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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래창작촌을 다시 돌아보다
철공소와 예술공방의 만남
1960년대부터 영등포 서쪽으로는 소규모 철공업체들이 모여들며 철공소 밀집지역을 이루었다. 철판을 가득 실은 트럭들이 줄을 지어 다닐 만큼 호경기를 맞았는데, 산업이 기계화되고 90년대 말부터 중국산 물품이 들어오면서 문을 닫는 철공소들이 생겼다. 게다가 서울시가 철강판매상가를 외곽으로 이전시키면서 점차 문래동에 비어 있는 철공소가 늘어났다.
쇳가루 만 남기고 차갑게 변해버린 철공소 지역에 다시금 사람들로 활기를 띠기 시작한 건 2000년대 초반, 작업공간이 필요한 예술인들이 빈 철공소에 둥지를 틀기 시작했는데 저렴한 임대료가 큰 몫을 했다.
회색빛 낮은 건물들 사이로 쉴 새 없이 쇳소리가 들려온다. 좁은 골목길을 빽빽하게 채우고 있는 철제 공장마다 작업복을 걸친 직원들이 익숙한 손놀림으로 용접 작업에 한창이다. 30년도 넘게 기름밥을 먹으며 이곳에 뿌리 내린 소상공인들이다.
건물 2층으로 올라가면 예상치 못한 공간이 펼쳐진다. 철제 구조물이나 버려진 목재가 아무렇게나 나뒹구는 좁은 계단을 따라가다 보면 덩그러니 빈방 안에서 조소나 회화 작품에 열중하고 있는 작가들을 만날 수 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이곳으로 흘러들어와 그저 철공소 뿐이었던 공장 지대에 예술의 기운을 불어넣은, 새로운 주민들이다. 오랜 공업지대였던 영등포 문래동에 ‘철공소와 예술 공방’의 만남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예술인들의 공방과 오래된 철공소의 색다른 조합을 구경오는 방문객들도 부쩍 늘었다. 게다가 대한민국에 '레트로'(복고풍) 열풍이 불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철공소 앞에서 포즈를 잡기 시작했다. 특히 젊은 연령층의 방문객들이 많아 문래 철강골목이 서울에서 떠오르는 장소 중 하나로 각광을 받게 됐다. 오래되고 좁디좁은 골목들이 벽화, 다양한 컨셉의 카페와 식당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철공소 자체도 예술이다. 철근들을 어쩌면 이렇게 다양한 패턴과 색깔로 쌓아놓았을까? 예술가들이 일부러 창조적으로 빚어놓은 작품들 같다. 철공소 주인의 아이디어일까? 아니면 이곳에 입주해있는 예술가들의 발상일까?
필자의 경우 몇년 전에 이곳을 돌아본 적이 있는데 그때 만 해도 골목골목은 방문객들로 꽤 붐볐고, 카페나 식당 들도 성업 중이었다. 매거진 한경 2015.12.15자 기사에 의하면, 당시에는 100여 개의 작업실에서 250여 명의 작가들이 활동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가보니 식당이나 카페도 많이 줄어들었고 골목들도 한산하기 그지없다. 현재는 예술가들의 활동공간이나 활동상황도 어느 정도인지 파악하기가 어렵다. 철강골목 만 철강재가 가득하고 기능공들의 작업 모습이 여전한 것 같다.
겉으로만 보면 철강골목마다 다양한 크기와 모양으로 쌓여 있는 철강재와, 용접하거나 철근을 옮기는 기능공들의 모습 등만 보일 뿐 예술가들의 활동 흔적이나 공간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왜 이곳이 '창작촌'인가 의아할 정도다. 드믈게 보이는 방문객들만 형형색색으로 쌓여있는 철강재에서 예술적인(?) 구도를 찾아 카메라 셔터를 누를 뿐이다.
'Old Mullae'라는 아치가 걸려있는 옛골목 역시 철공소 사이사이로 드믄드믄 카페나 식당이 보이기는 하지만 손님들이 별로 없다. 예술가들은 2층 구석구석 잘 보이지않는 공간에서 나름대로 각자의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엉뚱하게도 철근가게 사이에 문을 연 '인공암장' 만 유일하게 젊은이들이 가득하다. 이곳도 예술인가?
문례창작촌이 너무 조용하다. 이대로 시들어가는 건 아닌지 염려스럽기도 하다. 주민에게 물어보니 방문객들이 줄어들고 카페나 식당들이 자꾸 문을 닫는 건 코로나 때문이라고 푸념한다. 문래동이 예전처럼 뭔가 예술성이 보이는, 골목이 살아있고 젊은이들이 찾고싶어 하는 '문화창작촌'으로 재생됐으면 하는 바램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