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통선 내 숨겨진 은둔의 섬, 서검도
절해고도처럼 한적한 힐링의 섬을 걷다
마을 및 해안트레킹 약 5시간 소요
최근 지인들과 민통선 내 외딴 섬 ‘서검도’에 다녀왔다.
서검도는 행정구역상 강화도 삼산면에 속한 섬으로 석모도에서 서쪽으로 2㎞, 강화에서 서쪽으로 10.2㎞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면적 2.19㎢, 해안선 길이는 6.0㎞, 최고높이 56m 정도의 낮은 구릉이 남쪽해안 양끝에 솟아 있을 뿐 대체로 평평하다.
서검도는 중국에서 사신이나 상인들이 황해로부터 한강 입구로 진입할 때 선박을 검문하던 검문소가 있었던 섬에서 유래하였다고 전해진다.
서검도에 가려면 강화도에서 석모도로 건너가 석모도 하리선착장에서 다시 서검도 가는 배를 타야한다. 석모도 하리항에서 서검도 가는 여객선은 하루 세 번(08:30, 13:00,15:50) 운항한다. 여객선은 삼보해운의 강화페리호로, 중간에 미법도를 경유한다.
드디어 석모도 하리항에 도착, 8시 30분 출발 승선권을 산 후 여객선을 기다린다. 하리항은 예상했던 대로 작디작은 선착장이다. 장난감같이 조그만 가건물에 매표소라는 표지판이 붙어 있을 뿐 주변에 가게나 주택 등 편의시설이 전혀 없다. 주민이 얼마 안되는 서검도 및 미법도 만 왕래하는 여객선이다 보니 굳이 큰 선착장이 필요하지가 않은 건 당연하다. 여객선도 차량을 실을 수 있는 차도선이긴 하지만, 정원 50명의 작은 배다.
여객선에 오르니 승객은 필자 일행 3명과 해병대 군인 2명 뿐이다. 민통선 내 최전방 군부대 주둔 섬에 간다는 사실이 실감난다. 약 6분 후 미법도에 도착하고, 하리항에서 20여 분 만에 서검도 솔책선착장에 도착한다.
배 위에서 바라보니 서검도가 일자형으로 길게 뻗어 있다. 우측 끝단은 군부대 초소가 있는 야산이고 좌측 끝에 마을이 있다. 중간은 들판이다. 원래 서검도는 우측의 솔책도와 좌측의 서검도 본섬으로 두 개의 섬이었는데 간척사업으로 두 개의 섬이 하나로 이어지게 됐다고 한다.
선착장은 우측 끝단, 즉 솔책도에 위치하고 있다. 두 섬 사이 갯벌은 15만평의 농경지로 바뀌었다.
선착장에서 배낭을 추스린 후 본격적인 섬 트레킹을 시작한다.
선착장 좌측에는 새우젓통이 꽤 많다. 주민에게 물으니 서검도에서 새우가 많이 잡힌다고 한다. 대하양식장도 눈에 띈다. 멀리 마을까지 거리는 1km 이상 됨직하다. 이 섬에는 어느 섬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이정표도 없다. 논길, 밭길 등 산책로는 잘 정비되어 있다.
간척사업으로 생긴 들판 가득 갈대밭이 펼쳐져 있어 꽤 목가적이다. 논농사를 하기 위해 수로도 잘 만들어져 있다.
우선 가보고싶은 곳이 저수지다. 중간에 태양광발전시설을 만난다. 규모가 꽤 크다. 마침 태양광시설을 점검하러 나온 기사를 만났다. 그 분으로부터 마을 현황, 트레킹 코스, 민박 및 식당 여부 등 섬에 관해 대강 정보를 입수했다. 저수지 낚시터 관리하는 집에서 민박과 함께 식사제공도 한다고 한다. 서검도에는 식당이 없는 줄 알고 간편식으로 빵을 준비해왔는데 다행이다. 사전 예약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예약까지 해준다.
점심예약도 됐으니 이제부터는 트레킹 만 즐기면 된다. 마을 가기 전에 우선 저수지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태양광 시설에서 10분 정도 가면 저수지에 이른다. 저수지가 제법 크다. 4만8천평 정도라고 한다. 이곳 저수지에서는 민물낚시가 가능하다. 붕어가 주종이지만 잉어도 잡힌다고 한다.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섬에서 민물낚시를 할 수 있다니 참으로 의외다. 저수지 곳곳에는 좌대가 설치되어 있다. 최근 날씨가 추워 저수지가 꽁꽁 얼어 있다.
저수지 제방 너머는 바다인데 해안도 얕은 곳은 얼어 있다. 멀리 교동도가 시야에 들어온다. 이곳에서 북녘 땅은 약 6km 정도 떨어져 있다고 한다.
저수지 해안을 지나 서검도 서남해안을 걷는다. 군부대 막사를 지나면 숲길로 들어선다. 사람이 거의 다니지않아 길이 거의 보이지않는다. 풀섶을 헤치고 가야 한다.
군부대 정문에서 10분 정도 가니 집 한 채가 보인다. 반갑다. 야산 허리에 터를 잡고 있는 집. 앞이 확 트인 바다 건너 남쪽 멀리 주문도와 볼음도가 시야에 들어온다. 절경이다.
이곳 집주인은 윤광로 씨(만 80). 오래전에 이곳 야산 5천평을 사서 직접 집을 지었다고 한다. 부인과 함께 노년을 그림처럼 살고 있다. 온돌방으로 만들어 장작불을 지피고 계신다. 전기는 직접 설치한 태양광을 이용하고 있다. 우리 일행이 반가운지 커피 한 잔 마시고 가라고 한다.
마침 썰물 때라 집앞 바다에는 갯벌이 광활하게 드러나 있다. 끝이 보이지않을 정도로 펼쳐진 갯벌. 윤광로 할아버지는 걸어서 직선으로 편도 두시간 정도는 걸리는 거리라고 소개한다. 갯벌도 대부분 단단해서 경운기가 다닐 수 있다고 한다. 바로 건너 섬 볼음도 갯벌이 생각난다. 볼음도 역시 직선거리로 편도 7km정도의 갯벌이 펼쳐져 있다. 몇 년 전 그 갯벌에서 백합도 채취하고 건강망으로 물고기도 잡아 현장에서 회쳐 먹었던 기억이 새롭다.
집 뒤로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산길이 정비되어 있다. 윤광로 씨가 직접 만든 길이라 한다.
산 능선길을 따라 고개를 넘으면 마을길로 이어진다. 마을이 아담하고 아늑하다. 주민들이 거의 보이지않는다. 조용하기 이를 데 없다.
마을 언덕배기에 교회건물이 보인다. 정용 목사가 담임하고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소속 교회다. 마을회관도 만나고 치안센터 및 보건소 건물도 보인다. 치안센터 입구를 기웃거리니 치안센터 소장이 나와 친절하게 맞이한다. 섬 통계수치는 치안센터에서 확인하면 정확하다. 주민수를 물으니 50가구가 산다고 한다. 어선은 두 척. 이재신 소장께서 직접 커피 대접도 한다. 고맙다.
이제 점심시간이다. 다시 저수지 앞 민박집으로 간다. 강화군 삼산면 서검길 156번길 8번지.메뉴는 가정식 백반이지만 사전 별도 예약하면 닭복음탕 등도 즐길 수 있다.
벽에는 유명연예인들 사진도 걸려 있다. 이덕화 씨, 이용식 씨, 전지현 씨, 이정재 씨 등이 낚시하러 왔던 사진이다. 섬에서의 민물낚시터가 유명한 모양이다.
또, 벽에는 2022년 1년간 삼보해운의 1시배 결항예정일 표가 걸려 있다. 물때에 따라 수위가 낮으면 배가 움직일 수 없기 때문이다. 서검도 여행자에게는 매우 유용한 정보다.
다음 트레킹 코스는 당산. 마을을 지나 섬 남동쪽 능선 끝단까지 간다. 능선숲길은 비교적 잘 정비되어 있지만 당산에서 당집이나 당제를 지냈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철탑을 따라가면 세 번째가 마지막이다.
바로 발 아래에는 괴리섬이 지척으로 내려다 보인다. 괴리섬은 미법도에서 서검도로 가는 항로 중간에 있는 무인도다. 지금은 한전 송전탑이 섬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서검도 앞 바다로 침투한 남파간첩이 그 섬에 숨었다가 도주한 뒤부터 섬의 이름이 괴뢰섬으로 바뀌었다는 설이 있다. ‘괴뢰’란 호칭은 북한정권을 소련의 꼭두각시로 보던 시대의 산물이다. '삼산면지'에 따르면 괴뢰섬은 본래 귀아리섬이었다. 한자로 옮기면서 귀하도(歸下島)가 됐고 그것이 괴뢰섬으로 바뀌었다가 남북관계가 유화국면으로 접어들면서 다시 괴리섬으로 부르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능선에서 내려다보는 갯벌이 장관이다. 특히 갯벌이 끝나는 곡선 바다라인이 한 폭의 그림같이 아름답다. 햇살이 쏟아져 내려 갯벌이 보석처럼 빛난다.
능선 끝단에서 조금 되돌아 나와 남쪽 해안으로 내려가본다. 길이 없어 관목숲을 헤치고 내려가야 한다. 물빠진 해안을 걷는 트레킹도 즐겁기 그지없다. 갯벌과 갯골, 다양한 기암들도 만날 수 있다. 괴리섬을 뒤로 하고 바위해안을 계속 걷는다. 거북모양의 바위도 보이고 벌집 모양의 타포니바위도 눈에 띈다.
조그만 바위동굴도 만난다. 편의상 ‘용굴’이라 이름붙여본다. 동굴 안으로 들어가 밖을 향해 실루엣으로 사진을 찍어본다. 용굴 앞에는 바둑판바위도 눈에 띈다. 신선이 바위에 올라가 바둑을 두었음직한 모양이다.
남쪽해안에도 수만평에 이르는 간척지가 보인다. 근래 조성한 간척지라고 한다. 잡초가 무성한 걸 보니 아직은 논으로 경작될 정도는 아닌 것 같다.
제방 끝까지 가면 마을로 이어진다. 현재도 식수로 사용되고 있는 야외우물도 만난다. 물이 귀한 섬에서 지금도 야외우물을 식수로 사용하고 있다고 하니 이 또한 놀랍다.
이제까지 걸은 서검도 트레킹은 솔책선착장-태양광시설- 민물저수지-군부대 폐막사-산속 외딴집-마을(교회, 마을회관, 치안센터)-민박식당-당산-제3철탑-남쪽 바위해안-거북바위-용굴-신 간척지-마을우물 코스로 약 5시간 소요됐다(점심시간 및 산속 외딴집에서의 휴식 시간 제외). 약 25,500보 정도 걸었다. 당산 및 해안트레킹을 줄이면 3시간 대로 섬을 돌아볼 수 있을 것 같다. 노지에 홀로 피어 있는 야생화같은 섬을 돌아본 느낌이다.
서검도 트레킹을 마무리하고 마지막으로 이 섬에서 가장 연장자이고 고향이 이북이신 어른을 만났다.
서검도는 노년층 주민들이 대부분이다. 최연소 나이는 55세 정도, 가장 나이드신 분은 92세의 소영주라는 분이다. 부인 이옥님은 91세이시다. 부인은 이곳 서검도가 고향이고 소영주 할아버지는 황해도 연백이 고향이다. 1·4후퇴 때 내려왔다고 한다. 아직 기억력도 좋으시고 말씀도 뚜렷하시다. 소영주 할아버지로부터 북녘 고향 땅 이야기를 듣는다. 말씀하시는 할아버지의 눈이 그렁그렁하다. 1남2녀를 두셨다. 한국전쟁 때 전상을 입은 국가유공자이시기도 하다. 아무쪼록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시기를 빈다.(글,사진/임윤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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