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아트눈 기획 ‘김동진 초대전’
일시 : 2024.6.9부터 6.30일까지
장소 : 강화도 더리미길 24 갤러리아트눈 제 2전시장
표리表裏 사이의 아우성
표리, 이 유기적이면서도 이질적인 이중구조는 모든 사물의 근원적이고 기본적인 존재방식이다. 나아가 우리의 관념도 다르지 않아서, 대체로 이성적으로 정제된 외면, 원초적으로 응축되는 내면의 구조가 불가분으로 양존한다.
태생이 서예인이라 평생 글씨를 써왔지만 사실 이성적인 문자놀음에 항변을 시작한지 오래다. 물론 평생을 다듬어 온 습성을 폐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면과의 유기적인 결과물을 생산해 내기에는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 석연치 않다. 많은 부분에서 내외가 상반된 행위를 반복해 왔던 것이다. 겉으로 아무리 이성으로 치장해도 내면은 사실 의도하든 하지 않든 외적으로는 지양하는 온갖 가식과 비굴함, 일탈의 욕구 등이 오랜 세월 적체되며 뒤섞여 왔다.
다만 이것들 또한 외면을 결정짓는 중요한 원천으로 작용하며, 내 삶을 지탱해 온 필연적인 자양인 동시에, 살아내기 위해 안간힘을 써온 결과물임을 자각하며, 겉과 속, 그 사이의 협화음 또는 불협화음에 의식을 맡긴다.
-작업노트 중에서
김동진 작가의 작품은 전반적으로 먹작업과 아크릴물감을 주재료하는 회화가 함께 진행되는 가운데 보편적인 회화정서와는 사뭇 다른 접근방식을 취한다.
단순한 점선의 중첩으로 획(畵)의 본질만을 취하고 있는 먹작업은 물론, 아크릴회화의 경우도 화면 곳곳에 문자인 듯 문자가 아닌 서사(書寫)의 흔적들이 마치 낙서처럼 산재해 있고, 또는 전각(篆刻)에서 운용되는 도흔(刀痕)이 새김이 아닌 그리기를 통해 확장적으로 재현되며 강렬하면서도 심장한 인상을 제공하며 독특하다 싶으면서도 심지어는 상식에서 비켜 간 이질감마저 느끼게 한다. 그리고 전시장 한쪽에 숨은 듯 걸려있는 한 점의 서예작품이 이와 같은 작가의 작업성향의 근원을 알게 한다.
작가는 어려서부터 필묵에 길들여지고, 급기야는 대학에서조차 서예를 전공하며 수십 년 동안 서예에 천착해 온 중견서예가다. 그러한 작가가 어느 때부터인가 전통서예의 범주를 벗어나 이처럼 추상회화로의 실험을 감행하기 시작했다.
작가는 이에 대해 오랜 습성에 대한 권태의 결과이자 일탈이라고 진담 반 농담 반의 해명을 한다. 그러나 작품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 실상은 결코 단순한 권태와 일탈로 규정지을 수는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오히려 장르의 경계를 의식하지 않는 작가의 기본적인 작업태도가 의도한 변화의 결과라고 해야 옳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는 작품 전반을 아울러 순도 높게 운용되고 있는 서예성과 회화성의 혼재가 반증한다. 회화와의 경계 허물기를 주저 없이 실행하면서도 본질적으로는 서예의 스펙트럼을 여전히 견지해 가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이에 대해 “서예는 평생에 걸쳐 나의 자존을 지켜온 버팀목이자 현재 기치를 세울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유효한 경쟁력이다. 다만 내면에 대한 회의와 철학적 제문제, 시대적 트렌드에 적응하기 위한 확장성의 필요 등 여러 요구에 의해 변화를 지향하지만, 나는 여전히 서예를 존중한다.”라고 단언한다.
이 같은 작가의 말이 일면 고집스럽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자신이 갖추고 있는 습성의 변용에 대한 과감성이나 새로운 요소의 거침없는 수용으로 볼 때 단순히 수구적으로 이해할 수는 없다.
그보다는 궁극적으로 ‘진정한 나 다움’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리고 그 결과는 작품을 통해서 충분히 발현되어 서예가가 지향하는 추상회화의 특징적인 경계를 형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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