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부처님의 손, 詩人이 되다
관조스님과 한국의 대표시인 19명 시사진전
봉은사 미륵전 2011.5.17-6.6
지난 5월 17일부터 6월 6일까지 강남 봉은사 미륵전과 미륵대불 주변에서는 관조스님(1943-2006)의 '부처님의 손' 사진과, 각각의 불상에 대한 한국의 대표시인 19명의 시를 모은 '부처님의 손' 시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이번 봉은사 사진전은 국립춘천박물관, 통도사 성보박물관에 이어 세번째 전시이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관조스님의 사진작품 20점을 비롯해, 이근배, 오세영, 오탁번, 유안진, 강은교, 김광규, 김기택, 김명인, 김용택, 도종환, 문인수, 문정희, 안도현, 윤금초, 이문재, 이상국, 이영춘, 정현종, 허만하 등 한국의 대표시인 19명의 시와 함께 조계종 전 총무원장 지관 스님의 법어도 전시되고 있다.
전시되는 사진 및 시 작품들은 경주 굴불사지 석조사면불 약사여래좌상을 비롯해 서산 용현리 마애삼존불 본존상, 강릉 신복사지 석조보살좌상 등 전국 각지의 불보살 수인(手印)들이다.
석가모니는 8만4천의 설법을 펼쳤으면서도 "한 마디도 설한 바가 없다"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고 한다. 이는 깨달음의 경지가 지극히 오묘해 인간의 언어로는 표현하기가 불가능하며, 결국 무수한 법문도 하나의 방편에 불과하다는 점을 가르쳐준다.
불상 조각도 불교진리를 표현하는 하나의 방편이다. 부처의 심오한 진리를 표현하고 전달한다는 점에서 조각은 언어보다 헐씬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부처의 진리는 주로 손(手印)을 통해 표현되고 전달된다.
불교계에서는 부처님의 손은 깊고 오묘한 부처님의 진리만큼 그 표현과 종류가 광대무변하다고 말한다. 봉은사 전시장에 가면 부처님의 다양한 수인(手印)이 그림으로 예시되어 있다.
석가모니께서 태어나지마자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 선언했다. 이것은 새로운 생명의 탄생에 맞춰 이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의 소중함과 존엄성을 확신한 것으로서, 불교철학의 기본과 본질에 대한 정의이다. 생명에 대한 존엄성은 결국 모든 생명에는 불성(佛性)이 있다는 논리로 발전하였고 그것은 또한 부처님의 본질이 광대무변한 대자대비임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이렇게 심오한 탄생불의 뜻은 ‘한 손으로 땅을, 다른 한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는’ 도상으로 표현되었다. 이른바 천지인(天地印)이다.
석가모니께서 출가하여 6년의 고행 끝에 깨달음에 다다르자 번뇌의 욕망의 악마들이 온갖 유혹과 협박으로 발악한다. 이때 석가모니께서는 결가부좌한 상태에서 왼손 바닥을 위로 향하여 배꼽부근에다 댄 상태로 오른 손을 무릎 밑으로 내려 땅을 가리킨다. 이런 굳센 의지에 지신(地神)이 나타나 증명을 보인다. 석가모니의 이런 위대한 투쟁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결적적 순간이 바로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이다.
석가모니의 설법은 전법륜인(轉法輪印)으로 표현된다. 두 손을 가슴 올린 채 왼손바닥은 안으로 오른손 바닥은 밖으로 향하게 하고 각각 엄지와 검지를 맞붙여 법륜 모양을 취하고 있다.
관조스님은 한국의 대표적인 불교 사진작가이다. 스님은 젊은 나이에 해인사 승가대학 제 7대 강주를 역임하고 부산 범어사 총무국장을 역임했을 정도로 학식을 갖췄지만 이후 참선에 정진했다. 이와 함께 화엄정신이 깃든 사진영상을 통해 일반 사진작가들이 넘볼 수 없는 경지에 올랐다. 스님은 부처님의 손, 즉 수인(手印)을 통해 화엄의 세계를 보고자 했다. 스님의 작품에서는 작고 하찮은 미물이나 남들이 관심을 두지않는 것을 순간에 담아 이를 우주적인 관심으로 확장시킨 것이 특징이다. 작은 것을 통해 전체를 보고자 했던 화엄정신이라는 불교 철학적 사색이 깃들어 있다.
바람 소리, 눈덮힌 고요, 나뭇잎에 내리는 빗물에서 스님이 보신 것은 무엇일까? 스님은 일찍이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고 한 '금강경'의 말과 같이 깨달음의 순간을 낚아채 사진에 담았다"고 말했다. 그래서 표현된 영상에는 심오한 불교 철학적 사색이 담겨 있으며, 강가의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듯한 선미(禪味)를 머금고 있다. 어떤 조그마한 삿된 기운도 끼어들 수 없을 만큼 맑고 투명하다.
관조스님은 필터나 조명을 사용하지 않는 사진작가로도 유명하다. 스님은 1980년 '승가1'을 시작으로 '열반', '자연', '생, 멸, 그리고 윤회', '님의 풍경' 등의 사진집을 출간했으며, 그 중 '한국의 꽃살문'은 2005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한국의 아름다운 책 100권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특히 한국의 대표적인 시인 19명의 육필시가 사진과 함께 전시된 점이 특징이다. 관조스님의 불상 수인작품에 시인들이 호흡을 불어넣은 것이다.
이근배 시인은 경주 남산 탑곡 석조여래입상에 대해 ‘백리길 걸어 큰 절 불공 올리시던 할머니의 손’이라 표현했다. 우리들 할머니, 어머니의 정성에서 부처님의 손을 본 것일까?
부처님 두 손을 가슴에 모은 강원도 강릉 신복사지 석조보살좌상의 모습은 간절하다. 눈을 지긋이 감고 기도하는 모습. 오세영 시인은 ‘웃는 듯, 우는 듯 생사를 초월하신 그 한생의 평정이여’라고 읊었다.
서산 용현리 마애삼존불 본존상 수인에 대해 오탁번 시인은 ‘恒河沙만 한 적막이 깃든 부처님의 금빛손가락’이라고 풀이했다. 恒河沙는 인도 갠지스강의 모래라는 뜻으로 무한히 많은 것을 의미한다. 일명 ‘백제의 미소’로 일컬어지는 이 불상의 오른 손은 올려 두려움을 없애준다는 시무외인(施無畏印)을 취하고 있으며, 왼손은 모든 소원을 들어준다고 하는 여원인(與願印)을 하고 있다. 합쳐서 ‘시무외여원인’이라 부르는 이 수인은 가장 일반적인 부처님의 손 모습이다.
유안진 시인은 경주 남산 탑곡 마애불상의 수인에 대해 ‘자비는 낭비 거룩한 낭비의 손 손들이여’라고 썼다. 역설 속에서 깊은 진리를 느끼게 하는 글이다.
김명인 시인은 서산 용현리 석조여래입상을 보고 ‘모든 아기들을 우주의 품에 들이는 저 수많은 손’이라는 글을 읊었다.
경남 양산 미타암 석조아미타여래입상은 오른 손을 가슴에 대고 있다. 도종환 시인은 ‘너 어디 있어도 그 곁에 나 있다 하시는 묵언의 말씀 그 위로’라는 글을 남겼다.
엄지와 중지, 그리고 약지를 맞댄 손. 살며시 연꽃을 잡은 듯 하다. 경주 남산 약수골 마애여래입상의 손이다. 안도현 시인은 ‘내 손 안에 연꽃 피면 그 향기로 너에게 건너가리’라는 시를 붙였다.
김용택 시인은 ‘내 손이 가만이 있으니 세상이 다 고요하구나’라고 읊었다. 경주 불굴사지 석조사면불 약사여래좌상에 남긴 글이다.
그러나 이들 사진과 시는 스님의 화두이자 시인의 언어일 뿐. 보는 이들이 자신 만의 언어로 부처님의 딱딱한 손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이다.
전시회를 주관하는 관조스님 문도회는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에 걸친 우리나라 불교 수인의 아름다움을 소개하고자 했다”면서, 관조스님이 추구했던 ‘사소하고 작은 것을 통해 전체를 보고자 한 화엄세계의 정신을 관람객들에게 전하고자 한다"고 말했다(글,사진/임윤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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