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03. 11 (수) - 03. 30 (월)
토포하우스 제2,3전시실
문의 : 오현금 010 3115 7551
1. 전시의도
1996년부터 ‘나비’라는 상징을 통해 30여 년간 인간 존재와 감정의 구조를 탐구해 온 작가의 예술적 여정이 응축된 자리다.
꽃과 나비의 이미지를 통해 인간 감정의 본질과 존재의 가치를 사유하며 작품을 해 오고 있는 김홍년 작가의 오랜 조형 탐구를 한 단계 도약시키는 결정적 계기로 기획되었다. 나비와 꽃이라는 상징을 통해 인간 존재와 감정의 구조를 집약적으로 제시하는 작가의 철학적 깊이와 회화적 완성도를 동시에 증명하고자 한다.
김홍년의 ‘화접(花蝶)’작업에서 나비는 장식적 소재가 아니다. 화면을 가득 채운 수백, 수천 송이의 꽃들은 감정의 최소 단위로 기능하며, 그 집합은 하나의 나비 형상으로 상승한다. 감정이 축적되고 응결되어 마침내 존재의 형상을 이루는 과정이 조형 언어로 구현되는 것이다. 작가는 “하늘을 나는 나비의 가벼운 날갯짓처럼 관람객들이 일상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고 희망을 안은 채 환상의 세계로 날아오르길 바란다”고 말한다.
이번 전시는 화접(花蝶)이라는 확고한 조형 언어를 구축한 김홍년 작가의 작품세계를 시장과 미술사적 맥락 속에 다시 한 번 각인시키기 위함이다.
층고 4.6미터의 자연채광이 들어오는 전시실에 240×400cm, 220×420cm에 이르는 대형 연작을 비롯해 224×292cm 규모의 작품 2점 등 총 16점의 작품이 전시된다. 압도적 스케일 속에서도 화면은 치밀하게 조직되어 있으며, 감정의 집적과 확산, 그리고 존재로의 비약이라는 주제가 일관되게 관통한다.
새봄의 문턱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피어남과 생성의 이미지가 중첩되며 더욱 상징성을 더한다. 김홍년의 화접은 우리 내면의 형성과정을 묻고 답한다. 감정은 어떻게 구조가 되고, 구조는 어떻게 존재가 되는가. 이번 초대전은 그 질문에 대한 조형적 응답이자, 동시대 관람객과 나누는 깊은 사유의 장이 될 것이다.
2. 작품세계
감정은 표현이 아니라 구조다
김홍년의 화접(花蝶) 연작은 화려한 색채와 화면을 가득 채운 꽃들로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러나 그의 꽃들은 단순한 자연 묘사가 아니라 각각이 하나의 ‘감정의 단위’로 기능한다. 기쁨, 희망, 사랑과 같은 수많은 감정의 파편들이 모여 하나의 거대한 나비 형상을 이루는 것이다.
작가는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기보다, 감정들이 어떻게 축적되고 구조화되어 인간 존재를 형성하는지를 보여준다. 즉 인간은 하나의 감정이 아니라 복합적인 감정의 구조로 존재한다는 철학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때 나비는 단순한 상징을 넘어, 존재의 구조를 사유하게 하는 조형적 장치로 작동한다. 이 지점에서 그의 나비는 상징을 넘어 사유의 장치가 된다.
하나의 날개로는 날 수 없다
그의 화접(花蝶) 연작에서 나비의 좌우 날개는 서로 닮아 있지만 완전히 같지 않다. 색의 농도도, 꽃의 배열도, 리듬도 미묘하게 다르다. 그러나 그 차이는 결핍이 아니라 조건이다. 서로 다른 두 구조가 균형을 이룰 때에만 비행이 가능하다.
한 송이의 꽃은 연약하다. 그러나 수많은 꽃이 모여 날개의 구조를 형성할 때, 그것은 거대한 힘을 갖는다. 이는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를 명확하게 드러내는 장면이다. 개별성은 사라지지 않으면서도, 집합 속에서 더 큰 의미를 획득한다.
김홍년이 말하는 공존은 화면 속에서 실제로 작동하는 구조다. 서로 다른 색, 다른 질감, 다른 밀도의 꽃들이 충돌하지 않고 하나의 비행을 가능하게 하는 방식. 그는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를 명확하게 시각화한다. 그리고 그것이 깊은 신념으로 비상한다. 하나의 꽃, 하나의 날개로는 날 수 없다.
전통을 넘어 내면으로
화접은 전통 회화에서 번영과 기쁨, 장수를 상징하는 길상의 이미지였다. 그러나 김홍년은 이러한 상징을 외적인 기복의 차원에 머물게 하지 않고, 그 의미를 인간의 내면으로 확장한다.
그의 나비는 단순히 복을 기원하는 상징이 아니라, “당신의 감정은 살아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존재다. 전통 화접이 외적 행운을 의미했다면, 김홍년의 화접은 감정이 메마르지 않고 내면이 여전히 피어 있는 상태, 곧 ‘안쪽의 복’을 일깨운다. 작가는 진정한 삶의 복이란 살아 있는 감정과 깨어 있는 내면에 있음을 조용히 환기한다.
난지도에서 화접까지, 50년의 궤적
김홍년의 작업은 1978년 물성과 오브제를 관통하는 작품을 통해 1980대 초 실험적 미술그룹 ‘난지도’를 창립하며 물질의 존재성을 탐구하여 한국 현대미술의 전환기를 이끌었다. 1990년대에는 ‘우리에게 소중한 것’의 의미를 사유했고, 1996년 이후 나비를 상징 언어로 삼아 삶과 공존, 존재와 감정, 사회적 연대를 지속적으로 탐구해왔다. 2006년 ‘원형-이모토(Proto-Emoto)’ 얼굴 연작에서는 감정이라는 비가시적 실체가 어떻게 구조와 물성으로 전환되는지를 회화적으로 풀어내며 인간 삶의 본질에 다가섰다.
공공성과 확장, 지속 가능한 미학
작가는 회화에 머물지 않고 공공 설치와 미디어아트로 영역을 확장하며 탈장르적 실험을 이어왔다.
2016년 한강 세빛섬에 설치된 대형 작품 〈날다 날다 날다 201603-diary〉는 이러한 확장의 상징적 사례다. 24m에 달하는 황금빛 그물망 구조의 거대한 날개는 물리적 안전성과 조형적 상징성을 동시에 고려한 작업으로, 바람·공간·도시 풍경과 상호작용하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공공 공간 한가운데서 예술이 일상의 감각을 환기하는 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작업이었다.
기업과의 협업 역시 그의 확장성을 증명한다. 삼성 갤럭시 Z 플립 첫 출시행사 ‘Beauty in the Butterfly’ 프로젝트, 주얼리 브랜드 ‘티르리르’와의 협업은 나비 모티프가 순수회화를 넘어 디자인과 산업 영역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또한 정부종합청사 등 공공기관 소장은 작품의 안정성과 제도적 신뢰를 더한다.
이는 단순한 이력의 나열이 아니라, 작가의 지속성과 공공성이 시장과 제도 안에서 객관적으로 검증되어 왔음을 보여주는 지표라 할 수 있다.
3. 작품 설명
화접(花蝶), 185×420cm, Acrylic, 2018-2020
붉은 우주 한가운데, 거대한 날개가 펼쳐져 있다. 두 개의 날개는 서로를 반영하는 거울처럼 서 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완벽한 복제가 아니라, 미묘하게 다른 꽃들의 배열과 색감의 리듬으로 구성되어 있다. 닮았지만 동일하지 않다. 이 미묘한 차이가 화면에 생명을 부여한다. 관람자는 자신도 모르게 어느 한쪽 날개에 먼저 시선을 두게 된다. 그리고 곧 깨닫게 된다. 이 그림은 날개의 대칭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이 먼저 기울어지는 방향을 드러내는 거울이라는 사실을.
화접(花蝶), 240×400cm,
Acrylic, 2025-26 ▶
날개를 구성하고 있는 것은 수많은 꽃들이다. 이 꽃들은 단순한 장식적 요소가 아니다. 각각이 독립적인 생명체처럼, 저마다의 표정과 질감, 색의 온도를 가지고 화면 안에 자리한다.
장미와 아이리스는 두텁게 쌓인 물감의 마티에르 속에서 실제 꽃잎의 육질을 연상시킨다. 빛을 받으면 표면이 미묘하게 반사되어, 꽃잎의 결이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 국화와 데이지 계열의 꽃들은 보다 평면적인 리듬으로 화면에 호흡을 제공하고, 작은 들꽃들은 붉은 배경의 색 입자들과 어우러져 화면 전체의 밀도를 조율한다. 어떤 꽃은 부드럽게 번지고, 어떤 꽃은 조각처럼 도드라진다.
이 지점에서 이 작품의 중요한 특성이 드러난다.
이 화면은 ‘그려진’ 것이 아니라, 쌓인 것이다.
물감은 붓질의 흔적으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축적으로 존재한다. 부분 부분 두텁게 올라간 마티에르는 단순한 질감 효과가 아니라, 시간이 응고된 표면이다. 관람자가 가까이 다가가 시선을 이동시키면, 그 시선은 물감의 높낮이를 따라 움직이게 된다. 질감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시선의 움직임으로 만져진다.
꽃들은 우주의 별처럼 보이기도 하고, 기억의 입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화면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기억과 시간, 감정의 토양이 된다. 그 위에서 꽃과 날개는 피어나고, 떠오르고, 호흡한다.
작품 앞에 서면 마음이 고요해진다. 화려한 색과 복잡한 구성에도 불구하고, 관람자는 차분해진다. 이유를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한동안 그 자리를 떠나기 힘들다. 그림 속의 공기에 잠시 머무는 경험을 하게 된다.
4. 작가노트
감성이 형상이 되기까지
화접(花蝶)의 나비는 나비를 모사한 이미지가 되는 정도에서 머물면 의도에 못 미치는 결과다. 또한 상징의 언어에 머무는 회화로 보여서는 아니 된다.
화접을 마주한다는 것은 하나의 도상을 감상하는 행위가 아니라, 감성이 어떻게 구조를 획득하고, 구조가 어떻게 윤리와 철학으로 확장되는가를 목도하는 일에 충실해야 한다.
1978년부터 거의 반세기 동안 회화의 생성과 해체, 물성과 개념, 형상과 비형상의 긴 진동을 그려온 시각에서 볼 때, 화접은 분명한 지점에 서 있다. 이것은 감정이 더 이상 주관적 표출이나 즉흥적 서정에 머무르지 않고, 하나의 읽히는 체계, 즉 ‘감성의 문법’으로 전환되는 지점이다.
꽃을 선택함으로써 감성을 단위화한다.
꽃은 감정의 은유가 아니라 감정 그 자체의 조형적 최소 단위다. 각각의 꽃은 독립된 정서의 결을 품고 있으며, 그 축적과 배열을 통해 날개라는 구조를 형성한다. 이 구조는 우연의 집합이 아니라 치밀한 감성의 설계도처럼 구성한다. 나비의 형상은 그 설계의 결과로서 등장하며, 이는 자연의 차용이 아니라 감성 구조가 도달한 필연적 형상이라 할 수 있다.
좌우로 펼쳐진 날개는 대칭을 이루지만, 결코 동일하지 않다. 이 미묘한 어긋남은 인간 감정의 본질을 정확히 겨냥한다. 감정은 균형을 욕망하지만, 완전한 대칭을 허락하지 않는다. 기억은 항상 다르게 침전되고, 경험은 좌우로 동일하게 분배되지 않는다.
나는 이 불일치의 대칭을 통해 감성 구조의 양면성을 드러낸다. 이는 고전적 조화의 재현이 아니라, 현대적 균형에 대한 성찰이라고 말하고 싶다.
“하나의 날개로는 날 수 없다”는 명제는 이 작품의 조형적 원리이자 윤리적 선언이다.
꽃 하나는 날 수 없고, 날개 하나 또한 생명체를 완성하지 못한다. 오직 다수의 감성이 집합되고, 상호 의존할 때 비로소 비상의 가능성이 열린다. 이는 개인의 감정이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만 의미를 획득한다는 사실, 그리고 예술이 사회적 감성의 場 안에서 작동할 때 비로소 확장된다는 사실을 조형적으로 증언한다.
나는 빛깔과 리듬, 구조 그리고 특별히 질감(物性)을 중시한다. 화접의 질감(마티에르)은 감정이 시간 속에서 응고된 흔적이다. 두텁게 쌓인 물질은 즉각적인 감정의 분출이 아니라, 반복과 체류, 노동과 숙고의 결과다. 감정은 이 화면에서 추상이 아니라 촉각적 실체로 존재한다. 이는 1980년대 물성 회화 이후, 감정이 다시 물질로 회귀하는 하나의 성숙한 국면이라 평가할 수 있다. 다만 이 회귀는 퇴행이 아니라, 감정과 물질의 새로운 화해다.
배경은 공허가 아니다. 그것은 감성이 발생하기 이전의 심층이며, 개인과 집단의 기억이 축적된 문화적 토양이다. 꽃과 나비가 전면으로 부상할수록, 배경은 침묵 속에서 모든 감정의 무게를 지탱한다. 이는 한국 현대사의 정서적 층위, 상처와 회복, 망각과 기억의 반복을 은연중에 호출한다.
결과적으로 화접은 회화를 감상의 단계나 감상의 대상으로 남겨두지 않는다.
관람자는 화접 앞에서 자신의 감정을 읽히는 구조 안으로 편입되길 바란다. 이는 회화가 공간이 되고, 감성이 경험으로 확장되는 지점이다. 이러한 전환 속에서 작품은 감성 회복의 상징으로 기능한다. 이것은 감상을 구조로 재편함으로써 화접과 감상자 사이에서 비상의 조건으로 전환하는 태도—바로 그 지점에서 이 나비는 오늘의 우리에게 말을 건다.
이 작품은 더 이상 이론적 제안이나 개념에 머무르지 않고, 더 이상 구상이나 추상, 비구상이라는 장르를 넘어 하나의 완결된 조형 언어의 감성 회복을 선언한다. 감정은 읽힐 수 있고, 공유될 수 있으며, 구조화될 수 있다는 이 장엄한 명제를 갖게 한다.
나의 반세기 미술이라는 궤적 위에서 나를 볼 때, 작업은 충분한 무게를 지니고 감성 미학이 도달한 하나의 결정체로 나를 기록하게 한다.
5. 작가소개
홍익대학교 대학원과 미국 Claremont 대학원을 졸업했다. 또 국내외 여러 국가에서 다양한 전시를 이어왔다. 미국 Installation 및 BFC 갤러리, 한국 현대아트갤러리, 가나아트갤러리, 한강 세빛섬 솔빛전시관, 영국 런던 사치갤러리와 미국 뉴욕 첼시 인듀스트리얼 부스 개인전 등 국내외 23회의 개인전을 개최했다. 1987년 국립현대미술관의 청년작가전(과천), 1995년 프랑스 유네스코 본부 한국 작가 50인전, 2017년 파리 그랑팔레의 꽁빠레죵 등에 초대되는 등 130여회 그룹전에 참가했다.
제23회 호안미로 국제드로잉전(우수상, 스페인), 84 I.A.C.국제미술대상전(우수상, 미국) 등 국제 미술상과 제1회 청념미술대상전(대상), 제38회 대한민국미술대전(국전, 최우수상), 대한민국 문화체육부 장관표창 등을 수상했다.
또 그의 화접영상은 2023년 미국 뉴욕 맨해튼 타임스퀘어 대형 전광판에 전시돼 K-아트의 위상을 높혔다. 그의 작품은 2020년 삼성의 갤럭시20 폴더블폰 ‘플립Z’ 초기 출시 행사의 “Beauty in the Butterfly” 콜라보 프로젝트를 진행하였으며 2022년 쥬얼리 브랜드 티르리르와의 콜라보 “Romantic Lovefly” 프로젝트로 목걸이, 귀걸이, 브로치 등의 한국 최초 주얼리 콜라보로 나비 액세서리를 재탄생시켰다. 이 밖에도 여러 기업과 협업되고 정부종합청사(교육부, 세종시) 등지에도 소장 전시 중이다. 김 작가는 평면 회화와 설치 미디어아트 영역까지 활발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