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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05월19일 12시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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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달항아리에 매료 되는가’ 展 갤러리 나우

연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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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달항아리에 매료 되는가연재2. 갤러리 나우

 

 

[우리는 왜 달항아리에 매료 되는가]

강익중, 구본창. 김용진, 석철주, 신철, 오만철, 이용순 전병현, 최영욱

편완식

20200609() - 0630() (일요일 휴무)10am - 7pm

갤러리 나우 _ 서울시 강남구 언주로 15216 (신사동 630-25)

02-725-2930 / gallerynow@hanmail.net

 

[서문]

우리는 왜 달항아리에 매료되는가

 

편완식(기획자)

 

갤러리 나우에서 열리는 우리는 왜 달항아리에 매료되는가전에 참여하는 강익중, 구본창. 김용진, 석철주, 신철, 오만철, 이용순 전병현, 최영욱 등 9인은 달항아리의 기호에 끌림을 당한 대표적 작가들이다. 도자기 달항아리 작가부터 캔버스에 달항아리를 그리는 작가, 철심과 도자부조, 한지부조로 달항아리를 형상화 하는 작가, 사진으로 달항아리의 내적에너지를 이끌어내는 등 다양한 매체, 다양한 표현 양식들을 보여주는 전시이다. 자연스레 전시구성도 재미가 있다. 실제의 달항아리와 다양하게 이미지를 형상화 한 작품들이 나란히 걸리게 된다. 마치 개념미술가 조셉 코수스의 하나인 세 개의 의자를 연상시킨다. 의자를 찍은 사진, 실제 의자, 사전적 정의의 의자를 나란히 전시한 작품이다. 인간의 인식 능력인 지각(실제 의자), 상상(사진의 이미지), 사유(의자에 대한 정의)를 한 화면에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사진과 사물, 문자가 어떻게 하나의 의자라는 개념을 시각적으로 구현하고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의자라고 부르는 물체와 그 물체를 재현한 모사, 그리고 그 물체를 의자라고 부르면서 정의하는 그 과정을 본질적으로 개념적이란 말로 던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개념을 작품의 오브제로 삼아서 인간이 사물을 인식하는 방법 그 자체를 하나의 시각적 구성으로 보여주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의자가 왜 의자가 되는 지를 손쉽게 보여준다. 갤러리 나우 전시도 달항아리란 무엇인가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개념미술이 우리들에게 던져주고 있는 화두처럼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달항아리가 왜 이 달항아리인지를 전시를 통해서 보여주고 확인시켜주려는 시도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들뢰즈의 시뮬라크르를 소환하게 된다. 플라톤은 이데아를 가장 참된 것으로 간주하고 현실은 이데아의 복제이며, 시뮬라크르는 복제의 복제로 가장 가치 없는 것으로 봤다. 하지만 들뢰즈는 애초에 이데아 자체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원본과 시뮬라크르 간의 대조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본다. 시뮬라크르는 시뮬라크르 그 자체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들뢰즈에게 시뮬라크르는 더 이상 본질-외관 또는 원본-복사본의 구분 자체가 아니다. 원본과 복사본, 모델과 재생산을 동시에 부정하는 긍정적 잠재력을 숨기고 있다. 적어도 시뮬라크르 세계에서는 그 어느 것도 원본이 될 수 없으며 그 어느 것도 복사본이 될 수 없다. 원본으로부터 복제되어 나온 또 다른 원본이라는 주장이다. 원본을 모방한 복제, 나아가 복제가 아닌 원본이 된 복제가 되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쥐를 모방한 미키마우스를 들 수 있다. 미키마우스는 더 이상 쥐에 종속되지 않고 하나의 독립된 원본이 됐다. 캐릭터 산업, 애니메이션 등에서 실제로 존재하는 원본이 된 것이다. 이번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들의 달항아리도 다르지 않다. 골동이나 문화재 속에서 있던 그 달항아리가 컨템포러리 아티스트을 통해서 이 달항아리로 빗어지고, 변형되며, 사진으로나 회화로 새롭게 형태를 갖추면서 드러난다.

 

많은 작가들이 달항아리를 소재로 작업을 하고 있다. 왜 작가들은 그토록 달항아리의 조형성에 매료되고 있는 것인가? 공통적인 이유는 흰색과 생김새에서 오는 감수성이다. 사실 달항아리 같은 순백자 항아리는 우리민족에게만 있어서 더욱 그러하기도 하다. 흰색은 전 세계 공통으로 하늘, 천상, 순결, 허공, 순종, 희생, 관대한 허용의 보편적 감수성을 지닌다. 느낌은 깨끗하고 자연스러우며 또 모든 색 중에 가장 순수하다. 하얀 웨딩드레스, 백의의 천사 간호사복, 수도원의 수도사복이 흰색이다. 천사도 백색 옷을 입고, 신선은 눈썹과 수염까지도 하얗다. 초월의 의미까지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천상에서 오는 빛의 색을 흰색으로 가름했다. ‘희다는 중세 국어로 해를 뜻하는 단어로부터 파생된 단어다. 흰색은 다른 색을 생생하게 살려주고 풍성하게 감싸 안기에 미술관 벽면도 하얗다.

 

달항아리는 백색이라도 눈빛 같은 설백(雪白), 젖빛 같은 유백(乳白), 잿빛이 도는 회백, 한지(韓紙)의 지백(紙白), 모시나 옥양목, 광목과 같은 그 미묘한 흰색의 멋을 담고 있다. 이런 색들은 조선의 유교사회에선 청렴과 절제를 상징했다. 고대 로마에서 관직에 출마하는 남자가 걸치는 흰 색의 토가도 같은 의미를 지닌다. 중세유럽 일부 성화의 흰색 후광과 성직자들의 흰옷은 고결함과 희생을 나타내고 있다. 지구촌 어디서나 백색 옷은 하늘 앞에 육체뿐만 아니라 영혼을 드러낸다는 정서를 지닌다.

 

흰색은 이처럼 '색상'을 넘어 시대마다 추구하는 가치의 '상징'이 됐다. 흰색의 역사는 빛으로 순수함을 담으려 했던 인간의 여정이다. 무색이란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 흰색이 무색을 대신하면서 비움, 공허를 기표하기도 했다. 달항아리는 기물이라는 점에서 비움과 공허의 미덕은 존재자체의 의미이기도 하다. 흰색으로 그 존재의미를 더 극대화시키고 있는 모습이다. 생김새도 원이 아니라 둥그스름하다. 완벽한 원은 폐쇄적인 닫혀진 모습이다. 원에 가까운 둥그스럼은 열려진 구조다. 소통의 단초가 되는 것이다. 인간은 규격화 된 형상보다 비정형의 모습에서 마음을 저울질 하고 생각을 시작하게 된다. 인간의 자유의지가 발동되는 지점으로 우리가 외부세계에 관여하는 기본 방식이기도 하다. 달항아리의 비정형이 인간의 감성을 자극하는 이유다. 양감을 더욱 풍부하게 부각시켜 준다. 달항아리가 내밀한 차원을 열리게 해주는 열린 구조라는 얘기다. 우리 감성의 보물창고가 열리는 것이다. 수화 김환기 작가는 내 뜰에는 한아름 되는 백자 항아리가 놓여 있다. () 달밤일 때면 항아리가 흡수하는 월광으로 온통 달이 꽉 차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달항아리를 보고 있으면 촉감이 통한다. () 사람이 어떻게 흙에다가 체온을 넣었을까라고도 했다.

 

이런 자유의지와 상상력은 우리 오관에 날카로운 촉수를 만들어 준다. 최상급 영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실제적인 것을 떠나 상상적인 것에 이르러야 하는 것이다. 달항아리가 열린 감성의 창고라는 찬사를 받는 지점이다. 주둥아리가 넓어 호흡하는 느낌을 주면서 표면이 사람 피부 같기도 하다. 야스퍼스는 모든 존재는 그 자체에 있어서 둥근 듯이 보인다고 했다. 반 고흐도 삶은 아마도 둥글 것 이라고 했다. 존재의 그 둥굶은 현상학적인 명상을 통해서만 다다를 수 있는 곳이다. 빛 덩이 같은 달항아리 처럼 우리 자신을 응집시키고 외부적인 것이 없는 것으로 살아질 때 둥글 수밖에 없는 것이다. 둥그스름한 달항아리는 하늘의 달이 되고, 그 풍경 속에 큰 평정이 있다. 좋은 상징물이다. 이런 해독의 임무는 예술에 있다. 들뢰즈의 초월론적 경험론도 이런 것일 게다. 목수가 대패를 통해 나무가 방출하는 기호에 민감해질 때에만 비로소 경지에 이르게 되는 이치와 같다.






 

***********

[약력 및 작품이미지]

 

석철주

 

학력

동국대학교 교육대학원 졸업

추계예술대학교 미술학부 동양화과 졸업

 

개인전

2017 조은갤러리, 서울

겸재미술관, 서울

갤러리 다함, 경기도

2016 동산방화랑, 서울

현대화랑, 대만

2015 space CHoA.갤러리 필

고려대학교 박물관,서울

2014 갤러리세솜, 창원

서호미술관, 경기도

2011 아뜰리에 아키 인 베르사체, 서울

2010 Beacon 갤러리, 서울

2009 학고재, 서울

2008 일본금산갤러리, 토쿄

2006 리즈갤러리,경기도

2005 학고재, 서울

13

 

단체전

2020 우리는 왜 달항아리에 매료 되는가, 갤러리나우, 서울

2019 미네르바한라에서 백두까지’-3.1운동임시정부수립100주년기념회화(동양화)33인전 (갤러리 뫼비우스, 서울)

2018 2018가나 아뜰리에 오픈스튜디오 (장흥제2아뜰리에, 경기도)

PAF2018 IN PARIS paf,paf (BASTILE DESIGN CENTER, PARIS)

디지털 프롬나드 전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2017 장욱진탄생100주년기념행사100배 즐기기! (장욱진미술관, 경기도)

2017년 한국.네팔 현대미술교류전 (네팔,이키데미. 꺼럴라디, 카드만두)

2016 SAVE THE EARTH GREEN CORPS EXHIBITION ‘SAVE THE EARTH. SAVE THE SAND’

(UN Headquarters New York Conference Building 1st Floor Hallway New York, USA)

2015 SCOPE BASEL 2015 (SCPE PAVISION, Basel, SWISS)

CONTEXT Art Miami 2015, (미국, 마이애미 웬우드)

광복70주년기념특별전 201_5감도“13인의 아해가 도로를 질주하오” (세종미술관, 서울)

1970 어디서 무엇이 다시 만나랴 이후 (환기미술관, 서울)

70여회

 

평론

도자기에 담은 마음의 풍경

 

류지연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석철주는 한국화의 전통을 담아내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1980년대부터 한국 전통 옹기의 형태, 질감과 그 위에 손으로 그린 문양을 화폭에 담아내는 작업을 지속하여왔다. 작가는 형태적인 요소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점차 표현 방식 자체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한동안 회화의 본질을 추구하려는 시도를 진행하였다. 캔버스에 바탕색을 칠하고 그 위에 다른 색으로 덧칠을 하는데 그러고 난 뒤 물을 묻힌 붓으로 그 위에 그림을 그린다. 이러한 제작방식은 그림을 그려냄과 동시에 지워나가는 효과를 보여주게 되면서 재료들이 지닌 물성에 대한 인식을 자연스럽게 전환시켰다. 또한 화면에 나타나는 이미지는 여러 색의 중첩를 통해 나타남으로써 대상의 본질에 대한 다중적인 의미를 제시하였다. 나아가 색을 칠하고 그림을 그리고, 지워나가는 과정은 순간에서 영원을 이르는 시간성의 층위를 내포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의 작품은 풍경을 다룬 그림에 머무르지 않고 풍경으로서의 자연을 넘어서는 보다 근원적인 질서를 담아내고자 하였다.

이러한 시도는 한국 전통회화의 정신성을 담아낼 뿐만 아니라 시간성과 물성과 같은 서구현대미술의 중요한 쟁점까지도 효과적으로 보여주었다. 자연의 생명력을 담아낸 풍경이 신몽유도원도라면 그의 도자기 형태를 바탕으로 한 그림 역시 자연을 품고자 한다. 하지만 풍경작업이 거시적인 자연관을 드러낸다면 도자기 그림은 보다 미시적 관점에서 자신에서 출발하고 있다. 자연의 확고한 존재감이 거대한 풍경으로 드러난다면 도자기 그림은 대상의 존재와 비움 동시에 그러한 현상의 순환과정에 대한 내적 사유를 담아낸다. 즉 자연을 끊임없이 동경하는 내면세계의 반영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바탕칠을 하지 않아 실의 짜임이 그대로 드러나는 캔버스 위에 하얀색 달항아리가 크게 그려진다. 도자기의 형태는 마치 실제 도자기를 빚어내는 듯 저마다 조금씩 다르다. 또한 표면은 도자기만큼 매끄럽지 않으나 붓의 흔적에 따라 조금씩 질감이 다르다. 예전과 달리 형태를 만들어나가고 색을 덧입혀 훑어내고 긁어내는 방식은 하나하나 차곡차곡 쌓아나가는 구축의 개념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리하여 표면효과는 더욱 거칠고 작가의 손길이 잘 드러난다. 게다가 그 위에 여러 다양한 꽃, 식물들이 제각각 그려지는데 이미지는 분명해지고 또한 이미지의 색층에 따라 공간의 깊이감이 달라진다. 사각형의 주어진 공간 안에서 자리잡은 도자기의 정적인 구성은 그 안에 담긴 그림의 긴장감 넘친 포치, 율동감 있는 필치와 조화롭게 어우러져 정중동의 합일을 이룬다. 바로 이 지점에서 도자기 형태로 만들어진 그림이라는 새로운 조형개념이 시도된다.

이렇듯 작가는 화면의 형태적 요소와 내용적 의미를 적절하게 구성함으로써 도자기 형태의 안과 밖의 경계를 너머 자연의 환영을 담고자 하였다. 캔버스 안과 밖의 공간, 도자기 형태를 둘러싼 안과 밖의 여백은 모두 보이지 않는 존재의 공간이다. 비록 눈에 보이지 않으므로 없는 듯 하지만, 그 안에는 어떠한 존재, 혹은 자연이 틀림없이 있다. 그러므로 식물의 이미지는 자연에 대한 작가의 추상적 사유로서 나타난 흔적인 것이다. 여기에는 스스로 만들어놓은 공간 안에서 지속적으로 자신이 지닌 존재가치를 가늠하는, 작가의 능동적 창조의지와 사유과정이 담겨있다. 석철주의 도자기 그림이 마음의 풍경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작가의 사의가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전통적인 예술관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옛 화인들이 하얗고 둥근 항아리 모습에서 만개한 보름달을 떠올리며 도자기 위에 필묵으로 무한한 세계를 표현하듯 이제 그의 도자기 그림은 새로운 도원경을 펼쳐내고 있다.

 

 

작업노트

도자기에 담은 마음의 풍경

 

내 그림의 도자기는 화면의 형태적 요소와 내용적 의미를 적절하게 구성함으로써 도자기 형태의 안과 밖의 경계를 너머 자연의 환영을 담고자 하였다. 캔버스 안과 밖의 공간, 도자기 형태를 둘러싼 안과 밖의 여백은 모두 보이지 않는 존재의 공간이다. 비록 눈에 보이지 않으므로 없는 듯 하지만, 그 안에는 어떠한 존재, 혹은 자연이 틀림없이 있다. 그러므로 식물의 이미지는 자연에 대한 나의 추상적 사유로서 나타난 흔적인 것이다. 여기에는 스스로 만들어놓은 공간 안에서 지속적으로 내가 지닌 존재가치를 가늠하는, 나의 능동적 창조의지와 사유과정이 담겨있다. 도자기 그림에 마음의 풍경을 담고 있다는 점은 나의 사의가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전통적인 예술관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이다. 옛 화인들이 하얗고 둥근 항아리 모습에서 만개한 보름달을 떠올리며 도자기 위에 필묵으로 무한한 세계를 표현하듯 이제 나의 도자기 그림은 새로운 도원경을 펼쳐내고 있다.

 

 

 

신철

 

학력

1997 단국대학교 대학원 도예학과 졸업

1990 단국대학교 도예학과 졸업

 

개인전

2016 몽펠리에 "달항아리전"

미고갤러리 "달항아리전"

2014 스테이트타워 T.S.R "달항아리전"

프랑스 한국문화원 "달항아리전"

2013 애경백화점 AK갤러리 "달항아리전"

공평아트 갤러리 "달항아리전"

2012 청강갤러리 "달항아리 가을을 담다"

2010 중국상해 컨템플러리 "달항아리전"

일본 동경 쿄갤러리"달항아리전"

2009 세종문화회관 "백자 대호달항아리전

2006 부산 벡스코 "청자연리문전"

세계일보캠퍼스갤러리"청자연리문전"

2004 통인옥션 "청자연리문전"

2003 뉴욕통인화랑 "청자연리문전

2001 통인화랑 "청자연리문전"

1999 활토갤러리 "바람의 흔적"

서호갤러리 "연리문전"

1994 토도랑갤러리 "신철 그릇전"

 

단체전

2020 우리는 왜 달항아리에 매료 되는가, 갤러리나우, 서울

150여회

 

작품소장

뉴욕블루클린박물관, 파리체루누치박물관, 한국도자재단,청학미술관, 방산자기박물관,

청강문화산업대사랑관도벽(지식의샘) , 아산자이아파트도벽(휴식) , 바비엥도벽(심연)

 

 

작업노트

달항아리는 둥그런 몸체에 아무런 무늬가 없는 조선시대의 40cm~50cm의 대형백자 항아리를 일컫는 말이다. 항아리의 희고 깨끗한 살결과 둥근 생김새가 보름달을 연상시킨다하여 붙여진 것이다. 달항아리는 17세기 후반 무렵부터 18세기 전반에 만들어졌는데 그 당시의 백자는 조선시대를 통틀어 가장 아름다운 백색과 형태를 보여주며, 그 중에서도 달항아리는 단연 으뜸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도자기를 30여년하면서, 달항아리가 가지고 있는 진정한 아름다움을 이해하지는 못했다. 2005년 한국의 국립박물관에서 조선의 달항아리 명품 전이 열렸는데, 이 전시를 본 후, ‘달항아리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무엇일까?’ 라는 궁금증이 생겨 여러 문헌을 찾고, 달항아리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런 무늬도 없는 우윳빛 흰색인 태토(Body)와 형(Shape)으로만 모든 것을 표현하는 달항아리의 제작은 그리 쉬운 작업이 아니었다. 먼저 우윳빛 흰색의 태토를 만드는 것, 그리고 일반적인 가스불이 아닌 장작불로만 만들 수 있는 부드럽고 넉넉한 조형을 만드는 것은 시간과 정성을 필요로 했다.

중간에 몇 번의 전시를 통하여 스스로의 완성도를 알아보고자 했는데, 둥근 항아리는 만들어 졌지만 내 스스로는 물론 이거니와 관람자들에게 큰 울림을 주지는 못했다. 그 이유는 단순해야 할 이 항아리에 너무 많은 것(소박함, 준수함, 당당함, 넉넉함, 너그러움, 풍성함 등등)을 담고자 하는 의욕이 앞서, 항아리의 조형에 욕심이 들어가 둥글고 예쁘게만 만들어 졌기 때문이었다.

달항아리를 통하여 나를 찾는 과정을 거치면서 힘들고 지치기도 하였지만 1000점을 만들어 불을 때면 진정한 달항아리의 아름다움을 이해하지 않을까? 또 나만의 달항아리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생각하며 작업을 시작한지 10여년이 지나 이제 1000여점을 넘은 7년이지난 지금, 나는 나의 달항아리에 간결하고 소박한 넉넉함을 담고자 한다. 또한 솔직함과 당당함을 가진 형(Shape)을 보여주는 달항아리를 만들고자 한다. 그리하여 달항아리를 통하여 보는 이들로 하여금 너그러운 넉넉함을 가지고, 달항아리에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오만철

 

학력

홍익대학교 동양화과

단국대학교 대학원 도예과

경기대학교 고미술 감정학과

 

개인전

아트플러스갤러리, 미국 샌프란시스코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기획, 광주

한컬렉션 초대, 영국

L’IME ART Gallery 초대, 프랑스 파리

한컬렉션 초대, 영국, 런던

마니프 초대, 예술의전당, 서울

아라아트센터초대, 서울

기타큐슈컨벤션센터, 일본

후쿠오카 시립 미술관, 일본

38

 

단체전

2020 우리는 왜 달항아리에 매료 되는가, 갤러리나우, 서울

250여회

 

 

평론

박영택 (미술평론가 경기대교수)

 

작가 오만철의 작품세계는 종이라는 화면, 납작한 평면에서만 이루어지진 않는다. 그는 도예를 전공해 손수 도자기를 만든다. 회화를 전공하고 또 다시 도예를 전공한 예는 더러 있지만 이 두 개 세계를 동시에 병행해가는 경우는 사실 드물다는 생각이다. 그러니까 그는 화가이자 흙을 빚어 그릇을 만드는 도예가인 셈이다. 화가이자 도공이며 평면이자 입체에 그림을 그리는 이다. 그래서 그는 입체인 그릇의 표면에 그림(도자회화)을 시술 한다. 평면과는 또 다른 공간에 자연, 산수를 펼쳐 보이거나 꽃과 나무를 즐겨 그려 놓았다. 종이의 단면에 스며들어 번지고 퍼져나가는 것과 다르면서도 여전히 자연, 식물성의 세계를 흙 위에 서식시킨다. 종이 역시 자연, 나무라면 도자기에 그림을 그릴 때에 그는 분청에 철화를 결합하는 방법을 통해 종이에 수묵을 그릴 때처럼 색감이 베어들거나 번지는 효과를 만들어낸다. 그릇은 불에 넣고 구워내기에 우연적인 효과가 무엇보다도 크다. 원하는대로 제대로 나오기 어렵다는 얘기다. 그런데 바로 그런 요소가 더욱 흥미와 도전을 부추기는 것일 수 있다. 도자기의 표면에 그려지는 그림 역시 불과 시간, 우연적 인 힘에 의해 새롭게 구현된다.

작가는 무엇보다도 조선관요에서 도공들이 만들고 화원들이 그림을 그려 만든 명품들을 떠올리며 상대적으로 오늘날 도자기에 되살려 내면서 도자회화의 중요한 성과를 모색하 고자 하는 것이다. 이런 시도는 평면작업과의 또 다른 맥락에서 동양의 수묵그림이 가능한 지점의 모색으로 보여진다. 현재의 작업은 바로 그 같은 모색의 지난한 과정으로 읽혀 지는 것이다.

 

 

작업노트

달 항아리를 향유하다

 

화공과 도공을 업으로 삼고 본격적으로 작업에 임한지 벌써 강 산이 세번째......그동안의 수많은 시련과 어려움속에서 재탄생 한 도자회화에 과분한 관심과 벅차오르는 감동을 겪으면서 이에 만족하지 않고 완성도 높은 작업을 위해 동분서주하기를 10여 년......매일 매일 도를 닦는 마음으로 조선의 도공과 화공의 예술 혼을 느껴본다. 조선의 백자들은 다양한 형태와 색감을 가지고 있다. 특히 17세기 중, 후반에 나타나 18세기 중엽까지 유행했던 조선 특유의 달항아리는 조선백자의 정수로 꼽는데 이는 중국이 나 일본에 비해 원만한 형태미와 조선의 자연 친화적인 심성을 추상적으로 표현한듯한 넉넉하기 그지없는 이 달항아리 속에서 생활철학으로 삼고자 했던 '절제미'를 엿볼수 있다. 달항아리는 기본적으로 환원 소성이기 때문에 우유같이 기름진흰색, 눈같이 정결한 흰색, 탁한 회색기운이 많은 흰색 등 그 밖에 가마소성에 따라 태토에 따라 많은 색감을 가지고 있으며, 그 당시 생활에 필요한 무엇을 담는 용기로 제작 하다보니 달항아리 겉표면에 배어나온 여러 장류들의 색감에서 그 특징을 찾아 볼 수 있다. "아주 일그러지지도 않았으며 더구나 둥그런 원을 그리는 것도 아닌것이 어리숙 하면서도 순진한 아름다움에 정이간다"는 어느선생님의 말처럼 달항아리 작업을 하다보면 점점 달항아리를 닮아가는 느낌으로 세속에 흔들리지 않고 보름달처럼 넉넉한 마음으로 가식없는 삶의 표현이 되어감을 느낀다. 마치 수행하듯 넉넉한 달항아리에 저부조를 하고 또 음각을 해서 그위에 상감을 하고 스며나온 장류등 오래된 연륜의 색감을 표현 하면서 반복적인 고단함과 노동집약적인 시간의 흐름속에 마지막으로 1330도 고온의 환원소성인 가마속 불의 세례를 받아 재탄생한 달항아리를 보면서 그동안의 수고로움과 번거로움은 어느새 사라지고 조선 도공들의 혼과 함께 삶의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달항아리속엔 조선인의 생활 철학인 절제미가 녹아있듯 나의 달항아리속엔 겸손과 자연미가 스며들고 흙의 물성을 불과함께 융합하여 도자회화의 세계로 펼쳐보이는 것이 내 사색의 근원이자 몸부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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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가중 (kimgajoong@naver.com)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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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학영르포(#85)전시회 소식 (2020-05-18 22:48:25)

이길 수 있는 그날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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