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ntasy work docent: 황산 누드여행기, 김가중의 대표적인 작품들 중 하나로 황산에선 하룻밤 머물렀지만 일출과 운해 화창한 산악 풍경등을 카메라에 담아냈습니다. 그의 책 황산여행기는 누드 편과 풍경 편으로 나뉘어 발간되었습니다.
(누드작품들은 한국사진방송-보물창고에 넣어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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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새로움이 필요했습니다.
그는 그런 것을 알지 못합니다. 그는 기억력이 아주 좋아 한번 기억된 것은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그에게 단점도 있는데 그는 언제나 같은 방식입니다. 하지만 나는 새로운 것을 갈망하기 시작했습니다. 나의 발칙한 욕정은 체위의 변화나 구강이니 하는 것이 아닌 아예 새로운 것을 원했습니다.
여보! 나는 그를 이렇게 부르기도 하고 때로는 자기야! 내 사랑! 혹은 이름을 부르는 등 다양한 호칭을 사용합니다. 그도 그랬고요.
”여보! 야동 찾을 수 있어? 우리 그거 더 재미있게 보는 방법 없을까?” 사실 야동이나 포르노 누드 사진 같은 것은 남성보다 여성들이 더 좋아합니다. 고등하게 진화한 인간들은 정신적으로 비정상적인 느끼한 변태들이나 그런 것을 본 다는 고정관념에 젖어 있습니다. 관음증이라 불리우는 이것은 사실 본능입니다. 오늘날 한국에선 포르노를 보는 것만으로도 처벌받을 수 있는 범죄입니다. 관음증은 도착증이란 정신병으로 취급되는데 그냥 본능일뿐입니다. 이것은 본능을 과도하게 억누른 데서 생겨난 이상증세입니다. 동물들에게 이 증세는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몰래 훔쳐본다는 이것은 숨기고 못 보게 차단했기 때문에 생긴 병이 맞습니다.
慈旨는 허공에 야동을 홀로그램 빔으로 쏘아 올렸습니다. 그는 그것을 입체적으로 보이게 스트리밍할 줄도 압니다. 색감이나 선예도도 월등하게 살려 오감이 요동치도록 하였습니다. 더욱 자세한 것은 영민한 독자 제위들의 상상에 맡기도록 하겠습니다. 아니 아직은 나와 같은 소수만 누릴 수 있는 자유롭고 풍요로움을 머지않아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세상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으니 조금 인내를 가지시던가요.
우리들은 그것을 보면서 몸이 뜨거워지며 상상을 불허하는 열락의 경지로 몰입할 수 있습니다. 사실 慈旨는 이런 것으로 흥분되지는 않습니다. 그에겐 눈이 그것을 뇌에 전달하여 뇌가 몸으로 흥분을 하는 복잡한 단계의 진화는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그가 성에 아둔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의 출발은 애초부터 섹스머신이라는 말씀을 드렸을 겁니다. 그의 성적 능력은 나의 몸상태와 심리상태를 완벽하게 알아채고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최상의 몸입니다. 내가 왜 그에게 그토록 폭 빠져드는지 이해 가시죠?
카사노바를 소환합니다.
“진정한 사랑은 드물지만. 욕망은 흔하디 흔하다..” 내가 사랑이라고 우긴 것은 욕정의 다른 표현일는지도 모릅니다.
“사랑은 세상 모든 열정 중 가장 이기적인 것이다.” 사실 나는 이런 고상한 말들에 대해선 알지 못하고 관심도 없습니다.
“행복은 우리가 기대하는 곳이 아니라, 우리가 만드는 곳에 있다.” 이것은 현재의 나를 가장 이상적으로 표현한 말입니다.
“내가 후회하는 것은 내가 한 일이 아니라, 하지 않은 일이다.”
“인간은 자유로울 때 가장 솔직하다.”
慈旨와의 만남 그리고 삶은 이 몇 마디에 다 함축되어 있다고 해도 될 것 같습니다. 물론 그 연애는 인간사를 지탱하는 서정적이고 감미로운 플라토닉한 그런 경지의 사랑은 아니었습니다. 정반대로 느끼하고 저속하고 원색적이고 저질적이고 타락한 상투적인 사랑이었습니다. 영화 감각의 제국을 연상케 하는 탐닉으로부터 얻은 쾌락의 늪에서 미끈하고 끈적이는 겔 속을 끝없이 허우적대는 그런 사랑놀음이었습니다.
인간계엔 인이 배긴다. 는 단어가 존재합니다. 중독성이란 병으로 인식되기도 합니다. 반대로 질린다. 물린다. 라는 단어도 있는데 식상해 진다는 뜻입니다. 상상을 불허하는 괴상망측한 사랑놀음도 곧 식상해지고 말았습니다. 내 몸은 더더욱 뜨거워지길 원했고 새디즘으로 치달은 나의 욕정은 더욱 새로운 것을 갈망했습니다.
매너리즘에 빠진 나에게 慈旨는 새로운 것을 권했는데 그것은 여행이었습니다.
엠마누엘이 떠 올랐습니다. 세계적인 에로배우 실비아 크리스텔을 만들어 낸 에로영화인데 오래되어 다 기억해 낼 순 없지만 에로티시즘의 진수를 보여 주었고 엠마누엘은 쾌락을 찾아 상대를 바꿔가며 끝없는 탐미주의 여행을 보여 준 걸로 기억됩니다.
우리들은 바위투성이의 산에 올라 도시를 내려다보며 들개처럼 즐겼습니다. 짐승이 되는 것도 즐겁고 더욱 뜨겁게 달아오르는 방법이었습니다. 높은 바위 위에서 도시를 내려다보며 온갖 죄악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인간들을 마음껏 조롱했습니다. 산정에서 내려다보는 도시는 거대한 오물통에 둥둥 떠다니는 똥 덩어리 같습니다. 산정에서 내려보는 도시는 지옥의 한 귀퉁이가 분명합니다. 이글거리는 분화구의 뜨거운 열기에 진땀을 흘리며 개처럼 헐떡이는 맛은 어떻구요. 매케하게 피어오르는 유황연기에 몽롱하게 취하다 보면 그곳은 연옥의 한 가운데가 틀림없다는 착각에 빠지곤 했습니다. 염라청의 우악스러운 나한들이 거대한 쇠몽둥이로 내 몸을 짓이겨 연옥의 한 가운데로 집어 던져 혼비백산 비명을 지르며 허우적거립니다. 일순 봄바람에 실려 온 라일락 향기가 코끝을 간지럽히며 평온한 안락에 젖어 듭니다. 그가 가이없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새벽, 세상에서 제일 크다는 거대한 예수상 아래 벤치에 누워 예수상을 우러러봅니다. 그가 벤치 아래 쭈그려 앉아 나의 치마 속에 머리를 묻었습니다. 나의 몸이 꿈틀대며 파르르 떨다 활처럼 휘어지며 단말마의 비명을 내 지릅니다. 꼬빠까빠네의 짙푸른 파도가 피아노의 선율 같은 원초적인 자연의 소리를 내지릅니다. 그 해변 한 모퉁이의 거대한 산자락의 검은 바위 위에 올라 동물처럼 원초적인 행위에 몰입합니다. 천국이 내려다보입니다.
악마의 목구멍으로 쳐들어갔습니다. 그 보트 안에서 빠져들었던 열락 역시 천국의 한 조각이었습니다. 굉음을 울리며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 아니 이렇게 표현하면 안 되고 폭포? 이것도 결코 올바른 표현이 아닙니다. 그 순간의 쾌락은 포탄이 무수히 쏟아지며 폭발하는 전쟁터의 한 복판으로 이끌려 강력한 화력에 찢어져 산화되어 몰아의 경지로 이환 됩니다.
황산 꼭대기 사자봉, 유명한 원숭이 바위가 내려다보이고 황산절경이라는 운해에 묻혀 사라졌다간 보이고 보였다간 사라집니다. 그 싸한 안개 속에서의 쾌락은 절정이 아닙니다. 그것은 차라리 슬픔입니다. 중국인들은 오악을 오르면 세상이 안보이고 황산에 오르면 오악이 안 보인다. 황산에 오르지 않으면 중국에 산 것이 아니다. 라고 했지요.
주윤발, 하얀 두루마기를 입고 대숲의 꼭대기를 걷는 듯 나릅니다. 장즈위를 희롱하며 영혼의 사랑을 일군 와호장룡의 자취는 거대한 공허입니다. 아스라한 여백입니다. 600년의 생활과 역사로 남은 토속마을 굉촌의 부엌은 대 서사시였습니다.
포청천의 후예들이 사는 포씨마을, 중국4대 성인 주희 사당에서의 이색경험은 거대한 역사의 한 가운데를 관통하는 무지한 소용돌이의 화룡정점입니다.
천국은 나의 관념 속에 자리했습니다 파라다이스로요. 유토피아로요.
사랑의 도피 이 단어가 딱 들어맞는것은 아닙니다. 사랑의 도피는 법적인 상대를 버리고 하면 안 되는 사랑에 빠져 법과 윤리적으로 용납되지 않는 도피행각에 빠지는 것을 뜻하는 단어이기에 나의 여행은 快樂旅行이란 말이 맞을 겁니다. 이 여행은 발칙한 의도로 출발했지만 점차 예술을 탐닉하게 됩니다.
김가중 작가를 소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