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만 사는 섬? 여자도에 가다
그 섬에 가면 남자들의 가슴이 설렌다
머나먼 남녘 끝 어딘가에 가면 ‘여자도’라는 섬이 있다. 그 섬에는 여자들 만 산다? 섬을 오고가는 여객선 이름도 여자호, 그 섬 안의 보건소 이름 역시 여자보건소다. 섬의 모양도 예쁘다. 허리가 가늘고 아름답다. 걸리버여행기에나 나올 법한 섬. 남자들은 이 섬에 갈려면 마음부터 설렌다. 마치 처음 맞선보러 가는 총각 마음이라고나 할까? 그 섬에 들어가면 남자화장실을 찾기도 조심스럽다. 그 섬엔 정말 여자들만 살고 있을까?
2026년 들어 첫 여행지로 전남 여수시 화정면에 위치한 ‘여자도’라는 섬을 택했다. 단지 그 이름 때문에 오래 전부터 특히 가보고싶었던 섬이다. 금오도, 안도, 백야도, 사도, 추도, 하화도, 거문도, 손죽도, 평도, 소거문도, 묘도, 돌산도, 오동도 등 여수 주변의 다양한 섬들을 돌아다녀봤지만 어쩌다 보니 여자도는 이제야 가게 됐다. 섬여행 전문가로 <한국의 섬>이라는 책을 15권이나 펴낸 이재언 광운대 섬정보연구소 소장의 초청이 있어서다.
이재언 소장의 원래 고향은 완도군 노화도이지만 한때 여수에서 20년 내외 산 적이 있다. 그는 반평생 섬에 미쳐 전국섬을 이잡듯이 돌아다녔으며, 몇 년전엔 전혀 갈 수가 없는 128개 북한 섬에 관한 단행본을 두권이나 펴낸 진짜 섬매니아다. 필자 역시 섬을 좋아해서 그와 함께 여러 섬을 함께 돌아다녔다. 북한 섬 책을 쓰기 위해서는 볼음도, 주문도, 서검도, 심지어는 여객선 없이 행정선 만 다니는, 미리 관계관청의 허가를 받아야만 들어갈 수 있는 민통선 내 최북단 섬 말도까지 인천 앞바다에 위치한 섬들을 함께 찾아다니기도 했다. 북한 섬에서 살다가 내려온 실향민들을 어렵게 찾아다니면서 그들의 생생한 북한 섬 실태를 취재하기도 했었다. 그는 최근 다시 제2의 고향같은 여수(麗水)로 내려가 둥지를 틀었다. 여수는 섬이 많을 뿐 아니라 이름 그대로 정말 아름다운 해양도시다.
1박2일 일정으로 여수로 내려갔다. 인천에서 개인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역시 섬여행가인 김쌍규 사장과 함께 아침 일찍 남녘으로 차를 몰았다. 여수에서 이재언 소장과 합류, 점심식사 후 ‘섬달천도’ 에 도착, 여자도로 향하는 ‘여자호’에 몸을 실었다. 섬달천도는 1980년대 초반까지는 독립된 섬이었으나 지금은 다리가 놓여 육지와 이어진 섬이다. 섬달천 포구에는 작은 목선부터 제법 모양을 갖춘 큰 배들이 정박을 하고 있다. ‘섬문화답사기’를 쓴 김준 박사에 의하면, 가구는 30여 호에 불과하지만 배는 70여 척에 이른다고 한다. 배를 세척이나 가지고 있는 주민도 있다고 한다. 썰물 때는 섬달천과 육달천 사이에 갯벌이 속살을 드러낸다. 가장 먼저 바지락밭과 모래갯벌이 모습을 보인다. 다리가 놓이기 전에는 물이 빠지면 이 길을 건너다녔다. 겨울철이면 이곳 갯벌에서 널배를 타고 꼬막을 잡는다. 전국에서 알아주는 꼬막이다. 꼬막하면 벌교가 유명하지만 이린 종패들이 자라는 곳은 섬달천에서 와온에 이르는 갯벌이라고 한다.
섬달천에서 여자도 가는 배는 동절기의 경우 8:40, 11:50, 14:40, 17:30 등 하루 4회 운항한다. 소요시간은 25분 정도. 여자호 김정록 선장에게 여자도 탐방코스를 물어보니 제일 끝마을인 대동마을에서 내려 마파마을까지 온 후 대여자도와 소여자도를 이어주는 인도교를 건너 소여자도로 돌아오는게 좋을 거라고 한다. 소여자도는 소나무가 많아 일반적으로 송여자도라고 부른다.
필자 일행은 섬여행전문가인 이재언 소장의 안내에 따라 일단 중간마을인 대여자도의 마파마을에서 내렸다. 선착장에 내리자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건 한자어로 쓰여진 여자도 표지석. 어? 女子島가 아니네. 그럼 여자들만 사는 섬이 아닌가 보네.
여자도는 섬 배열이 공중에서 보면 너 여자 형이라 汝(여)자와 육지와 거리가 멀다 하여 모든 생활수단을 스스로 해결한다는 뜻으로 스스로 自를 써서 汝自島라 하였다고 한다. 조금은 실망스럽다. 한자 없이 그냥 여자도라고만 하면 뭔가 더 신비스러운 느낌이 있지않았을까?
암튼, 여자도는 2개의 유인도와 5개의 무인도가 있는데 유인도 중 큰 섬은 대여자도, 작은 섬은 소여자도(송여자도)라 하였다. 대여자도와 소여자도 사이에는 2012년 5월 길이 560m의 연도교가 준공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여자도 총 가구수는 130여 가구, 인구는 360여 명, 경지면적은 43ha, 어선은 60여 척 정도라 한다. 작지않은 섬이다. 주어종은 새꼬막, 낙지, 전어, 꽃게, 쭈꾸미, 새우, 숭어, 소라 기타어종이 철따라 잡을 수 있다고 한다.
마파마을 해안방파제에는 I Love Yeojado라는 글이 쓰여 있다. 흔히 사용하는 영어표현인데도 여자도라는 섬이름 때문에 의미가 더 다정하게 다가온다. 남자는 여자를 사랑하는게 본능이고 애정표현이니까. 마파마을에는 여자보건진료소가 있다. 또, 여자중앙교회도 있다. 건물명에 여자라는 서두어가 붙으니 마치 남자출입금지건물 같은 느낌이 온다. 성별 표현이 참 묘하다.
마파마을 안길을 돌아 대동마을 쪽으로 걷는다. 길이 아기자기하여 트레킹 맛이 좋다. 약간 비탈구간도 있고 내리막길도 만난다. 안내도엔 이곳 구간을 ‘개미허리길’이라고 표시해놨는데 실감이 간다. 벚꽃나무숲터널길도 지나간다. 벚꽃이 만발하는 봄철에 오면 더욱 아름다울 것 같다.
마파마을에서 대동마을까지는 거리가 제법 길다. 마파선착장에서 마파마을을 돌아본 후 개미허리길을 넘어 대동마을 마을회관까지 약 40여 분 걸렸다. 중간에 대동교회에 들러 야외예배공간 조성작업을 구경한 시간까지 감안한 시간이다. 대동마을은 꽤 큰 마을이다. 2025년 3월에 폐교되긴 했지만 여자분교도 있고 마을 안길에 벽화도 잘 그려져 있다. 선착장 및 포구도 제법 넓다.
대동마을 곳곳을 둘러본 후 돌아온 길로 그대로 가지않고 중간 좌측의 둘레길로 방향을 잡았다. 데크길과 해안모래사장을 돌아가 송여자도로 건너가는 인도교까지 이어진 들레길이다. 필자 일행이 일주한 이 코스가 대여자도를 돌아보는 최선의 트레킹코스일 것 같다. 걷는 도중 좌측으로 무인도인 납계도와 동굴섬도 시야에 들어온다. 예쁜 꼬마섬들이다.
드디어 인도교 입구로 돌아왔다. 황금색 칼러로 구불구불 이어놓은 다리에는 중간중간 낚시를 할 수 있는 쉼터도 만들어놨다. 여행객들은 이곳에서 쉬기도 하고 주변바다풍경을 감상하기에도 좋다. 길이 560m, 폭 3m의 제법 긴 다리다. 곳곳에 시(詩)판도 여러개 걸어놨다. 인도교는 이제 여자도의 명물이 됐다. 우선 아름답다.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는
완벽한 혼자
문득, 너에게 가야한다는 생각에
온몸이 열리고
밀물이 들기 시작했어요
아,
손가락 하나 들어올리는 무게마저도
온 세상을 떠받치듯 힘 겨울 때
목멘 시간의 아득함과 어둠 사이 먼 수평선으로부터
통증 같은 그리움의 노을이 달려왔죠
여자만 여자도
김수자 시인의 ‘여자도’ 라는 시다. ‘통증같은 그리움의 노을’, 여자도는 노을이 아름다운 섬으로도 유명하다. 그 섬에서 가슴깊이 쌓여있는, 한번도 토해내지못한 통증을 심하게 아주 심하게 느껴보고싶다.(글,사진/임윤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