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목이란 이름의 사진 예술!
사진은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
똑 같은 장소 똑 같은 대상을 놓고 촬영해도 어떤 이는 작품이 되고 어떤 이는 작품 안 된다. 이유가 뭘까?
A 까르띠에 브레송은 촬영은 인식이다. “자신의 지성과 안복과 기술이 동일궤도상에 일치되는 것이 곧 사진이다.” 라고 일갈했다. 필자도 같은 생각이다.
브레송의 사진을 들여다보면 셔터를 누르는 결정적인 찰나의 순간에 엄청나게 빠른 두뇌회전이 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배경을 보고 주제를 보고 주제와 배경이 합치되는 순간(시점, 정점)을 본다. 그가 미술을 했던 사진가이기때문인지 그는 우선 배경을 매우 중시 한것을 볼 수 있다. 배경이 사진적인 고루 요소를 갖추었을 때 비로소 그 배경을 향하여 카메라를 겨누고 그 배경을 배경으로 주제가 절묘하게 매치 되는 순간을 기다렸다가 셔터를 끊어 준 것을 간파 할수 가 있다. 필자가 보기에 이를 위하여 연출도 마다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고 필자의 이런 생각은 전혀 터무니없는 생각을 아닐 것이다.
필자도 주로 배경을 먼저 보는 편이다.
필자는 아예 배경과 주제를 따로 분리해서 사물을 보고 관찰한다. 부레송이 이르기를 “자신과 대상에 대해서 최대한 존경을 기울여야 된다.” 라고 일갈하였는데 천번만번 지당하신 말씀이다. 대상을 무심히 흘려 보지 않고 유심히 보는 것이야 말로 사진이란 예술의 정점이마에 틀림없을 것이다. 필자는 아예 유심히 보는 것을 지나서 분석하고 꿰뚫어 보아 사물의 속성까지 파악하려고 든다. 심지어는 사물의 이면까지.... 필자가 한창 누드모델을 거리헌팅 할 때 “사람들이 옷을 입고 다녀도 나는 그 속의 나체를 본다.” 라고 떠들고 다녔는데 사실 개소리다. 하지만 그만큼 유심히 뚫어지라고 본 것은 사실이다.
일전에 임진각을 다녀왔다. 어느 분이 “임진각에 갔더니 찍을 게 없데요.” 라고 했는데 솔직히 답답함을 느꼈다. 딱히 임진각을 가야만 사진이 나오고 추암을 가야만 나오고 덕유산을 올라가야만 사진이 나온다는 생각을 필자는 가지고 있지 않다. 필자나 브레송 같은 방식의 사고를 가졌다면 어디서든 사진이 나온다. 구태여 사진을 찍기 위하여 사방팔방 헤메야 될 이유가 없다. 널려 있는 것이 사진의 소재이기 때문이다.
필자가 관심이 있었던 것은 사람이 아니고 바람개비들이었다. 하지만 이 작품의 제목은 “연인” 이다.
박청희 작
기차를 전경에 삽입하고 아버지와 아이를 배경으로 삽입 역사성을 부각
역광선과 노출을 정확하게 인식하여 하이라이트를 부각
부끄럽다며 얼굴을 가리는 여인에게 그렇게 가리면 그 가린 종이 위에 당신의 얼굴을 넣을 것이라고 경고를 하면서 촬영했고 촬영 당시부터 이 사진을 이미 구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