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겨울은 유난히(?)도 서울에 눈이 많이 온 것 같다. 눈이 오면 도로가 미끄럽고 녹으면 질퍽거려 귀찮고 불편하지만, 사진을 하는 필자 입장에서는 설경 촬영 때문에 오히려 기다려지고 기대할 때가 많다. 먹다 남은 빵 부스러기처럼 약간의 낭만도.....
지난 3월 눈이 와서 경복궁에 갔다. 만족할만큼 흡족하게 많이, 촬영하기 좋게 햇빛이 쨍하고 하늘이 파랗게 되지는 않았지만, 아쉬운 대로 촬영을 하고 있었다. 향원정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데 70대중반쯤 돼 보이는 노부부가 향원정 앞에서 이쪽저쪽 촬영 위치를 찾고 계셨다. 표정이나 살피는 양이 경치 구경하는 행태는 아닌데 빈손이라서, 혹시 사진을 찍어 달라고 하는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뒤에 서 있는, 양복 정장을 하고 카메라 배낭을 멘 젊은 신사한테 카메라를 달라고 했다. 젊은 신사가 배낭에서 카메라를 꺼내어 노인에게 전해주자 그 노인은 향원정을 촬영하면서 옆에 있는 노부인과 얘기를 나누셨다. 국내 재벌 회장님이나 사장님 중에서는 사진을 하는 분이 많은 것으로 아는데, 아마 그 분들 중의 한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을 하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카메라 가방을 직접 메고 다니면서 사진을 찍는다. 사무실 비서나 부하 직원을 본인의 사적인 사진 찍는 일에 대동하지도 않는다. 손수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는게 자연스럽게 규칙(?)으로 굳어져 있는데 옛날 양반들 같이 어떻게 남에게 카메라 가방을 메고 따라다니게 한단 말인가?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고들 한다. 이 세상 모든 삼라만상을 인간의 잣대(scale)로 재단한다. 생태계에 아무리 유익한 생물이라도 인간에게 불편을 끼치면 해충이다 잡초다, 유해조수로 규정해 박멸하고 소탕한다. 한때 가축을 잡아먹는 늑대를 퇴출하다보니 초식 동물이 창궐하여 초지를 황폐하게 하고 인간의 농경지를 훼손하여 다시 늑대를 복원하는 경우도 그런 경우이고다. 필자 역시 같은 부류이긴 하지만, 매사를 나의 방에서 나의 눈으로, 나의 잣대로만 재단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남을 다치게 하면 안된다거나, 공중 도덕을 지켜야 하는 것 등 모든 사람들의 공통적인 이익과 가치에 결부되는 사항은 동일한 잣대가 필요하겠지만, 개개인의 사상과 처지가 각기 다른데, 이런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나의 눈으로, 나의 잣대를 일률적으로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기업 최고 경영자의 하루 일과를 들여다 본 적이 있다. 새벽 6-7시경 출근하여 밤 11시까지 자기만의 시간은 30분도 채 되지 않았다. 식사도 거래처 사람들과 같이 하고 심지어 출퇴근 자동차 안에서도 전화로 업무 협의나 보고서를 읽는다. 그러니 동선에는 항상 기사가 운전하는 차가 있고 비서나 집사가 수행을 한다.
손수 사진 장비를 들고 다니면서 촬영을 하는 재벌 회장님도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사정이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설령 사지 멀쩡하고 젊은 사람이라도 사정이 있어서 비서와 같이 촬영왔겠거니 하고 생각하자, 우리 자신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 비판적으로만 보지 말고 있는 그대로 봐 주는 아량도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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