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嘉中 fictiot 浪漫遊戲 ‘버들잎 처녀’

입력 2026년03월23일 10시35분 김가중 조회수 267

(누드작품들은 한국사진방송-보물창고에 넣어 둡니다.)

 

카메라를 메고 나선 遺棄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라는 정릉골 달동네로 올라갔다. 폐허와 쓰레기로 덮였고 무너지고 부서진 빈집들만 가득한 유령마을이었다. 이곳을 찾는 이들은 예술가들 뿐이었다.

 

미아리 텍사스.

마지막으로 셔터를 눌렀던 날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바람이 세게 불던 오후였고, 간판은 반쯤 떨어져 덜컹거렸으며, 골목은 이미 사람의 온기를 잃은 채 낡은 벽과 먼지만을 남기고 있었다. 그곳은 더 이상 삶이 이어지는 장소가 아니라, 겨우 흔적만 남아 있는 시간의 껍질 같았다.

 

그곳은 이제 완전히 사라졌다. 다시 찾아갈 수도, 비교할 수도, 확인할 수도 없는 장소가 되어버렸다. 길음역에서 몇 분이면 닿던 그 자리는 곧 반듯한 건물과 유리창으로 채워지고, 사람들은 더 밝고 안전한 길을 걷게 될 것이다. 누군가는 그 변화를 발전이라 부를 것이고, 또 누군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이다.

 

도시는 끊임없이 자신을 지우며 앞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인간은 그 위에 의미를 덧붙이며 스스로를 위대하다고 믿는다. 몸으로 때웠던 시간들, 이름 없이 스쳐간 사람들, 그리고 아무도 기록하지 않으려 했던 이야기들. 그 껍질들만 사진이란 이미지로 남아 알 수 없는 단어들을 남발하고 있다.

 

사진은 선명했지만 의미는 흐릿했다.

사진을 정리하면서 점점 알 수 없게 되었다. 이것이 과연 기록인가? 아니면 단순한 잔해 수집에 불과한가? 가치가 있는 것일까? 완성되지 않은 사진들을 바라보다가 문득 깨달았다. 사진이 어려운 이유는 기술이 아니라, 사라진 것을 이해하는 일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녀는 조용히 파일을 닫았다.

아무도 묻지 않을 질문 하나를 마음속에 남겨둔 채.

 

미아리 텍사스의 마지막을 아카이브 한 이후 다시 찾은 곳이 그보다 더한 폐허라니....

이곳은 遺棄가 난생처음 누드모델을 했던 곳이고 그 인연으로 그 작가를 만났고 사진을 하게 된 이유이기도 했다.

 

그 작가의 집은 청수장(淸水莊)에서 가까웠다. 이 지역은 물이 맑아 청수동이라 불려 서유기에나 나올 것 같은 신비한 이상향이었다. 작가의 어린 시절 사대문 안을 서울이라 하였고 무악재 너머 홍제원 세검정 일대를 자문밖(자하문), 이 일대는 미아리 공동묘지라며 서울로 끼워 주지 않던 곳이다. 하지만 청정 지역으로 물이 맑고 경관이 수려한데다 도심에서 가까웠기에 유원지로 이름을 날렸다. 근대에 미아리공동묘지 아래 돈암동이 전차 종점이 되고 단장의 미아리 고개를 넘어서면 길음리였는데 곡소리가 끊이질 않아 사람들이 꺼려 길한 소리라는 길음으로 개명하니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이 되었다는 전설이다. 지금은 복개된 길음교 아래 넓은 호수와 백사장은 하동 들의 물놀이가 곡소리를 덮었고, 겨울이면 썰매장으로 스릴이 넘치던 곳이다. 이 개천을 따라 손가정(孫哥亭) 일대는 억겁의 세월을 계류로 연마된 바위들이 기기묘묘한 아름다운 형상을 자랑하여 최고의 소풍지였다. 명승지답게 손가정(孫哥亭)이란 유명한 정자가 있었고 손씨들의 집성촌이었다. 손가정에서 개천을 따라 더 올라가면 청수동인데 이곳의 옛 지명 사을한리(沙乙閑里), 우리말로 살한리는 기억에서 삭제되어 아는 이가 없다.

 

정릉동이라는 이름은 오래된 슬픔에서 비롯되었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호랑이를 좇아 말을 달리던 장군이 있었다. 땀에 절고 지친 그는 우물가에 멈춰 섰다.

물을 긷던 어린 처녀에게 물 좀 주겠는가.”

처녀는 말없이 물을 떠 올렸다. 사발 위에 버들잎을 한 줌 띄웠다.

 

장군은 눈썹을 찌푸렸다.

이게 무슨 짓이냐?”

처녀는 조용히 웃었다.

급히 드시면 탈이 나십니다. 잎을 불어내며 드시면천천히 드시게 될 테니까요.”

사랑의 말문은 그렇게 트였다. 그녀는 열여섯, 그는 21살 연상의 장수였다.

사람들은 수군거렸지만... 버들잎처럼 많은 대화를 나누며 추억을 키웠다.

 

장군은 수많은 전장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승리는 장군만의 힘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권모술수나 교활한 자가 늘 승리한 예는 없다. 승리엔 도가 따르는 법이다. 남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고 여자는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법이다. 사병들이 장군을 위하여 초개같이 목숨을 버릴 수 있는 것은 진심으로 사랑하고 존경하기 때문이다. 그런 장군만이 늘 전장에서 승리할 수 있다. 그는 의를 알고 도를 지키는 군인이었다. 그의 군은 목숨을 아끼지 않았다. 항상 승리하는 이유였다.

 

위화도 회군,

이 역사는 그의 도가 아니었다. 사랑하는 부하들이 이길 수 없는 전쟁에서 역병에 스러지고 적에게 척살 당해 지리멸렬 할 것이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바쳐 병사들의 목숨은 살려야 된다는 생각은 진심이었다. 하극상과 혁명을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왕은 언감생심이었다. 사랑하는 부하들을 살리겠다는 일념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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