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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나그네 (권곡眷榖) 박정현 눈이 먼저 길을 잃고 나는 그 뒤를 따른다. 발자국은 매번 사라지지만 사라지는 법을 배우며 앞으로 간다. 바람은 이름을 묻지 않는다. 묻지 않기에 나는 나를 내려놓을 수 있었다. 주머니 속 남은 온기는 어제의 체온이 아니라 오늘을 버티는 이유였다. 얼어붙은 들판에서 침묵은 가장 오래된 언어가 되어 무릎까지 차오른 밤을 건넌다. 말을 아끼는 동안 상처는 스스로 자리를 찾는다. 길 위의 별 하나, 누군가의 집일 수도 다시 떠날 이유일 수도 있는 불빛. 나는 머물지 않고 고개만 숙여 그 밝음에 인사한다. 겨울은 끝을 말하지 않는다. 다만, 끝까지 걷는 자만이 자신이 아직 살아 있음을 안다고 속삭일 뿐. 그래서 나는 오늘도 눈 속에 몸을 맡긴 채 사라지는 길 위에서 사람이라는 이름을 조용히 지켜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