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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춘호 사진전- 천년 瓦(와)
원춘호 사진전
천년 瓦(와)
2020.1.15(수)-27(월)
토포하우스 제3관(2F)
서울 종로구 인사동11길 6 토포하우스 02 734-7555
침묵하는 부성(父性), 방정・무구한 율동의 불꽃을 찾다
- 원춘호 작가의 기와[瓦] 사진전에 부쳐
최재목(영남대 철학과 교수, 시인, 문화평론가)
원춘호 작가의 기와[瓦] 사진을 들여다본다. 예전 우리네 아버지들의 무표정한 침묵, 희끗희끗한 머리카락 날리는 부성(父性)이 거기 초연히 앉아 있다.
기와는 ‘하늘을 봐야 별을 따대던’, 하늘과 친한 우리 전통의 천진무구한 에토스를 표상한다. 기와 한 장 한 장은 모두 하늘의 질서를 맞이한다. 하늘을 공경하고, 하늘을 받든다. 빛이 오면 빛을, 어둠이 오면 어둠을, 비가 내리면 비를, 눈이 내리면 눈을. 어느 하나 마다하지 않는다. 기와는 ‘하늘의 뜻’[天命]을 잘 섬기는 어진 선비이다. 지성 있는 집들이 쓴 정자관(程子冠)이다. 거기엔 달관이 있고, 체념이 있다. 그래서 기와는 우주[코스모스, 道]와 짝한 기예[테크네, 器]라 하겠다. 물질[氣]을 껴안은 질서[理]이고, 본성(性)을 품은 감성(情)이다. 한 장 한 장이 모두 생로병사를 닮은 철학이다.
기와에는 텅 빈 침묵이 있고, 방정(方正)한 웃음이 있다. 우리 아버지들이 그랬다. 그냥 바람처럼 왔다 구름처럼 떠났다. 시간 속을 묵묵히 견디던 한 생명이었다. 텅 빈 하늘이나 고요한 빛을 담아내던 방정한, 투박했던 그릇. 그것이 기와의 마음이고 아버지의 마음이다. 빛에 따라 일렁이던 네모난 질서와 율동. 둥근 하늘을 닮아 가는 각진 얼굴들. 세월에 장사 없다고, 이마나 손등으로 쭈-욱 쭉 늘어만 가던 아버지의 주름, 피부의 금과 선…. 집 모퉁이 어딘가에 앉아, 손끝의 흰 담배연기를 허공으로,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을 바람 속으로 날려 보내며, 언제나 하늘 가까이에서 천진무구한 눈망울의 눈물이거나 학생(學生)으로 계셨던 아버지.
기와의 검은 피부. 정연한 비율(ratio)이 만든 곡면. 오목한 곳[陰]에는 이끼도 풀도 와서 자란다. 이슬도, 서리도, 눈도, 바람도, 낙엽도, 먼지도, 벌레도 머물다 간다. 볼록한 곳[陽]에서는 빛도, 어둠도, 새도 수시로 찾아들어 발톱을 세우고 선다. 왔던 것들이 정처 없이 떠나고 뜬금없이 다시 찾아드는 동안, 기와는 빛바래고 모가 깎이고, 깨지고 금 간다. 어느새 지붕은 둥그스름 하늘을 닮아 소탈해진다. 꼰대 같지만 어진 친화력이 있다. 곁에 자라는 나무들과도 잘 어울려 홍시도 은행도 얻어 챙긴다.
기와는 지붕 그 너머로 펼쳐지는 푸른 하늘, 흰 구름, 우뚝 선 나무…, 이런 것들을 차경(借景)하여 스스로의 체면과 자존심을 표현하는 멋을 안다. 기와의 풍류이고 윤리이고 미학이다.
인간들의 건물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여, 인간의 질서와 살림을 지키며 스스로의 생로병사를 겪는 기와. 청춘이 있고, 노화가 있다. 천지의 질서에서 튀지 않는 절제된 부성, 그것을 굽어내는 제와. 그리고 기와를 이는 번와(瓦工), 그 뿐인가 지붕 위에 흙을 올리고 균형을 맞추던 손길. 하나의 완결된 집의 지붕이라는 균형 속에서, 기와는 의미와 웃음을 갖고 또 잃어버린다.
원춘호 작가의 사진에는 이런 수많은 이야기가 은유되어 있다. 사진이라는 알레고리를 통해, 아리고 아픈 부성을 찾아내면서 감추고, 정자관을 쓴 아버지의 지성을 애써 드러내면서 수줍게 숨긴다. 추억이 그렇듯이 더 이상 복원할 수 없기에 더 그립다. 상실한 것들에 대한 노스탤지어 그 불꽃에 작가는 육박해가고자 한다. 그러나 드러내면서 감추고, 보여주면서 숨기려 한다. 작가는 그 모든 것을 다 말해주지 않고 싶다. 나머지는 관객들의 몫으로, 해방되어 있다.
기와 사진 속에는 불꽃은 꺼져 있다. 작가는 은밀하게 속삭인다. 드러난 ‘사진이라는 표식’(표지판)을 따라, 꺼져버린 기와의 불꽃을 한번 스스로 찾아가 보라고! 눈에 보이는 것이 은폐한, 저 보이지 않는, 훨훨 타오르는 불꽃을!
천년의 세월속에 담긴 기와의 혼
신경훈 (언론인, 사진가)
몇 년 전 사진가 원춘호가 기와를 사진으로 담는 작업을 하고 있다는 말을 했다. 와공(瓦工)이었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그의 카메라를 자연스럽게 기와지붕으로 이끌었다는 것이었다. 이어 그는 아버지와 기와에 대한 몇 가지 추억을 덧붙였지만 이내 내 기억 속에서 흐릿해지고 말았다. 분주한 일상은 시간을 압축해 빠르게 보내버렸고, 2019년 어느 날 원 작가로부터 사진집 '천년 와(瓦)'의 완성에 대한 소식과 함께 작품들을 받아보았다.
많은 사진가들이 한국의 옛 건축물이나 유물을 주제로 작품을 찍어왔다. 대부분 피사체의 예스러움과 은은하고 그윽한 정취에 초점을 맞춘 작품들이다. 그런데 원춘호가 보여주는 기와 그리고 기와지붕엔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그것은 기와의 형태미를 넘어선, 기와를 둘러싼 인문적 통찰, 한반도에서 오랜 세월 숙성된 기와에 스며든 우리의 멋, 문화, 역사의 향기였다.
기와가 한반도에 들어온 것은 기원전 낙랑군을 통해서다. 그때의 기와 유물이 아직 남아 있으니, 우리 땅에서 기와의 역사와 생명력은 2000년을 훌쩍 넘긴다. 그 긴 세월 동안, 기와는 우리의 지붕이 돼 우리를 안아주었다.
한국의 기와지붕은 우선 디자인 측면에서 뚜렷하게 차별화된다. 투박하지만 아늑하게 주변을 감싸주는 기와의 질감, 세월이 흐르면 은은하게 색이 바래는 기와의 색감, 부드럽게 휘어 주변 풍경에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기와지붕의 용마루는 다른 나라들의 기와지붕과 다르다. 용마루의 부드러움은 한복의 소매나 버선의 곡선과도 이어진다. 우리의 산과 들의 형상을 닮았다.
또한, 우리 기와엔 우리 민족의 지혜가 스며들어 있다. 흙을 빚어 틀에 넣은 뒤 가마에서 1000도 이상의 온도로 구워 만든 우리의 기와는 비가 오면 골고루 습기를 머금고, 날씨가 개면 전체적으로 같은 정도로 수분을 증발시킨다. 기와는 우리 민족 생활의 연장선에 있어왔다.
반면 유명한 서양 건축물들의 지붕을 보면, 하늘을 향해 뾰족하게 솟은 화려한 구조물로 가득 차 있다. 그곳에 자연과 인간의 숨결은 보이지 않는다. 그것을 만든 사람들의 욕망이 화려하게 끓어오르는 모양이다. 서양의 건축물엔 자연을 지배와 극복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서양인의 사상이 담겨 있다.
한옥연구가 이상현은 “한옥은 자연의 흐름에 거부감 없이, 오히려 적극적으로 자연의 흐름을 탄다. 그래서 인공적인 건물이 자연의 흐름 속에 완전히 녹아든다. 이는 한국인이 자연을 의심스런 공간이 아니라, 무언가 끊임없이 태어나는 생성의 공간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원춘호는 이런 기와의 본질을 표현하기 위해 기와를 따로 떼어 내 독립적으로 표현하지 않았다. 기와가 산, 나무, 눈, 햇빛 등 우리를 둘러싼 자연과 만나 하나의 완성체를 이룬 순간을 담아냈다. 언뜻 심심하게 보일 수도 있는 그 속엔 우리의 민족이 먹고, 일하고, 즐겨온 천년 세월의 이야기가 담백하고 선명하게 들어 있다.
세 줄기 빛이 내려앉는 지붕이 있다. 부드럽게 휜 용마루는 그 빛을 받아 은은하게 활처럼 반짝인다. 용마루 아래 암키와와 수키와들은 물고기의 비늘처럼 반짝인다. 지붕이 햇빛을 만나 생성한 선들은 마치 고운 한복을 입은 조선 여인의 옷매무새처럼 우아하다. 우리 민족의 ‘선의 아름다움’을 드러냈다.
역광을 받은 기와지붕, 수키와의 그림자가 빗살무늬를 이뤘다. 지붕 앞 두 개의 굵은 나무줄기와 지붕의 빗살무늬가 교차한다. 흑과 백, 면과 선, 빛과 그림자가 세상에 없던 추상화 같은 풍경을 이뤘다. 지붕과 나무가 조화를 이룬 리듬감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눈 쌓인 기와 담장 너머 작은 산봉우리가 솟았다. 구름은 그 산봉우리를 포근하게 감싸고 있다. 구름과 산봉우리와 눈 쌓인 기와지붕은 오랜 친구들처럼 서로를 다독이고 있다. 자연의 흐름 속에 완전히 하나가 된 우리의 기와를 보여준다.
눈 쌓인 산과 그 한쪽에 자리 잡은 한옥 지붕들을 보인다. 산의 능선과 그 능선의 옆으로 줄지어 선 나무들의 모양이 꼭 우리의 기와지붕을 연상시킨다. 어느 것이 산이고 어느 것이 지붕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산이 곧 기와지붕이고 기와지붕이 곧 산이 된 형국이다.
작가가 우리 전통건축이나 예술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그의 예술가적 본능이 우리 기와에 숨은 미의 본질을 간파해내고 있음을 알려준다.
하이데거는 “예술은 세계를 건립하고 대지를 만든다”고 했다. 사진가 원춘호의 기와와 기와지붕엔 우리 민족이 만든 건축물과 자연이 서로 기대고 껴안아 주는 ‘순환의 미’가 숨 쉬고 있다. 거기에선 우리 전통 기와가 구름, 산, 눈, 안개, 나무 등과 함께 연주하는 합창 소리가 들린다. 때론 경쾌하고, 때론 우아하고, 때론 아늑하게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는 세계다.
i have known won chunho for five years. not only is he a great photographer, but also a great human being. he is deep empathy for human suffering and kindness towards humanity. in all of his work, he directs his camera towards beauty of nature and glory of human creativity.
his latest book, "ancient inspiration the roof tiles", reminds the viewer of unlimited possibilities of what camera can do. it becomes his tool of create beauty in this often cruel and ugly world. the stark and contrasty black and white photos, become surrealistic, as if it was drawn by a master graphic designer.
he told me, his father was a master tile mason, roofing so many fine house in Yeosan-myeon, during his time. and also, noted that his father would be 97 now, if he had lived. i see a glimpse of tear, swelling on the side of his eyes, and i have no doubt, that he loves his father, and misses him dearly, to this day.
each page is a jewel, as a result of hard work and sacrifice- through rain and snow and impossible obstacles. won chunho, is not just a photoghapher, but an artist who becomes the bridge to the world, in showing off, the exquisite beauty of korean landscape.
i consider three photographers, as the pioneers who elevated korean photography to the international level; kim jung man, bae byung woo, and of course, won chunho. these three gentlemen are still young, and still hungry to create more beauty in the world, and they are our best ambassadors of koreanism, to the world.
i am happy to say, that all three masters, are also my best friends. won chunho, congratulations on a job well-done. bravo!
12/31/2019 by hahn dae soo
비늘 같은 겹겹의 고백
박성현 (프랑스 반고흐 재단 한국 대표)
“드높은 궁궐의 용마루는 찬란한 황금 기와로 비늘을 이어 덮어 놓았다.”
원춘호 작가의 기와 사진을 감상하다 월탄 박종화가 집필한 장편 역사 소설 '임진왜란'을 오래전 읽다가 주목했던 이 한 문장이 섬광처럼 번쩍 떠올랐다. 그의 작품 속 그것은 흡사 비늘의 형상을 띠고 있었고 검은색의 짙고 옅음을 박차고 황금빛을 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분명 현금의 주변에서 포착된 기와를 프레임에 담았을 텐데 그 속에 봉인되어 있을 것 같은 오랜 세월의 뒷이야기가 절로 추적되기 시작하였다. 시간성의 추측과 가늠을 무색하게 하는 흑백의 힘일지 아니면 작가의 온축된 관찰과 마음 씀이 빚어낸 마법일지 더불어 난감했다. 한편으로는 신비스러움에 경도되었고 다른 한 편으로는 지극한 슬픔이 느껴져서 순간 영영해졌다.
작품의 소재는 곧 작가의 시선이며 역사다. 대상에 대한 집착은 늘 그렇듯 특별한 사연을 동반한다. 작품을 먼저 대한 후 그의 부친이 기와장, 즉 와공(瓦工)이었다는 후일담을 전해 듣고 나는 전혀 놀라지 않았다. 이윽고 내 가슴 속에 영문도 모르게 차올랐던 그 벅찬 감동의 근원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작품이 내게 걸어왔던 그 말의 의미가 무엇이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찬찬히 한 점 한 점과 눈을 맞추었다.
그분의 죽음은 작가에게 기왓장이 와르르 쏟아지는 것과 같은 억장의 무너짐이었을지도 모른다. 왜 생전 그의 뜻을 단 한 번도 긍정하지 못했던 것일까? 오로지 기와만을 고집했던 지극히 지난했던 그의 삶이 지천명을 넘기고서야 주목되기 시작하면서 모든 불효자가 그러하듯 그도 역시 주체할 수 없는 송구함과 그리움이 벅차올랐다. 그때부터였다. 주변부로 애써 밀쳐두었던 기와가 새삼스럽게 그의 삶을 온전히 가로질렀다. 어제와는 다른 오늘이었다. 예전과는 다른 새로운 계절의 도래였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다시 반복되는 계절과 켜켜이 쌓여가는 하염없는 시간 속에서 작가가 붙잡았던 단 하나의 주제는 ‘아버지’였다.
아름다워서 더욱더 눈물겹고, 눈부셔서 보다 찬란하며, 먹먹해서 한층 감동적인 기와에 담긴 부친에 대한 헌사, 수많은 낱장이 어긋매끼로 이어져 촘촘한 비늘같이 겹겹 층층 쌓아 올린 그의 내밀한 못다 한 뒤늦은 고백, 이제야 시작된 절절한 두 사람의 대화가 아주 밀접하게 들리는 듯하다. 그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 내 아버지의 이야기, 내 가족의 이야기 그래서 붙잡고 싶은 우리들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오래 참음과 견딤 후에 찾아오는 이 새삼스러운 발견과 뜻밖의 고마운 선물이 여기 가득하다.
한국전통건축의 중요한 특성중 하나인 곡선의 미는 기와의 선으로부터 나온다. 건축에 있어서 모든 부분이 다 중요하지만, 그 중에서도 건물의 미를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은 기와이다. 지붕에 따라 건물의 웅장함이나 태(態)나 미(美)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원춘호 작가와는 불탄 숭례문의 복원작업을 하면서 처음 알게 되었다. 이후 문화재와 사찰 작업현장에서 함께하며 기와로 소중한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기와에 애정을 갖고 작업하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중요무형문화재 제121호 번와장(翻瓦匠) 이근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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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노트
무구(無垢)의 선들이 빚어내는 세월의 무게
원춘호
기와의 유려한 곡(曲)을 따라 납작하게 엎드린 습기 품은 이끼가 연록으로 피고 지며 이천년 동안 채집한 전설을 토해낸다. 겹겹이 쌓인 연륜만큼 만고풍설(萬古風雪)을 겪으며 기왓장 골골마다 서린 환희의 서사와 질곡의 광기를 처마 아래 지상으로 날려 보낸다.
낙랑(樂浪)을 추억한다. 백제의 순박함도 통일신라의 화려함도 조선의 투박함도 기와는 시간의 향기를 진동하며 검은 꽃으로 오늘을 증거하고 있다.
정성스럽게 흙을 고르고 뜨거운 장작불로 구워 천년을 버틸 수 있는 기와를 만든다. 번와장의 손길을 거쳐 직선의 기와로 버선코 같은 부드러운 곡선을 만든다. 용마루, 내림마루, 추녀마루.... 반복과 대칭으로 완성된 축약의 미는 시간이 지날수록 깊어진다. 빛의 강렬함은 기와의 검은색마저 순백의 선으로 만들며 자연과 하나가 된다. 무구의 흰 선들이 만들어내는 율동과 처마를 따라 흐르는 불규칙한 곡면들이 정스럽다.
전통기와는 형(形)과 색(色)이 제각각이다. 그 수 많은 변이들이 모여 무질서의 질서를 만들며 마음을 안정시킨다. 멀리서 보면 횡으로 향하는 넓이, 가까이 보면 종으로 향하는 깊이를 배운다. 이 모든 것은 이끼로 토해내는 세월이 익으며 만들어 가는 것일 터이다.
기와에 대한 관심은 아버지로부터 시작되었다. 살아계셨다면 97세가 되셨을 아버지는 면(面) 소재지에서 한 명뿐인 희귀한 직업의 기와장인(瓦工)이셨다.
3살 무렵, 우리 가족이 살 집을 신축하던 공사 현장에서 석유를 음료수인 줄 알고 한입으로 들이킨 후 느꼈던 목구멍을 태우는 듯한 강렬한 뒷맛은 기와집에 얽힌 선연한 인생의 첫 기억으로 남아있다.
“내려와! 기와 깨져!.” 어머니의 호통에도 숨어 다니며 틈만 나면 오르고 했던 기와지붕은 어린 시절의 호기심 어린 단골 놀이터 중 하나였다. 지붕 위에 앉아 바라보는 풍경은 익숙하지만 설렜고, 경험해보지 못한 바깥 세상을 향한 시골 소년의 동경이었다.
어느 해 겨울, 아버지는 가슴에 깁스를 하고 움직일 때마다 고통을 호소하셨다.
기와 공사를 하다 지붕에서 추락하여 오랜 기간을 어머니의 간호 아래 시름시름 앓으셨었다. 이런저런 추억들로 기와는 자연스레 호기심에서 관심(關心)으로 그리고 사진 작업으로 이어졌다.
숭례문 화재는 기와를 가슴으로 느꼈던 슬프고도 가슴 아린 사건이었다. 새벽에 달려가 불에 녹아내리는 모습을 담으면서 느꼈던 먹먹함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늘 영원할 것 같았던 존재의 부재가 주는 충격. 그나마 숭례문 기와를 복원하는 과정을 기록으로 남기었던 행위는 나만의 위안으로 남아있다.
와공(瓦工)들을 보며 아버지가 걸어왔던 길을 더듬는다. 무더위와 추위에도 지붕에 올라 기와를 올리던 그 삶을 생각한다. 자식을 낳고 한 가정을 책임지는 가장이 되어 보니 아버지란 자리를 새삼 생각게 한다. 어머니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외된 아버지의 무게. 아버지란 존재를 “무거운 짐을 지고 언덕을 오르며 멈추지 못하는 늙은 당나귀”처럼 비유했던 어느 소설가의 말이 절실하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원춘호는 서울 도심속 낡은 풍경을 기록으로 담는 다큐멘터리 사진가다.
대나무와 기와, 조선왕릉 등 한국적인 주제로 평생작업을 하고 있다. 그 동안 11번의 개인전과 4권의 작품집을 냈다. Esquire, GQ, ARENA, ALLURE, MAXIM, VOGUE 등의 글로벌 라이센스 매거진과 협업하여 창의적인 비주얼을 만들어 냈고, 한대수 정규앨범 14집 Creme De La Creme의 커버를 촬영했다.
전시기획 및 사진집 제작
하얀나무 02 313-9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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