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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실미도...
시간 속으로 잠긴 섬
실미도는 인천광역시 중구 용유동에 딸린 무인도로, 섬 대부분이 해발고도 80m 이하의 야산으로 이루어져 있다.면적은 7만 5,870평, 둘레는 6㎞이다. 인천광역시에서 남서쪽으로 20㎞ 정도 떨어져 있으며, 영종도(永宗島) 인천국제공항 바로 아래쪽 무의도(舞衣島)와는 하루 2번 썰물 때 갯벌로 연결된다. 해안은 모래와 갯벌이 뒤섞여 있다.
1968년 북한의 무장게릴라들이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 서울 세검정고개까지 침투했던 1·21사태에 대한 보복으로 중앙정보부가 창설한 북파부대원 31명이 3년 4개월 동안 지옥훈련을 했던 뼈아픈 장소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북파부대원들이 1971년 8월 23일 실미도를 탈출해 버스를 빼앗은 뒤 서울로 진입했다가 자폭한 ‘실미도사건’ 이후에도 이 섬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
그 후 실미도 북파부대원들의 실상을 파헤친 백동호의 소설 《실미도》가 1999년 발표된 뒤, 이 소설을 원작으로 각색한 강우석 감독의 동명 영화(2003년 12월 개봉)가 개봉 58일 만에 한국 영화사상 처음으로 1,000만 관객을 돌파하면서 33년간 베일에 가려 있던 실미도의 역사도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실미도는 무의도에서 썰물 시간에만 건너갈 수 있는 조그만 무인도이다.
무의도 가는 방법은 영종도 옆 잠진도선착장에서 배로 불과 5분 남짓이면 건너간다. 인천국제공항 3층 5번 게이트에서 매시간 20분에 출발하는 222번 버스를 타면 잠진도 선착장까지 10분 정도 걸리며, 자가용의 경우 잠진도선착장까지 직접 갈 수 있다. 잠진도는 원래 영종도 옆섬이었지만 현재는 영종도와 연륙도로로 연결되어 있다.
잠진도선착장에서 매 30분마다 무의도 건너는 배가 있다. 여객선은 승객 300명을 태울 수 있는 중형 배로 자동차도 함께 실어 나른다. 도선요금은 왕복으로 대인 3천원, 승용차는 2만원이다. 잠진도선착장 바로 건너편에 무의도가 보인다. 잠진도, 무의도 선착장 왼편에는 사렴도가 떠 있고 멀리 매도랑이라는 특이한 이름의 섬도 보인다. 물 빠진 바다. 갯벌 위에 홀로 누워있는 배 한척이 쓸쓸하다. 무의도 큰무리선착장에 도착하면 먼저 마을버스가 기다린다.
실미도 전체 모습은 무의도 국사봉과 호룡곡산 정상에 오르면 가장 잘 보인다. 무의도는 관광지로도 유명하지만 산을 즐겨찾는 등산객들에게는 국사봉-호룡곡산으로 이어지는 섬 산행지로도 유명하다.
무의도 큰무리선착장에 내리면 바로 앞에 계단으로 된 등산로 입구가 보인다. 이 방향은 당산-실미고개-헬기장-국사봉-구름다리-호룡곡산-호랑바위-하나개해수욕장으로 이어지는 코스로 무의도에서 가장 긴 산행코스이다. 큰무리선착장 바로 앞에 보이는 조그만 봉우리가 당산인데 당산을 거치지 않고 바로 국사봉을 오르고자 할 경우에는 선착장 좌측 해변길로 10분 정도 떨어진 큰무리마을(연꽃마을이라고도 한다)에서 이정표를 따라 좌측능선을 타도 된다.
필자의 경우 무의도 산행은 두번 다녀온 적이 있지만 실미도는 무의도에서 바라보기만 했을 뿐 올 때 마다 일정이 맞지않아 그동안 건너가 보지 못했다.
따라서 이번 여행의 주 목적은 실미도를 둘러보는 것이다. 실미도는 실미유원지에서 물때에 맞춰 물이 완전히 빠졌을 때 건너갔다 와야 한다. 현대판 '모세의 기적'이 이곳에서도 어김없이 이루어진다. 물때는 계절, 날짜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잠진도 선착장에 꼭 확인해야 한다. 또 국립해양조사원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바다갈라짐 예보’가 올려져 있어 이를 확인하면 된다. 예를 들어 2012년 3월의 경우에는 3월 3일 02:28-08:56 및 17:07-21:47, 3월 10일 09:23-15:08 및 21:00-02:49, 3월 24일 09:13-14:49 및 20:49-02:37 사이에 바닷물이 갈라진다. 실미유원지에는 소나무숲이 있고 모래해안이 길게 뻗어있어 해수욕장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필자가 실미도를 찾아간 날은 물때를 사전에 확인하지못해 당일치기로 실미도를 다녀오는 것이 어려웠다. 실미도는 무인도라서 건너갔다 당일 반드시 돌아와야 하기 때문이다. 주말이라 이곳 무의도에서 하루 더 머무르면서 아직 가보지못한 광명항의 '소무의도'를 방문하기로 하고 실미도는 다음 날 물때에 맞춰 다시 건너가기로 했다. 시간여유가 있으니 천천히 실미유원지 해변을 걸어본다.
실미유원지 해변을 걷다보면 건너편에 실미도가 잡힐 듯이 보이고 바다 가운데에는 특이한 모양의 기암도 보인다. 물 빠진 모래사장은 아직 아무도 와보지않은 처녀지다. 처음 생긴 발자국. 길은 늘 이렇게 만들어지고 사람들은 그 길을 따라간다.
실미도로 건너가는 길목에는 '실미도 사건'과 영화를 소개한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영화 '실미도'. 주인공 설경구(강인찬 역)의 가슴에 쓰여진 글이 섬뜻하다. '이름도 없었다. 존재도 없었다. 살려둘 이유도 없었다!' 그 이름 684 북파부대. 영화 <실미도>는 1968년 창설된 ‘실미도 684부대’에 관한 영화이다.
소무의도를 다녀온 후 광명항 펜션에서 하루 밤 묵고 다음 날 아침 일찍 실미도를 건너간다. 실미도 건너가는 길은 물이 빠지면 돌다리와 모래밭이 은밀한 속살을 드러낸다.
돌다리를 건너 모래밭은 걷는다. 좌측 멀리 산길 입구가 보인다. 실미도는 조그만 섬이라 약 2-3시간 정도 머무르면 충분하다. 섬 해안에서 여유롭게 더 쉬고싶다 해도 바닷길이 열리는 반나절 안에 돌아와야 한다. 산길도 아기자기하고 바위해안과 모래사장을 걷는 맛도 그만이다. 산책로 입구에는 다시 영화 '실미도'를 소개하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이곳 실미도는 특이하게도 영화 세트장이 모두 사라지고 없다. 이름없이 사라져간 북파공작원들처럼 세트장도 그렇게 없애버린 것 같다. 그래서 실미도는 더욱 슬픈 섬이다.
“북으로 간 아버지 때문에 연좌제에 걸려 사회 어느 곳에서도 인간대접 받을 수 없었던 강인찬(설경구 분) 역시 어두운 과거와 함께 뒷골목을 전전하다가 살인미수로 수감된다. 그런 그 앞에 한 군인이 접근, '나라를 위해 칼을 잡을 수 있겠냐'는 엉뚱한 제안을 던지곤 그저 살인미수일 뿐인 그에게 사형을 언도하는데... 누군가에게 이끌려 사형장으로 향하던 인찬, 그러나 그가 도착한 곳은 인천 외딴 부둣가, 그곳엔 인찬 말고도 상필(정재영 분), 찬석(강성진 분), 원희(임원희 분), 근재(강신일 분) 등 시꺼먼 사내들이 잔뜩 모여 있다. 그렇게 1968년 대한민국 서부 외딴 섬 '실미도'에는 기관원에 의해 강제차출된 31명이 모인다.
영문 모르고 머리를 깎고 군인이 된 31명의 훈련병들, 그들 앞에 나타난 의문의 군인은 바로 김재현 준위(안성기 분), 어리둥절한 그들에게 ‘주석궁에 침투, 김일성 목을 따 오는 것이 너희들의 임무다’라는 한 마디를 시작으로 냉철한 조중사(허준호 분)의 인솔하에 31명 훈련병에 대한 혹독한 지옥훈련이 시작된다.
'684 주석궁폭파부대'라 불리는 계급도 소속도 없는 훈련병과 그들의 감시와 훈련을 맡은 기간병들. ‘낙오자는 죽인다, 체포되면 자폭하라!’는 구호하에 실미도엔 인간은 없고 '김일성 모가지 따기'라는 분명한 목적만이 존재해간다. 조국의 부름에 목숨을 걸고 응답한 청년 기간병들과 분단 조국이 내몰았던 사지의 땅에서 자기 자리를 찾기 위해 울부짖으며 죽어간 서른 한 명 훈련병들의 영혼. 역사는 흘러갔지만 섬 ‘실미도'는 여전히 그곳에 떠 있다.”
실미도 숲은 낮은 야산으로 산책하기에 아주 좋다. 영화 ‘실미도’ 안내판 좌측 숲길을 오르면 아기자기한 소나무숲 오솔길이 이어진다. 연인과 함께 오면 어울릴 것 같은 길이다. 이곳 소나무숲에서는 영화같은 처절함이나 슬픔은 찾아볼 수 없다. 오직 싱그러운 생명의 활력만 있을 뿐이다.
산책로 입구에서 약 5분 정도 숲길을 가로지르면 시야가 트이면서 실미도 뒷쪽 해안이 나타난다. 어제는 파란 하늘을 보였는데 오늘은 날씨가 흐리다. 회색바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쓸쓸한 해안. 파도소리만 섬의 정적을 깨운다. 오히려 맑은 날 보다는 오늘같은 흐린 날씨가 실미도의 분위기에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해안으로 바로 내려가지않고 오른 쪽 숲을 헤치고 간다. 잡풀에 덮혀있는 우물터도 보인다. 오래 전 누군가 사용했을 우물. 누군가는 구태어 말하지않아도 짐작이 갈 것이다. 길도 제대로 나지않은 숲길. 덤불을 헤치고 몇 분쯤 가면 기암괴석들이 늘어서 있는 넓은 해안공터가 나타난다. 코키리 모양의 바위도 있고 바로 옆에 층층바위도 서 있다. 거대한 주먹바위도 보이고 송이버섯 모양의 바위도 있다. 이름없이 사라져간 31명의 북파공작원들의 영혼이 피어난 것일까? 해변가에는 활짝 핀 연꽃 모양의 큰 바위도 보인다.
배낭을 열고 가져온 막걸리와 안주를 꺼낸다. 잠시 눈을 감고 그들을 생각한다. 바위 여기저기 그들의 손때, 그들의 숨결이 묻어있을 바위에 술 몇잔 부어준다. 그리고 내 가슴에도 술을 붓는다. 카메라 망원렌즈의 줌을 당겨본다. 멀리 바다 위에 떠 있는 바위 끝에 이름모를 새 한 마리 앉아 있다. 실미도의 아픔을 알고 있는 것처럼 하염없이 하늘만 바라본다.
실미도 뒤쪽은 바위와 돌이 유난히 많다. 물 빠진 해변은 해안선을 따라 검은 색 돌들이 바둑알처럼 빽빽이 깔려있다. 멀리 긴 모래밭도 보인다. 돌 해안을 걷고 모래밭 해안도 걷는다. 그냥 걷기만 한다. 마음이 비워지는 것 같다. 아무 생각없이 계속 이렇게 걷고 싶다. 모래밭에는 가느다란 물길이 거미줄처럼 퍼져 있다. 마치 실핏줄 같다. 피가 흐르는 바다. 그런데도 그 바다는 언제나 무심하고 냉정하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오늘도 변함없이 파도만 흘려보낸다. 처음 찾아 온 실미도. 두시간 남짓 머무는 동안 그 섬은 내 가슴 속에 또 하나의 섬을 남겨주었다. 슬프고 외로운 섬이었다.
바다가 토해낸 갯벌은 참으로 황량하다. 전쟁이 휩쓸고 간 도시처럼 회색 빛깔의 흔적들만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곧 파도가 밀려오면 이곳 폐허도 다시 물 속으로 잠길 것이다. 내가 남긴 모래밭의 발자국도 함께 사라질 것이다. 모든 흔적, 모든 과거는 그렇게 사라질 것이다. 실미도처럼, 실미도의 흔적처럼 시간 속으로 숨어버릴 것이다.(글,사진/임윤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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