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 Hoan Kiem Lake 공원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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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출장

등록날짜 [ 2022년11월24일 11시39분 ]

하노이 가는 길에

인천국제공항 월요일 아침 9시10분. OZ 0729편
하노이행 아시아나 A321-200 NEO 여객기는 만석이었다. 활주로에서 빠르게 바퀴를 굴리던 비행기가 출발선에 멈추었다. 마치 백미터 달리기 선수처럼 잠시 숨고르기를 하더니 이내 굉음을 뿜어내며 전력 질주한다. 이보다 더 묵직한 몸체가 이륙하려면 분명 더욱 큰 소리와 울림이 뒤따르겠지.
잠시 뒤 여객기는 차가운 겨울 공기를 가르며 새털처럼 가볍게 공중에 떠올랐다.
신기하다. 이렇게 무거운 쇳덩이가 하늘을 날다니! 불안한 마음이 있지만, 믿고 갈 뿐이다. 비행기를 뜨게하는 엄청난 추진력! 다섯 시간 하늘을 날아 목적지에 사뿐히 내려앉을 것이다.
비행기의 정체성, 역할, 목적, 목표는 승객을 여기서 저기 다른 세계로 무사히 잘 모시는 것이다. 나는 익숙한 이 세상에서 낯선 다른 세상으로 넘어가는 중이다.

어머니!
이륙하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늘 자식 걱정하시는 팔순의 어머니를 생각했다. 어머니는 태아의 세상이다. 우리가 세상에 나올 때 힘들다고 굉음을 내며 신고식을 치루었다. 어머니의 산고는 나를 세상으로 밀어내는 강력한 추진력이었다. 우리는 모두 그렇게 어머니라는 비행기를 타고 이 세상으로 건너왔다.

올해 내 나이 회갑이다.
예전에는 동네 잔치를 열었다. 친지 가족이 모여 예순 한 살 노인의 장수를 축하했다. 평생 사진관 하시던 아버지는 잔치하고 한 해 더 사셨다. 간암, 폐암 진단 받고 석 달 만에 돌아가셨다. 나는 만 육십 년을 살았고 아버지 나이가 되었는데 아직 팔팔하니 이상하다.
할 일 했고 살만큼 살았으니 오늘밤 푹 자고 내일은 눈 뜨지말까? 가수 김광석은 어느날 "이제 그만 살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그는 심금을 울리는 노래를 남겼다.

뭐 별로 한 것도 없이 세월만 보냈으니 저 세상으로 넘어가기 전까지 좀 더 의미 있게 살아보라는 하늘의 깊은 뜻이 있을까?

지난 3년, 코로나 역병은 지구촌 많은 사람에게 큰 시련을 주었다. 무역은 오고감을 멈추었고 작은 일거리마저 사라졌다. 취미생활은커녕 가족의 생계를 위협받을 지경에 이르러 시름은 깊어지고 고통스런 나날이 지속되었다.

인생 새옹지마.
다행히 올해는 좋은 일이 많이 생겼다. 대학 졸업한 아들과 딸이 취업했다. 자칭 문학도인 내가 작가 되길 소원했었는데 드디어 한국 문단에 등단했다. 이십 년 전에 일했던 업체에서 나를 불러 일자리를 주었다. 해외영업부 이사.
덕분에 오늘 베트남 출장을 떠나고 있다. '노병은 죽지 않았다.'라고 생각하며 자신을 위로했다.
한국사진방송 기자 역할도 있다. 두 어깨가 결코 가볍지 않다.

날개.
이 비행기처럼 나도 좀 더 날아서 목적지를 향해 달려갈 테다. 그런데 무엇을 하며 살지?
죽는 날까지 글을 쓰겠다.
사진을 찍고 글을 쓰겠다.
사랑과 평화, 희생과 봉사, 정의롭고 공정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보겠다.
단 위에 오른 연극 배우는 등단의 기쁨에 취하기보다 극을 시작해야 한다는 사실을 직시하라. 등단은 시작일뿐이다.
날개를 펴라. 날자. 날자꾸나.

내가 떠나는 날에는 굉음을 내지 않고 새털 처럼 가볍게 소리없이 사라지겠다. 새로운 세상으로.

비행기는 이제 바퀴를 꺼내고 하노이 노이바이 국제공항에 내릴 준비를 한다. 부디 부드럽게 착륙해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