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가중 도슨트 皇山之藝術Nude ‘중국의 혼을 그려내다’

입력 2026년04월17일 11시24분 김가중 조회수 234

안개는 황산의 능선을 따라 천천히 흘러내렸다. 바위와 소나무 사이로 스며든 희뿌연 기운은 마치 오래된 기억처럼 형태를 갖추려다 이내 흩어졌다. 그 안개와 운해가 시시각각 변신하며 만들어내는 형상에 묻어 념은 도심으로 흘러내렸다.

 

황산시가 속한 안휘성은 돌과 나무, 그리고 침묵 속에 과거를 숨기고 있었다. 남송의 예술과 숨결은 바람처럼 스치고,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시선이 따라붙는 듯했다.

 

어느 굽이진 길목에서, 희미한 형상이 안개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붉은 전포를 입은 장수였다. 그는 말없이 앉아 있었고, 신선을 닮은 한 도인이 그의 어깨를 긁어내고 있었지만 얼굴에는 미동도 없었다. 바둑판 위의 돌만이 또각이며 놓이고 있었다. 관운장이었다. 고통을 넘어선 자의 예리한 눈빛이 잠시 스쳤다가, 다시 안개 속으로 스며들었다.

또 다른 그림자 손에는 약초를 들고, 눈빛은 깊고도 고요했다. 그는 산을 닮아 있었다. 사람들은 그를 화타라 불렀다. 마비산의 비밀을 품고, 생과 사의 경계를 넘나들던 자. 그의 발걸음은 신선의 도를 깨우친 황제의 산 황산과 천주산, 중국불교 명산 구화산, 노자의 도가 넘쳐 흐르는 제운산 그리고 수많은 약초가 숨 쉬는 골짜기를 따라 이어지는 백약산, 이 땅의 기운은 그의 손끝으로 스며 들어갔다.

 

바람이 한 번 더 불자, 장면은 다시 바뀌었다. 강가의 전운이 번지는 가운데, 갑옷을 입은 젊은 장수가 서 있었다. 그의 눈은 멀리 불타오르는 적벽을 향하고 있었다. 주유였다. 병법과 도를 함께 익히던 그의 시간 역시 이 땅 어딘가에 남아, 지금도 흐르고 있는 듯했다.

조금 더 걸음을 옮기자, 붓을 든 선비가 나타났다.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글씨를 써 내려갔다. 먹빛은 바위처럼 깊었고, 획 하나하나에 기운이 살아 있었다. 주희였다. 그의 글씨는 단순한 문자가 아니라, 이 땅의 이치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했다.

 

중국의 관리, 셀럽 중의 셀럽, 청백리의 표상, 엄정한 얼굴의 장한이 모습을 드러냈다. 청렴함이 옷자락처럼 그의 몸에 붙어 있었다. 포청천. 민을 위하는 공직자의 궤범을 상징하던 그의 눈빛은 안개 속에서도 또렷하게 빛났다. 조조의 그림자도 스쳐 지나갔다. 영웅이라 불렸던 자들의 발자취를 황산의 안개와 운해는 가이없는 허허로움으로 그려내고 있었다.

 

천 년이 넘도록 마르지 않는 우물이 이곳에 있다. 그 물로 술을 빚으면 향기가 십 리 밖까지 퍼진다고 했다. 사람들은 그 우물을 천하명정 고정이라 부르고, 그 술을 고정공주라 불렀다. 오래전 황산에서 이백이 읊었다는 술 또한, 어쩌면 이 술을 가리킨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이 지역은 술만으로 유명한 곳이 아니었다. 의술과 수묵화, 문학이 함께 숨 쉬는 땅이었고, 시대마다 걸출한 인물들이 끊임없이 태어났다. 중국 어느 지역보다 향학열이 높았고 지금도 여전히 배움에 대한 열기는 식지 않았다. 한때 권력의 정상에 섰던 강택민 또한 이곳을 배경으로 성장했다고 전해진다. 그가 이름 붙였다는 화산미굴불가사의한 동굴은 여전히 불가사의로 남아있다.

중국 역사를 품은 오래된 촌락 굉촌으로 향했다. 황산의 그림자 아래 놓인 이 마을은 시간이 멈춘 듯 고요했고, 그 속에는 중국다운 중국이라 부를 만한 정신이 스며 있었다. 물길을 따라 이어진 골목과 오래된 기와지붕 사이를 걷다 보니, 풍경 자체가 하나의 수묵화처럼 느껴졌다.

그 순간, 내 안에서 오래된 욕망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도자 예술이 지닌 불멸의 아름다움과 인간의 몸, 즉 누드가 지닌 생명력을 하나로 엮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이곳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이 고요한 마을의 시간과, 천 년의 향기를 품은 술, 그리고 인간의 몸이 하나의 화면 안에서 숨 쉬게 만드는 것.

 

나는 붓을 들었다. 아니 카메라를 들었다. 과연 이곳에서, ‘중국다운 중국을 담은 나만의 작품을 완성할 수 있을까.

 

본 차이나(Bone China) 왜 이 단어가 튀어나왔는지 모르겠다.

뼈를 갈아 흙과 섞어 만든 그릇.

불 속에서 죽음을 다시 구워내면, 그것은 반투명해지고 돌처럼 단단해진다.

사람들은 그것을 아름답다고 불렀다.

 

하지만 그건 단지 도자기가 아니라,

타버린 누군가의 기억이라는 것을.

 

동쪽의 오래된 산맥에서는 오래전부터

재 속에서 사리를 건져 올리는 다비라는 의식이 있었다.

모든 것이 사라진 뒤에도 남는 것.

형태를 잃고도 끝내 사라지지 않는 것.

그 원리를, 누군가는 흙에 적용했다.

그리고 지금

그는 그것을 인간의 몸 위에 다시 그리려 한다.

 

안개와 구름이 산을 삼키는 곳,

끝없이 변하는 형상을 지닌 그 산에서,

그는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려 한다.

청화백자! 도자기 세계의 수도 경덕진, 화려하고 현란한 색채미, 정교한 형식미학

 

이것이, 세계다. 중국다운 중국이다.”

 

안개가 끝없이 깔린 대륙의 동쪽 끝, 작은 반도의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묘한 습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들은 무엇이든 최고라 부르는 데 익숙했고, 그 신념을 의심하는 법이 없었다. 바깥 세계를 모른 채 살아가는 우물 안 개구리와도 같았으나, 정작 그들은 그 좁은 세계 안에서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꿈을 키워왔다. 반도의 사람들은 결코 만만한 존재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좁은 땅에서 태어났으되, 집념만큼은 누구보다 거대했다. “세계 제일이라는 말은 단순한 허세가 아니라,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가이 없는 에너지를 발생시키는 주문이었다. 그 신념은 때로는 맹목적이었으나, 동시에 기적을 만들어내는 불씨였다.

하지만 예술에 반드시 최고급이라는 우열을 매길 필요는 없다. 최고는 의외로 항상 간단하다고 하지 않았는가?

 

달항아리! 고려청자! 난향같이 은은하게 번지는 비색의 아름다움, 미니멀하고 절제된 여백의 미. 철학과 예술적 정신의 합체 미학.

 

어느 날 그들에게 예술의 새로운 경지가 배달되었다.

붓과 캔버스를 넘어, 인간의 육신 위에 혼을 새기는 생체 화법(生體畫法)’.

대륙의 명산, 끝없이 흐르는 운해와 변화무쌍한 하늘의 기운을 포착하여, 그것을 살아 있는 몸 위에 그려 넣는 금기된 예술. 제국이 자연을 담아냈다면, 반도의 화가들은 자연을 인간 그 자체로 변환시키려 했다.

그것이 곧, 예술이다.”

그들은 그렇게 선언하며, 인간을 하나의 살아 있는 걸작으로 빚어내려 했다.

안개처럼 페인트가 흐르고, 생체 위에 산맥이 꿈틀거리는 순간! 예술과 광기의 경계는 완전히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중국다운 중국의 혼을 그려내자!

Bone China! 靑畫白磁! 彩色土器! 그 기묘한 색감은 장이머우를 소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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