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상조개인전 - 당산나무
광주전
광주 신세계 백화점 갤러리
20120515-20120524
광주광역시 서구 광천동 49-1
TEL 062-360-1630
서울전
조선일보미술
5월30일 - 6월 8일까지
서울특별시 중구 태평로1가 62-4
TEL 02-724-6328
사라져 가는 남도의 원(原)풍경
근 30년간 당산나무 작업에 매달려온 오상조가 회갑을 맞이하여 그간의 작업을 정리하여 책으로
엮어냈다.
그가 반평생을 한눈팔지 않고 줄기차게 당산나무에 집착해 온 까닭은 무엇일까.
세간의 평판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우직함 때문일까, 아니면 당산나무에 대한 그만의 남다른
애착이 있는 것일까. 그가 지금까지 지속적으로해왔던 작업들을 보면 당산나무에 대한 애착이
그에게 그리 특별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80년대의 청학동 작업에서부터 운주사, 장승에 이르기까지 그의 일관된 관심사는 사라져가는
전통문화에 있었다.
당산나무 역시 그 작업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물론 그의 작업은 주로 ‘백제문화권’ 내에
집중되어 있다.
이는 그의 생활 반경에서 비롯된 접근성의 용이함 때문이겠지만 오히려 그 점이 작업의 집중력을
높여 줄 수 있었다.
또한 ‘백제문화권’의 현장을 샅샅이 기록해 나간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이번에 ‘정리’하는
당산나무 작업은 그런 맥락에서 가치 있다.
사라져 가는 전통문화를 기록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전통이 현재의 삶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면 전통이란 그냥 무시해버려도 되는 것이 아닐까. 전통에 대한 집착은 단지 당위에 대한 막연한
이끌림이 아닐까.
오상조의 우직한 기록 작업은 아마도 이러한 질문들이 망각하고 있는 중요한 가치들을 옹호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물질적인 풍요와 편리함이 삶을 윤택하게 해주는 것은 맞다. 현대화된 오늘의 삶이 그렇듯이 말이다.
하지만 그것이
삶의 전부는 아니다. 풍요로운 삶이 개인의 내면적 가치와 부합하지 않을 때 얼마나 심각한 파탄이
생겨나는가를 생각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불편을 무릅쓰고 제사를 지내거나 혼잡한 교통체증을 감수하고 명절에 고향을 찾거나 하는 행위들에는
가치에 대한 동경이 깔려 있다.
전통적인 가치란 곧 삶의 연속성을 지탱해주는 끈인 것이다. 물론 급속한 서구식 근대화 과정에서 우리의
삶은 전통적가치와 급격한 단절을 겪어 왔다.
그것이 야기한 부정성은 새삼스럽게 언급할 필요도 없을 만큼 도처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전통과 현재의 연속성을 회복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시급한 화두로 떠오른 지 오래다.
내면적인 가치는 전통에 뿌리내리고 있는데 물리적인 삶이 다른 가치를 요구한다면 개인의 삶은 삐걱거릴
수밖에 없다.
가치란 의지를 갖고 찾아나서는 것이 아니라 삶이 저절로 요구하는 데서 생겨난다.
결국 전통과의 연속성을 회복하는 것은 가치를 회복하는 것이기도 하다.
당산나무 작업은 그런 점에서 전통의 가치를 복원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다.
당산나무에 대한 오상조의 관심은 이러한 삶의 연속성에 대한 이끌림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다.
당산나무를 중심으로 형성된 마을 공동체에서 살아온 유년기의 기억이 자연스럽게 그를 이끌었다고
할 수 있겠다.
실상 당산나무는 농경문화가 삶의 근간이었던 우리의 전통적인 삶에서 대들보 역할을 해왔다.
당산나무에 대한 사진 작업뿐만 아니라 ‘연구’도 함께 진행해온 작가는 그 역할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예로부터 마을터가 형성되면 마을의 입구, 중앙, 위쪽, 들판 등에 당산나무를 심어서 내기(內氣)의
정착과 정화, 생활의 절제, 풍우의 조절 등을 기원해 왔다.
당산나무 주변은 마을의 번영과 재앙을 막아 주기를 기원하는 터였고, 당산제를 통해 주민들의
대동단결을 도모하는 공간이었으며, 휴식과 정보전달의 마당이기도 했다.
또한 당산나무와 함께 놓인 장승, 솟대, 돌무더기, 선돌(입석), 들돌 등은 땅의 기가 허하거나 너무
넘칠 때에 비보책(裨補策)으로도 쓰였다.”
요컨대 당산나무는 마을 공동체와 하나로 연결되어 있으며, 물질의 삶과 정신의 삶 모두에 긴밀히
관여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해 온 것이다.
당산나무는 마을의 상징인 셈이다.
따라서 나무가 성하면 마을도 성하고, 나무가 쇠하면 마을도 쇠한다.
그래서 나무가 마을을 지켜주듯 마을도 나무를 지켜야 한다.
그런데 근대화 과정에서 농경문화에 기초한 마을 공동체들은 급격히 축소되고 위기에 처한다.
농촌공동체의 쇠락을 염려하는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한 지는 이미 오래 되었고, 마을이
축소되거나 아예 사라져버리는 경우도 심심찮게 있다.
당산나무의 쇠락도 이와 맞물려 있다. 어딜 가나 있는 것이 나무이기 때문에 마을의 쇠락과 당산나무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할지 모르지만 그 나무는 ‘자연’ 속의 나무이기 이전에 ‘인간’의 나무, 그리고 ‘마을’의
나무다. 그래서 당산나무의모습은 마을의 모습에 대한 상징이다.
어떤 나무는 도로 옆으로 위태롭게 밀려나와 마을 밖으로 내쫓길 운명에 처하기도 하고, 공동체의 삶과
유리된 채 보호수로 지정받아 철장 속에 갇혀버리기도 한다.
때로 당산나무는 오직 ‘생산’만을 추구하는 농촌공동체의 새로운 논리에 희생되어 거대한 밭 한가운데
고립되어 있다.
더 이상 삶과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나무가 아니라 마을에서 버림받아 쓸모없는 고목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 나무를 지탱하고 있는 대지는 광활한 밭 한가운데 섬처럼 떠있다.
오상조가 찍은 당산나무에는 이처럼 ‘위기’에 처한 모습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위기가 별로
대수롭지 않은 것임을 말해주는 모습도 있다.
왜냐하면 수십, 수백 년을 마을과 함께 해 온 나무가 갑작스런 변화로 삽시간에 사라져버리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당산나무의 강인한 생명력이다.
더구나 그 나무는 마을 공동체의 구성원 누구도 겪어보지 못했을 과거의 수많은 변화를 묵묵히 지켜보아
왔던 산증인이다.
어쩌면 근대화라는 변화보다 훨씬 거친 변화 속에서도 자신을, 그리고 마을공동체를 지켜왔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살아남았다.
오상조의 사진에도 당산나무의 그런 굳건한 생명력이 보인다. 마을은 변했지만 나무는 그대로다.
초라한 마을 주변의 모습에 비하면 나무의 웅장한 자태는 여전하고, 장구한 세월 동안 형성된 고목의
둥치나 땅밖으로 모습을 드러낸 뿌리의 형태도 그렇다.
마을공동체가 처한 오늘의 위기는 자신이 겪어온 수많은 변화들 중 단지 하나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것 같다.
공동체의 구성원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마을 공동체가 위축되어 가는 것은 맞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당산나무에 금줄을 쳐놓고 나무의 신성을 존중한다.
또한 그들의 정서는 당산나무를 모셔왔던 가치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나무의 주변 환경만 달라졌지 모든 것은 그대로인 것이다
결국 당산나무가 상징하는 전통적 가치는 물리적인 외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흔들림이 없다 하겠다.
당산나무의 꿋꿋한 자태를 최소한의 수사만을 이용하여 담백하게 담아냄으로써 오상조는 전통적 가치를
둘러싼 오늘의 상황을 묵묵히 증언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가치의 단절을 첨예하게 드러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가치의 생명력을 주장하는 것이다.
당산나무라는 전통적 가치는 위기에 처해 있으면서도 그 속에서 버티며 존속하고 있다. 당산나무를
둘러싼 마을공동체의 모습이 애잔한 정취를 자아내는 이유가 그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런 이중적 정서는 오늘의 농촌 풍경을 볼 때 느끼게 되는 전형적인 형태인 것 같다.
그렇다. 오상조의 작업은 결국 ‘당산나무’를 담고 있지만 그와 동시에 오늘의 농촌 풍경에 대한 상징의
제시이기도 하다.
풍경이란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상정한다. 농촌의 모습이 풍경의 경험이라면 도시의 모습은 지도의 경험이다.
도시는 설계를 바탕으로 형성되는 반면 농촌은 삶의 요구에 따라 자연스럽게 형성된다는 점에서 그렇다.
지도는 정교하고 세밀한 정보를 주지만 대상에 대한 진정한 체험을 가져다주지 못한다.
도시에서 받는 경험이 대개 삭막하다고 말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반면 농촌에서는 대지와 들판, 산과
마을, 길과 나무 등으로부터 온전한 체험이 이루어진다.
원체험의 재료가 될 기본 요소를 갖추지 못한 도시에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풍경도 없다.
오상조의 농촌풍경은 본래 거기에 있어야 할 것들이 사라져감으로써 원풍경으로서의 가치를 잃어가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우리에게 농촌의 원풍경은 당산나무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마을공동체였다. 물론 당산나무는 아직 남아있다.
하지만 삶과 유기적인 관계를 맺지 못한 채 기념수로 지정되어 보호받거나 공동체의 삶 변두리로 밀려나
외면당하는 나무로 있다. 그것은 단지 고목에 불과할 뿐이다.
사진에 담겨있는 당산나무의 형태들은 조형적으로는 아름답지만 갈수록 주변 경관과 불협화음을 만들어낸다
마을공동체의 변화가 진행될수록 부조화는 첨예해진다. 그렇게 우리는 풍경을 잃어가고 있다.
아마도 당산나무가 마을공동체의 중심이었던 시절을 거쳐 온 사람들은 농촌의 원풍경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똑똑히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기억을 토대로 인간과 자연, 공동체와 개인의 관계에 대한 풍요로운 정서가 형성되었음에 틀림없다.
그런 점에서 풍경은 인간의 정서를 배양한다. 이제 풍경이 사라지면서 정서도 희미해지고 풍경은 관념이 된다.
누가 그 나무에 서린 신성과 혼을 알아볼 것인가.
망각이 쌓여 관습이 되면 전통도 함께 사라진다.
아쉽게도 당산나무를 둘러싼 마을공동체가 훼손되면서 이런 징후는 도처에서 발견된다. 오상조가 부지런한
발걸음으로 찾아 헤맨 곳들이 이를 입증한다.
30년간 당산나무를 찍어오는 과정에서 나무와 마을공동체의 변화도 많았을 것이고, 그 변화의 방향은
우리가 예상하는 그대로여서 씁쓸하기만 하다.
어쩌면 그의 사진은 당산나무와 함께 호흡해 왔던 마을공동체의 쇠락을 예견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박평종 (미학, 사진비평)
< 약력 >
오 상조 (Oh Sang JO)
전북 장수 출생(1952, 02, 26)
중앙 대학교 예술대학 사진학과 졸업- 미술학사
전북 대학교 경영대학원 경영학과 졸업’ 경영학 석사
중앙 대학교 대학원 사진학과 졸업- 미술학 석사
한국 사진학회장 역임(2004-2008)
광주 대학교 문화예술대학 학장 역임(2009-2011)
현/광주 대학교 문화예술대학 사진영상학과 교수 재직 중(1984- )
(개인전)
당산나무/서울 조선일보 미술관/광주 신세계 백화점 갤러리(2012)
한국의 미/미국 캘리포니아 주립 세크라멘토대학교 미술관(2006)
우리 땅/서울 성곡 미술관(2002)
광주 옵스 갤러리 오픈 초대전(2001)
동구 밖 당산나무/ 광주 신세계 백화점 갤러리(2000)
운주사, 청학동사람들/ 광주 송원 백화점, 송원 갤러리(1998)
한국의 석상전/일본 후쿠오카 현립 미술관(1994)
청학동/서울 파인힐 갤러리(1990)
사진 개인전/광주 화니 백화점, 화니 미술관(1987)
향토 유물 유적 사진전(전북지역 신교, 구교)/ 전주 대학교 박물관(1984)
향토 유물 유적 사진전(전북지역, 국보, 보물)/ 전주 대학교 박물관(1983)
오상조 사진연구소 개관 기념전, 전주(1981)
기타 단체전 다수 참가
(수상)
대한 사진 문화상- 학술부문(2002)
(역서)
신즉물주의 사진(해뜸사, 1989)
(사진집)
1. 당산나무, 눈빛, 2012
2. The DangSan Tree, Stallion Press(S) Pte Ltd, 2008
3. 동구 밖 당산나무II(증보판), 눈빛, 2005
4. 동구 밖 당산나무I, 눈빛, 2000
5. 운주사, 눈빛, 1998
6. 청학동 사람들, 눈빛,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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