은 조선 왕조의 궁궐 창덕궁과 종묘이다. 한때 건축가를 꿈꾸었던 그에게 그 공간들은 날씨와 계절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감흥을 주었을 것이다. 그곳을 자주 방문하면서 그는 무엇보다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성찰의 시간을 보내게 되었으리라. 그는 얼마 전에 큰 병을 이겨내었다고 했기 때문이다.

세계 어느 왕조보다 오래 지속되었던 조선 왕조도 500여 년이 넘은 어느 해 그 운명을 다하는 날을 맞이하였다. 그러나 조선의 왕은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니었다. 영생을 이루지 못한 이에게 남은 마지막 욕망은 살아있는 이들에게 오래 기억되는 것이리라. 유교를 통치 이념으로 삼았던 조선에서 효는 가장 중요한 덕목이었으며 돌아가신 조상을 기리는 엄격한 예법은 곧 조선의 정신이었다. 비록 육신은 사그라지더라도 혼은 숭배할 표상으로 남겨졌다. 터럭 한 올까지도 닮아야한다는 불멸의 초상화, 어진이 바로 그러한 상징물이다. 어진은 왕의 모습을 그린 단순한 초상화가 아니라 왕 그 자체였다. 역대 왕의 혼을 모신 신전으로 조선 왕조의 상징인 종묘가 서울의 한복판에 마치 다른 세계를 품고 있는 듯 자리하고 있는 것도 모두 이와 같은 맥락이다.

사람이 죽으면 혼(魂)과 백(魄)으로 분리되어 혼은 하늘로 가고 육체인 백은 땅으로 간다고 믿었던 조선인들의 장례 문화는 시신은 매장하고 신주를 마련하여 혼을 모시는 것이었다. 종묘는 죽은 자의 혼이 거처할 수 있는 사당이며 죽은 자가 영원히 살 수 있는 집인 셈이다. 새로운 나라 조선을 세운 태조가 개성에서 한양으로 수도를 옮기기 전에 왕이 거처할 궁궐보다 종묘를 먼저 짓도록 한 것은 돌아가신 조상 숭배가 곧 국가를 지속하는 근원이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종묘의 정전은 태조 4년(1395년)에 신실 7칸으로 건축되었고 3번의 증축을 거듭하여 지금의 19칸의 규모가 되었다.

왕의 백(魄)을 묻은 왕릉이 도읍지의 외곽에 위치하는 것과 달리 혼(魂)을 모신 종묘를 도성 내 궁궐과 지척에 둔 것은 중국 주나라의 종묘 제도에 근거하고 있다. 『주례(周禮)』에 기록된 “종묘는 도성 내 왼쪽인 동쪽, 사직은 오른쪽인 서쪽에 둔다.”는 원칙에 따라 종묘는 조선의 정궁인 경복궁의 왼쪽에, 그 반대 서쪽에 사직단이 배치되었다. 이처럼 종묘는 사직과 함께 왕실의 가장 근간이 되는 공간이다.

종묘 정전은 제례를 위한 곳이므로 단청을 그리지 않았으며 그러한 절제를 통하여 엄숙함을 간직한 공간이다. 한눈에 모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긴 101m의 지붕은 간결하나 장엄함을 보여주며 그 거대한 지붕 아래의 월랑은 늘 그림자를 드리워 그 곳이 죽은 자를 위한 성소임을 알게 한다. 이뿐 아니라 월대는 신의 영역과 인간의 영역을 구분하고 있지만 종묘 정전에 들어서면 마치 삶과 죽음을 초월하여, 산 자와 죽은 자의 영적인 교류가 이루어지는 듯 한 느낌을 갖게 한다.

이일용은 이번 <시간의 결>개인전에서 종묘 정전을 바탕 사진으로 하여 어진(御眞)을 합성한 독특한 작업을 선보인다. 어진의 제작은 왕의 실제 모습을 공들여 담기 위해 엄격한 절차로 진행되는 국가적인 사업인 만큼 어진은 조선 왕조의 주요 표상이었다. 그러나 현재는 불과 몇 점의 어진만 남아있는데 그 이유는 몇 차례의 수난을 겪었기 때문이다. 경복궁을 비롯한 궁궐 내의 진전(眞殿)에서 어진을 봉안하고 제사를 모셨으나 1908년 일제 통감부는 진전을 통합 관리한다는 명분으로 창덕궁 선원전(璿源殿)으로 여러 어진을 옮겼으며 일제 강점기 1921년에는 창덕궁에 신선원전(新璿源殿)을 지어 모든 어진을 보관하였다. 1950년 구황실재산관리총국은 한국전쟁을 피해 신선원전의 어진을 포함한 왕실 유물들을 부산의 어느 창고로 이동시켰다. 그러나 1954년에 발생한 화재로 수많은 왕실 유물이 소실되었으며 겨우 7점의 어진만 남게 된 것이다. 이일용은 이러한 역사적인 배경을 참조하여 종묘 정전의 제1실에 태조, 제12실에 영조, 제17실에 철종, 제18실에 고종의 어진을, 그리고 동협 제12실에 원종의 어진을 합성하였다. 태조의 어진은 엄청난 수효로 제작되었지만 두 점의 모사본이 현존하고 있을 뿐이다. 그중 철종과 원종의 어진은 화마의 흔적을 통하여 고단한 역사의 과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일용은 이 작품들을 통하여 시간을 재구성함으로써 조선 왕조의 역사와 일제강점기 수난의 역사를 환기시킨다. 종묘에는 조선 개국공신과 공신의 일부 신주도 모셔져 있다. 국왕의 묘정(廟庭)에 배향된 공신은 태조 시대의 이제, 세종 시대의 황희가 있다. 이일용이 종묘에 어진을 합성한 작업에 이어 공신들의 초상화도 합성한 것은 바로 이러한 연관성에 따른다. 공신의 초상화 또한 그 사람의 얼이 시각화된 것으로 곧 그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이일용은 종묘와 더불어 조선의 5대 궁궐 중에서 창덕궁의 정전과 후원, 궁의 대문과 누각, 정자들도 촬영했다. 종묘가 죽음을 생각하고 영혼을 위한 공간이라면 궁궐은 삶을 영위하는 공간이다. 조선 궁궐 건축의 특징은 자연과의 조화를 우선적으로 고려하여 설계되었다는 것인데 특히 창덕궁은 다른 궁궐보다 더욱 자연 친화적이다. 이일용의 사진을 보고 있으면 그가 창덕궁의 다양한 장소에서 소요하면서 자연과 어우러지는 건축미와 교감했던 감흥이 눈에 그려지는 듯하다. 특히 관람지의 풍경 3점을 연결하여 파노라마로 펼쳐놓은 작품은 이러한 특징을 잘 보여준다. 이처럼 이일용의 사진은 궁궐 건축의 주요 특징을 시각적으로 더 극대화시키기 위하여 사계절의 풍경을 중첩시키고, 서로 다른 시간을 직조하는 방식으로 지금까지의 궁궐과 종묘 사진과는 차별되는 자신만의 관점을 보여준다. 경복궁의 동쪽에 있는 궁궐인 창덕궁과 창경궁이 그려진 동궐도(東闕圖) 위에 궁궐 내의 현판들을 합성한 작품도 이러한 조선의 정신과 역사 인식에 따른 작업의 일환이다. 궁궐은 조선 시대의 사상과 문화 전반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공간으로 해당 건물의 위치나 용도에 따라 이름을 새긴 현판을 부착하였다. 궁궐에는 동서남북 사방으로 궁문을 내었으며 대개 남쪽 문을 정문으로 하였다. 궁문의 이름은 임금이 덕을 베풀고 백성들을 교화한다는 덕치주의 이념을 담아 ‘화(化)’자를 주로 썼는데 창덕궁의 돈화문(敦化門)은 ‘교화를 돈독하게 한다’는 뜻이며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光化門)은 ‘군주에 의한 덕화’를 의미한다. 궁궐의 현판은 대개 『논어(論語)』, 『맹자(孟子)』, 『중용(中庸)』, 『대학(大學)』의 사서와 『시경(詩經)』, 『서경(書經)』, 『주역(周易)』의 삼경 및 선대의 각종 시문을 참고하고 각 현판의 글씨는 의미와 서법, 각법 등을 고려하여 당대의 명필이나 왕이 친히 쓰기도 하였다. 이일용은 수십 개의 현판 사진을 동궐도를 바탕으로 모자이크하여 조선의 통치 이념인 유교의 정신을 다양한 의미와 서체를 통하여 일별할 수 있게 하였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또한 스러져가는 기억에 저항하는 행위이다. 이일용은 이번 전시에서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가 간행한 조선고적도보에 수록된 사진과 동일 장소에서 자신이 최근 촬영한 사진과 합성한 작품도 소개한다. 그는 서로 다른 시간대에 촬영된 사진을 겹치면서 무심히 망각되어가는 아픈 역사를 현재로 다시 호출한다. 일본은 임진왜란 때 한양을 점령하고 궁궐과 종묘를 불태웠다. 또한 1911년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기 위하여 창경궁에 박물관, 동물원, 식물원을 만들고 이를 합하여 ‘창경원’이라 부르며 궁궐의 위상을 공원으로 전락시켰다. 우리가 철저히 기억해야 할 역사는 이처럼 수난의 역사일 것이다. 살펴본 바와 같이 이일용에게 사진은 조선 왕조 500여 년간 생멸의 시간이 축적된 공간, 역사의 거울에 비친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행위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공간과 건축물에서 표면적인 감각 작용을 넘어 심연에서 이루어진 진정한 아름다움에 대한 체험은 우리를 성장시킨다. 이즈음 조선 궁궐 건축의 특징을 한 문장으로 압축한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검이불루 화이불치 儉而不陋華而不侈)’는 작가 노트에서의 한 구절을 다시 음미해 본다. 압도적인 길이와 절제된 형식으로 엄숙함을, 화려한 단청 없이도 신성함을 발하는 종묘의 백미인 정전처럼 이일용의 앞으로의 사진 행보 역시 소멸되어가는 시간과 망각으로부터 구원의 행위로서의 묵묵함을 지속할 것이라 기대한다.

[작가 노트]

정년을 바라보며 새로운 인생을 위한 취미로 사진에 관심을 가져 사진아카데미를 다니고 동호회 활동을 하게 되었다. 그 후 단체 사진 전시를 하면서 사진 고르기가 힘든 것을 알았고, 마음으로 사진 찍기가 새로운 시야를 준다고 하나 실천이 만만치 않았다. 고등학교 시절 건축가가 되고 싶었던 꿈을 가지고 있어서 자연스럽게 창덕궁과 종묘에 관심을 갖게 된 것 같다. 한국의 궁궐은 신축, 화재, 복원 등의 과정을 통해 많은 시간 생성과 소멸을 거쳤다. 변화 과정에서 창덕궁과 종묘의 시간 축적의 흔적이 나무에서의 결(Grain)과 같이 한국 궁궐 건축의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것이 아닐까?

정도전의 ‘조선경국전’에서 언급되었듯이 조선 궁궐 건축의 특징은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華而不侈)다. 즉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는 것이다. 창덕궁은 존재하는 자연 환경을 유지하면서 최소한의 손길만을 더해 만들어낸 궁궐이다. 후원은 조경의 자연스러운 어울림, 느껴지는 편안함과 아름다움으로 인해 국내외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계속 이어지는 것이 아닌가 한다. 종묘는 조선왕조 왕과 왕비들의 혼을 모신 사당이자 신전이다. 궁궐이 삶을 위한 공간이라면 종묘는 영혼을 위한 공간이다.

창덕궁과 종묘가 과거 현재 미래의 측면에서, 춘하추동의 변화에서, 역사적 사건의 발생 과정에서 어떻게 발전해 왔는가를 염두에 두고 사진을 촬영하였다. 한국의 전통미는 무엇이며, 아름다움과 추한 것은 어떻게 차이나며, 낡은 것과 새로운 것은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 그리고 아름다움을 즐거움으로 승화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고민하였다. 한국의 전통미를 담고 있는 창덕궁과 종묘를 좋은 날씨, 시간대에 찾아 담아보려고 하였다. 그러나 어떤 의도를 가지고 촬영을 했던지 사진은 사진으로 말할 뿐인 것이다. 독자들이 보면서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창덕궁은 옛 사진과 최근의 사진을 합성하여 어떻게 변화되어왔는가를 살펴보았다. 후원의 풍경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차이가 나지만 한 장의 사진으로 여러 다른 장면을 볼 수 있도록 모자이크 방법을 적용하였다. 종묘 사진은 어진들을 신실 배치 위치에 합성하는 방법을 통하여 보존의 중요성을 살펴보았다. 이에 더하여 창덕궁과 후원의 현판들을 동궐도 바탕에 담았다. 조선시대 공신 영정들의 좌상과 전신상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동시에 창덕궁, 후원, 종묘의 일반사진들을 감상할 수 있도록 후반에 제시하였다.

누군가는 인생에서 가장 보람된 것이 무엇인가를 물었을 때, 후세대에게 지금보다 더 좋은 세상을 남겨줄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역사적 사실, 옛 건축 등의 변화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며 후손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주고 싶다. 첫 사진집을 내면서 도움을 준 사람들에게 감사하며, 다음 작업은 경복궁, 창경궁, 덕수궁, 경희궁으로 잡고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