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嘉中 fictiot ‘하릴없이 거리를 헤매는 부랑자가 되어’

입력 2026년03월05일 11시51분 김가중 조회수 331

Fantasy work docent: 제 여행은 매우 비효율적입니다. 명승지를 미리 알고 간 적도 없고 유명한 곳의 가치도 모르는 숙맥이었습니다. 특히 누드 여행은 비정형화된 이색 여행입니다.

(누드작품들은 한국사진방송-보물창고에 넣어 둡니다.)

 

줄창 여자들 밑구멍만 쫓아다닌 것은 아닙니다. 파리 생활을 잠시 짚고 넘어가자면 칸느의 해변에서 휴가온 나체의 동양 여인을 만납니다. 여름 내내 파리는 도시가 텅 비는데 한 달이 넘는 긴 휴가를 세계 여행을 하거나 지중해와 프로방스 지역으로 가기 때문입니다. 떼제베를 타면 4~5시간이면 칸느나 마르세유 모나코까지 쉽게 갈 수 있어 해변 길은 문전성시로 트래픽이 심합니다. 우리들도 두껑 없는 차를 렌트해 누비고 다녔는데 앞서 얘기했든 번잡한 곳(명승지)은 안 가는 스타일인지라 길이 막혀 고생한 적은 별로 없지만 어떤 이들이 쓴 글을 보면 칸느에서 모나코까지 가는 길이 많이 막혔던 것 같습니다. 서 있는 차 안에서 옆 차의 사람들과 수인사를 트고 어디까지 가세요?” “글쎄요 우리 아들 대학 졸업식에 가야될 것 같아요. 우리 신혼여행 왔는데 차 안에서 아들 낳고 그 아들이 대학 졸업하게 되어서요.”

 

칸느엔 간 것은 누드 비치의 호기심인데 아무리 묻고 아무리 헤매도 그런 곳은 없다고 하더군요. 허탈한 심정으로 바닷가로 나갔는데 허 참 백사장에 입은 사람들보다 벌거벗은 사람들이 더 많더군요. 참 이상한 사람들입니다. 그 뜨거운 햇살 달궈진 프라이팬 백사장에서 큰 대자로 쩍 벌리고 잠들어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완전 나체이더군요. 책 보는 사람들, 더운데 끌어안고 열중인 섹파들, 후에 알았지만 독일의 함브르크로 가면 수위가 훨씬 높다더군요. 서독사람들 동독 사람들 때문에 불평 많이 한다더군요. 제발 옷 좀 입고 살아라!

 

그 해변에서 뭇시선을 몰고 다니는 자그마한 동양 여인이 있었는데 (칸느 여행기에 자세히 기록) 마드모아젤 리였습니다. 물론 나체로 만났습니다. 그곳은 입은 것보다 나체가 더 자연스러운 곳입니다. 휴가가 끝날 무렵인데 헤어지기 아쉬워하니 파리로 함께 가면 자신이 다양한 사람들을 누드모델로 소개해 주겠다고 했습니다. 테제베를 타고 파리로 온 이유입니다. 아파트에 방이 남는다며 숙소까지 제공해 주었고요. 남편이 판사더군요. 구라요? 당시의 대통령 사르코지 부인 브루노의 포르노 사진(한국적인 수준)을 제가 가지고 있습니다. 다행히 한국같이 이상하게 폐쇄된 나라에서도 그녀의 누드사진이 쉽게 검색됩니다. 단 제가 보유한 작품들과는 천양지차이지만....사람들은 판사부인의 누드와 파리 경찰관의 누드를 촬영해 왔다고 하면 갈리버 여행기 쓰냐며 또라이로 봅니다. 하기야 몽골에서 대사건이 터져 피디수첩에 호되게 얻어맞고 그 여파로 당시의 우리 대통령이 몽골까지 가게 된 사건도 아는 이들은 다 압니다.

 

화성연쇄살인누드 등을 검색하면 파리의 기이한 여행이 걸리버 여행기가 아님을 단박에 알 것입니다. 세계 유일무이 기상천외한 여행은 평탄한 여행일 수는 없습니다. 어딜 가든 항상 꼬리에 꼬리를 물고 마르코 폴로나 걸리버보다 더 괴상망측한 사건이 계속 터질 수밖에 없는 것이 저의 여행입니다.

 

파리엔선 매일 누드 촬영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누드모델 구하기 쉬운 곳은 전 세계 어디에도 없습니다. 마드모아젤 리가 매일 동분서주 발품을 팔았지만 모델이 쉽게 구해지진 않았습니다. 저도 파리 화랑들의 거리에 대자보를 붙이기도 했고요. 파리에선 모델을 구하는 화가나 모델을 하고자 하는 몸이 화랑 거리 한 모퉁이에 있는 게시판에 연락처와 조건을 쓴 메모장을 붙여놓습니다.

 

모델을 못 구한 날이 더 많았는데 모델 없다고 아파트에 칩거하는 것은 바스티유 감옥살이보다 더 지겨운 일이었습니다. 반드시 나체만 카메라에 담을 이유도 없고요. 그래서 아침 일찍 거리로 나와 발가락이 헤질 때 까지 정처 없이 헤매었습니다. 전철을 타기도 하고 버스를 타기도 했지만 주로 걸어 다녔습니다. 세계 어디를 가든 하루나 이틀 정도면 금새 그 도시의 속성을 파악할 수 있어 별 불편하진 않습니다,

 

제 여행은 매우 비효율적입니다. 명승지를 미리 알고 간 적도 없고 유명한 곳의 가치도 모르는 숙맥이었습니다. 특히 누드 여행은 비정형화된 이색 여행입니다.

나폴리에서 지도를 펴놓고 호텔 직원에게 길을 물었는데 동문서답을 하고 있더라고요. 꼭지가 돌아 미련곰탱이라고 욕을 퍼붓고 나서야 그 지도가 로마 지도였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지도를 찢어발기고 로마로 왔는데 버스터미널이 시내 한복판에 있고 모든 노선이 그 터미널에서 버스로 나갔다가 다시 터미널로 되돌아와 다음 행선지로 갈아타고 나가는 방식입니다. 왼 종일 돌다 호텔로 돌아오니 낮에 터미널에서 버스 타고 물어물어 찾아온 온 유적지(로마시대 대중탕 등)가 호텔 로비에서 딱 5분 거리였고, 또 한번은 택시를 타고 내려보니 길 건너였더군요. ! 택시 너 거기서! 딴지를 확 걸어 홀라당!

파리에서도 이런 비효율적인 여행이 계속되었는데 파리는 비교적 좁은 도시인지라 무작정 걸으면 되니 비효율 여행이 오히려 도움이 되었습니다. 며칠 지나니 파리사람들보다 제가 파리를 더 잘 아는 사람이 되어 있더군요. 골목골목 고샅고샅 모르는 데가 없었습니다, 엿 장수 도부 치듯이 헤집고 다녔으니까요.

 

창자가 밖으로 나와 있는 고물상 같은 동네가 있더군요. 퐁피두센터라나? 유명한 드골과 앙드레 말로가 구상했다던가? 아무튼 이 괴상한 건물은 제 반골 스타일과 상통하는 매력이 있습니다. 독특한 누드 설계! (이 말 딱) 배창시가 배 밖으로 나온 희한한 집인데 양말 벗듯 홀라당 까 뒤집힌 그 반골은 단박에 유명해졌습니다.

아르누보라나? 국수가락스타일 (누우 스타일)이라고도 하는데, 뒤틀림에서 영감을 얻은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빅토르 오르타가 창시하였죠. 꽈배기처럼 비틀린 곡선이 주는 상상력을 표현하는 형식으로 2차대전까지 "새로운 미술" 이란 예술사조로 인기를 끌었다네요. 퐁피두 센타 앞 광장에 이런 예술품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더군요. 그러나 나에겐 장난감 이상으로 보이진 않았고 오히려 그 옆의 공사장 가림막의 낙서가 더 예술이란 느낌을 받았으니....무식대왕이라 불려도 쌉니다.

 

뭐야

이 거대한 컵은 나같이 뱃구레가 큰 놈도... 어느 유명한 예술가가 예술은 좆도아이다 실물보다 아주 크거나 실물보다 아주 작으면 곧 예술아이가. 라고 짖어대며 인간의 손가락이나 성기, 또는 파리 같은 곤충을 무지막지하게 크게 만들어 세계 곳곳에 엄청 비싸게 많이 팔아먹었답니다. 여기 이 컵도 우리나라 누가 엄청나게 비싸게 사다 놓아 어디에선가 본 것 같네요.

 

얼마나 걸었을까? 성당이 있어 지하로 내려가니 반들반들한 의자들이 많이 놓여 있습니다. 노트르담 성당에 들어가면 긴 나무 의자들에 등받이가 있는데 여긴 등받이가 없네요. 어쨌든 걸터앉아 양말을 벗어 던지고 부어오른 발가락을 주무르고 있는데 톡톡 어깨를 치더군요. ! 얼이 빠져나가는 소리입니다. 저승사자가 분명한데 여자인 것 같더군요. 날카로운 윤곽, 새하얀 피부, 2짜리 80mm 렌즈같은 화등잔 눈망울, 우리나라 저승사자 닮은, 갓은 아니고 시커먼 두건. 그 프랑스판 저승사자가 뼈다귀 같은 앙상한 손가락을 위로 까딱하였습니다. 그건 의자가 아니고 관이었던 것입니다. 그 관 안에 계신 분들에게 똥침 안 맞아 정말 다행이었습니다.

 

그 수녀에게 큰절을 올리고 밖으로 나오니 르네상스 시대의 이노상 분수와 주변은 섹파들 쌍쌍파티 각입니다.

 

제가 이 이야기 서두에 살아서 파리, 죽어서는 천국이라고 기록했는데 실수입니다. 파리에선 죽으면 다 이곳으로 그 시체가 모였습니다. 시체가 잘 썩는 특별한 지역이라더군요. 혁명! 역사의 소용돌이로 세상이 미쳐버리자 매일 밀려드는 시체들로 냄새가 진동하는 음침하고 기분 나쁜 곳이 되었죠. 신난 사람들도 있습니다. 의과 대학생들인데 시체들을 골라 업고 갔습니다. 성인은 30프랑, 어린이는 20프랑, 이게 사람의 정당한 값입니다.

산더미 같이 쌓인 해골들이 카타콤으로 우르르 굴러가고 그 자리에 젊은이들이 몰려들어 연인들의 거리로 바뀌었습니다. 그러자 어느 날 이노상 분수가 이곳으로 슬그머니 이사 왔다고 합니다.

 

(이노상은 파리에 남아 있는 유일한 르네상스 시대 분수로 알려져 있다. 앙리 2(Henri II, 1519~1559)의 통치를 기념하기 위해 1550년경 제작되었다. 건축가 피에르 레스코(Pierre Lescot, 1510 ~1578)가 전체적인 설계를 맡았다. 르네상스 시기 최고의 걸작 중 하나로 꼽히는 아름다운 분수 조각들은 프랑스의 유명 조각가 장 구종(Jean Goujon)이 만든 것이다. 처음에는 생 드니 거리(Rue Saint-Denis)에 세워졌었으나 이노상 묘지가 폐지됨에 따라 오늘날의 자리로 이전했다.)

 

오늘은 일찍 자겠습니다. 내일은 흑진주 캣우먼의 누드를 촬영하기 때문입니다. 캣우먼은 당시에 전 세계를 강타한 인기 만화 및 영화였는데 제 모델이 프랑스의 코미디언이고 흑녀였기에 이 칭호를 부여 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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