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진방송] 김재완 기자 = 제17회 광화문국제아트페스티벌 및 광화문국제아트포럼(회장 이남찬) 에서 11월 9일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1층에서 올해의 작가상 수상자 서양화가 박태병, 이규혁 시상식이 개최되었다. 본 전시는 11월 15일까지 열리다.
작가는 수년 전에 제주도로 거처를 옮겼다. 그래서인지 소라와 바다를 연상시키는 이미지, 색채가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제주도라는 자연 풍경의 재현과는 거리가 멀다. 작가는 제주도에 전해 내려오는 온갖 전설과 신화, 아득한 태고의 사연과 무수 한 시간의 흔적과도 같은 비가시적인 것들에 시각적 존재의 자리를 마련해주고 자 한다. 그림은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이는 영역으로, 현재의 시간으로 불러들이는 일이다.
물감이 질펀하게 문질러져 번지고 퍼지고 흐르고 밀려나간 흔적들로 채워진 화면에 문득 소라나 인간의 두상이 불현듯 겹쳐 떠오르는 그림을 보는 이들은 저 소라나 사람의 얼굴/귀가 되어 그곳에서 들려오는 모든 소리에 순간 집중하게 한다. 그것이 매개가 되어 까마득한 기원에 가닿고자 하는 환영에 잠기기도 한다. 작가의 그림이 무수한 잠재적인 이미지와 이야기가 얽힌 비결정성의 지대로 보는 이들을 초대하는 것이다.
일본 나고야(명고옥) 애지현미술관에서 열린 제41회 일본중 부미술문화전에서 우리나라의 박태병씨가 출품한 "자연회귀4"가 국내 화가로서는 최초로 양화부문 대상을 차지, 국내외 미술계의 주목을 끌고 있다. 일본 중부미술문화협회주관으로 중일신문사 동해TV 나고야타임스사 등이 후원한 이번 전시회에 박씨가 출품한 작품은 소의 머리부분을 기본테마로하여 혼란한 인간세상을 소가 바라보고 생각하는 장면을 묘사한것으로 "의미깊은 수준작"이라는 현지화단의 평가를 받고 있다.
추상적인 구성으로 되어있는 이 작품은 서울 교외의 한가한 농촌에 화실을 갖고 있는 작가가 잃어만 가는 자연에 대한 향수를 그리워한다는 내용. 특히 소와 혼란한 세상인물 등을 농촌 풍경과 함께 묘사하면서 대담한 색상을 사용, 약동감 넘치는 화면으로 구성함으로써 독특한 화풍을 그려냈다.
박태병 그림에서 인상적인 것은 질감과 색채다. 물질성과 색채 감각이다. 여기에는 이 작가 특유의 물감/물질에 대한 취향이 우선하고 있다. 물감을 반죽하듯이 또는 기존의 그리기에서 다루어지지 않는 방식으로 활용하고 성형해내면서 물질이 지닌 성질을 극대화하면서 이를 그림 그 자체로 내밀고 있다. 재료 자체가 그림이 되고 물질이 어떻게 작가에 의해서 가공, 연출되느냐에 따라 화면은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림은 재료가 변해가는 과정 그 자체에 있다고 본다.
작가는 물감과 함께 이질적인 재료의 혼합을 통해 특이한 살, 몸을 만들고 두꺼운 반죽이 된 화면이자 눅눅하게 스며든 습성의 표면, 그리고 여러 층차를 지니며 불균등하게 덧칠된 표면 등을 보여준다. 그려진 그림이자 만들어진 화면이고 일종의 부조적인 표면이다. 그리고 물질들 스스로가 말하는, 물질의 음성으로 이루어진 그림이다. 그러니 이 물질은 그 자체가 형태를 산출할 가능성을 지닌, 잠재적 에너지를 응축하고 있는 팽창된 존재가 되어, 생명력을 내재한 적극적인 힘을 지닌 존재가 되어 달라붙어 있다는 인상을 준다.
동시에 이 물질은 현란한 색채, 앞서 언급한 신비스럽고 환상적인 색채를 몽환적으로 거느리면 출현한다. 시각적 환영이 아니라 촉각적이고 드라마틱한 질감과 표면 연출에 치중하는 이 그림에서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요소는 이처럼 색채다. 색의 의미는 사람들 속에 내재하고 축적된 어떤 경험에서 비롯되는 것이지 색상환표의 경우처럼 지적으로 분류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니 색채에 대한 감각은 작가의 오랜 경험(앞서 언급한 자연에서 체득된)과 관련이 있다.
박영택 (경기대교수, 미술평론) “잠재적인 이미지와 이야기가 얽힌 비결정성의 지대”
박태병의 화면은 물감 자체의 흐름과 질감의 풍성함이 이룬 희한한 표정으로 가득하다. 그것은 캔버스 피부 위에서 이루어지는 특유의 표면 효과만으로 모종의 회화성을 충족시키고 있다. 무엇보다도 횡으로 거침없는 붓질이 문질러나간 단호한 자취가 인상적이다. 여기서 마치 혁필화에서 접하는 선의 기세와 물감의 유동적인 흐름을 만난다. 힘차게 그어나가 한 획에 여러 색들이 연속적으로 물결무늬를 짓고 파동치면서 글자와 그림을 동시에 안겨주는 혁필화의 기세나 흐름이 얼핏 연상된다.
수평으로 내달리는 붓질 사이로 뭉개지고 풀어지는 물감의 유동적인 떨림이 가득하고 한편으로는 각 내부를 촘촘히 채우고 분절시키는 색면 내지 여러 효과를 동원해 마감하고 성형해나가는 다양한 흔적들이 또한 화면을 힘있게 장악하고 있다. 따라서 이 그림은 사각형의 화면을 우선적으로 환상적인 색채, 특이한 물감의 물질적 상황으로 이루어진 피부로 만들고 있다. 그리고 그것들이 짓는 여러 표정, 사태를 연출해내는 작가 신체의 힘의 강도와 속도, 행위와 시간 역시 고스란히 축적되어 밀고 올라오는 그림이기도 하다.
이처럼 작가의 그림은 표면의 속도감 있는 붓질의 속력과 감각기관에 전달되는 강도의 차이로 인해 형성된 여러 표정을 짓고 있다. 그것이 일반적인 그림과는 다른 표면, 얼굴, 그리고 낯선 스타일을 드러낸다. 그린다기보다는 물감을 통한 질료적 표정을 우선적으로 성형하는 일이고 작가 자신의 몸으로 축적된 몸의 감각의 떨림을 물감의 살로 으깨놓는 일이자 번져 내는 일이 박태병의 그림이다. 따라서 무엇을 그렸다기보다는 작가 자신의 몸짓, 마음 혹은 무의식적인 움직임을 탁본처럼 떠낸 그림이 되고 있다는 인상이다.
그런 면에서 온전히 물감만으로, 그 물감의 질료적 성질을 활용해 이룬 촉각적이고 부조적인 동시에 추상적인 화면이 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작가는 최소한의 이미지를, 무엇인가를 연상시킬 수 있는 단서와도 같은 형상을 질료의 더미 사이에 숨겨 놓았다 눈동자나 소라의 형태, 그와 겹쳐있는 사람의 얼굴. 화석이 된 생선 뼈와 같은 것들 내지 오래된 바위나 나무, 바닷가의 어느 풍경 내지 소멸되고 스러진 자연의 이미지 같은 것을 다소 환각적으로 연상시켜주기도 한다. 구상과 추상이 은연중 혼재하고 있으며 구체적인 이미지가 불현듯 등장하다가 이내 주변 배경의 물감과 붓질의 흘러내림 속에 자연스레 용해되기도 하고 무수한 색채의 얼룩 안에서 온갖 희한한 이미지들이 안개처럼 피어오르기도 한다.
질료와 이미지 사이에서, 실제와 환상 사이에서 교차하는 그림인 셈이다. 이처럼 그림은 이미지이면서도 질료이기도 하다. 물감을 비롯해 그림에 동원되는 물질들은
화면 위에서 변신을 거듭하면서 새로운 모습으로 환생하고 낯선 얼굴과 이질적인 질감, 감각을 발생시키면서 본래의 존재로부터 이탈되어 나온 것이다. 특히 유사한 것에서 익숙한 것을 파생시키는 방법론은 다분히 초현실주의자들의 그림에서 흔히 발견하는 방법론이다. 의식의 통제에서 나오는 산물이 아니라 내적 본성이나 무의식 혹은 영감이나 비전, 직관적 결정의 산물에 가까운 그림이다. 상당히 즉흥적인 화법이나 표현적인 제스처, 그리고 물질성에 대한 관심, 구상과 추상의 공존, 붓질/필획에 대한 두드러진 강조, 반형태적 그림, 환상적인 색채, 초현실적인 공간 구성 등이 복합적이고 중층적으로 뒤섞인 이 그림은 초현실주의, 앵포르멜, 추상표현주의 등의 여러 요소들과 영향 등이 두루 탑재되어 있다.
그렇지만 동시에 이 그림의 심층에 자리하고 있는 것은 그가 경험하고 체득한 자연에 대한 신비하고 오묘한 매력과 아름다움, 모종의 기운/생명력이라고 생각한다. 박태병에게 그림의 근원은 결국 자연이다. 그는 오랜 시간 자연에서 접한 무수한 이미지들, 그 형태와 질감, 색채를 통해 경험된 것들이 의식하지 못한 상태 속에서 그림으로 표출되어 스스럼없이 밀고 나왔다고 본다. 결국 그림을 이루고 있는, 만들고 있는 모든 것들은 작가 자신에게 잠재된 기억의 흔적들이자 무의식으로부터 발생하는 일련의 사건에 해당하는 것이다.
박태병
제41회 중부미술문화전 미술문화상·반각구상 수상(아이치겐미술관)
반각구 장려상 수상자전(일본 반각구갤러리)
제55회 미술문화전 장려상 수상(동경도미술관)
한국 현대작가전(대북시 금천화랑)
한국·일본작가전(선화랑)
개인전(백상갤러리)
4.19 EBS 공사출범 축하퍼포먼스 참여
8.17 제5회 울산 태화강축제 축하퍼포먼스 참여
現 일본 77회 미술문화전 회원
광화문국제아트페스티벌 초대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