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에 담은 사찰 꽃문] ⑨ 임진왜란과 꽃문 ‘현대불교신문 연재컬럼’

입력 2026년03월15일 10시33분 손영자 조회수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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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www.hyunbu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502409

제공: 손영자 사진가


 

내소사 대웅보전.

사찰 문살에는 언제부터 이 피었을까. 우선 오래된 건물부터 보자. 현존하는 건물 중 건립 시기가 가장 오래됐다고 알려진 봉정사 극락전은 어간에만 출입문이 있는데, 아예 문살이 없는 널문(판장문)’이다.

 

이 건물이 지어진 때는 1200년대 초로 추정한다. 1308년에 지어진, 건립 연대가 밝혀진 것 가운데 가장 오래된 수덕사 대웅전 전면은 모두 문살을 사선으로 교차시켜 짠 빗살문이다. 1376년에 지어진 부석사 무량수전 전면의 문은 모두 우물 정()’ 자 모양으로 짠 교살문이다. 고려 시대 말까지 꽃살문은 등장하지 않는다.

 

꽃살문의 백미, 꽃살문의 클래식을 만나려면 내소사 대웅보전으로 가야 한다. 조선 시대 소목장들이 절정의 솜씨를 발휘한 공예품 같은 꽃살문이다. 사실 공예품같다는 표현도 결례다. 이런 솜씨를 발휘한 목수들의 마음자리에는 작품을 만들겠다는 식의 의도가 끼어들 여지가 없다. 석굴암과 불국사, 고려청자, 조선백자를 만든 장인들이 그랬다.

 

내소사 대웅보전이 지어진 때는 1633년이다. 부석사 무량수전이 지어지고 257년이 흐른 다음이다. 이 기간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합리적 추론은 가능하다. 문화 현상에서 양식의 변화 양상은 경사로보다는 계단에 가깝다. 우리 역사에서 이런 계단은 임진왜란이다. 현존하는 사찰의 꽃문은 임진왜란 후 인력과 재원이 모두 부족한 상황에서 대웅전(주불전)을 중심으로 사찰을 재건한 시대의 산물이다. 다포식 공포, 닫집, 천장 장엄 등이 이 시기에 이뤄졌고, 18세기 들어서는 규범적 양식으로 전국에 퍼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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