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쩍! 우르르 콰과강!
새파란 날카로운 칼이 비단 천을 가르듯 하늘을 두 쪽으로 갈라 버렸다.
시신봉의 바위틈에서 솟아오른 석수는 손오공의 도술인가? 굉음을 내며 산을 두 쪽으로 쪼개 버렸다.
“콸콸콸” 로 표현될 수 없는 경지, 공기까지 찢어버리는 액체의 폭발!
그건 물이 아니라, 산 하나가 무너져 내리는 소리였다.
하늘이 통째로 내려앉는 소리였다.
오래전, 남미의 이과수 폭포 아래로 배를 밀어 넣었을 때 폭포는 떨어지는 게 아니라, 사방에서 들이치는 물의 벽이었다. 물보라는 비가 아니라 수천 개의 주먹이 동시에 얼굴을 때리는 느낌이었고, 바람은 불어오는 게 아니라 물에 떠밀려 생긴 폭풍이었다. 카메라는 이미 의미를 잃었다.렌즈는 보는 도구가 아니라, 그냥 맞는 표적이 되었을 뿐이다.눈을 뜨는 순간, 시야는 사라지고 세상은 오직 흰 소음과 물의 압력으로만 존재했다. 그때 할 수 있었던 건 단 하나 고개를 무르팍 아래로 처박고, 이 물의 세계에서 살아서 빠져나가기만을 바라는 것
황산비취계곡(黄山翡翠谷, Emerald Valley)
중국 안후이성의 황산(Huangshan) 풍경구 안에 있는 계곡으로 물빛이 에메랄드빛으로 맑게 보여 ‘비취(翡翠)’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홍콩 영화 와호장룡(Crouching Tiger, Hidden Dragon)의 촬영지로도 유명한 곳이다.
우리가 이곳에 도착했을 때 물은 비취색이 아니었다. 은은한 비취와 여인의 몸을 대비시키고 싶다는 무모한 발상, 달리는 차 안에서 꾼 개꿈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이번 황산누드여행은 태풍과 장마의 물 폭탄의 한가운데를 관통하고 있었지만 우리의 뮤즈가 옷을 벗으면 햇님이 방긋 웃으며 나타나 손을 살랑살랑 흔들어 주었는데 이번엔 아니었다.
황산의 선계!
이름은 비취였지만, 우리가 도착했을 때 그곳의 물은 이미 색을 잃고 장마와 태풍이 뒤섞은 탁한 힘의 덩어리로 변해 있었다. 하늘은 끝내 웃지 않았고, 계곡은 끝까지 성난 표정으로 우리를 째려봤다. 중국의 7대 폭포 중 하나라는 구룡폭포는 차량으로 10분 거리다.하지만 구룡은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이 계곡 전체가 이미 구룡폭포보다 더 미친 폭포로 변해 있었으니까.
제갈량의 비파 소리처럼 은은하게 메아리치는 물소리, 푸른 비취빛 물과 어우러진 여인의 몸… 말 그대로 미친 천상의 아름다움이었다. …무슨 개소리야. 그런 아름다움이 어디 있어?
비취계곡은 이미 ‘악마의 목구멍’(남미 이과수 폭포 그 뒤집어지는 물줄기)이었고 계곡가 바위에 새겨진 새빨간 한문들은 성난 물보라의 공갈 협박에 굴복하여 억지 춘향으로 미쳐 날뛰는 것처럼 요동쳤다. 글자도, 물도, 전부 다 제정신이 아닌 미친 풍경이었다.
태양도 오그라들었고 여인도 오그라들었다. 카메라는 품 안으로 숨어 나올 생각을 안 했다.
은은한 비취색의 아름다움? 와호장룡? 주윤발? 장쯔이? 꿈도 야무지네...
아니다
우리에겐 아직 제갈공명의 비결 주머니가 남아 있었다. 위기의 순간에 풀어 보라며 건네준 주머니...
-그 작가의 페인팅 퍼포먼스가 그려낸 예술세계가 바로 仙界였다.-
하늘 아래 첫 동네 심산유곡 산등성에 있는 마을 그리고 페인팅 퍼포먼스
인체. 가슴 배 그리고 악마의 숨구멍
페인트가 천천히 흘러내리며 폭포를 그리고 비취 계곡의 수려한 풍취를 그려냈다. 황산이 품은 비취의 자연적인 아름다움이 ‘미쳤다’ 고 한다면 인체의 한가운데를 흐르며 그려낸 우리의 아름다움은 ‘죽었다 아니 쥐긴다’ 였다.
“비취빛 물결 속에
산이 잠기고
하늘이 내려와
계곡에 머문다.
작은 폭포의 숨결마다
사랑이 흐르고
한 걸음마다
마음이 맑아진다.”
- 이름 없는 어느 여행가
- 태풍이 비취에서 그토록 무시무시한 폭우와 사나운 날씨로 공포를 조장한 것은 필자에게 누드 촬영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다는 것을 먼 훗날 깨달았다. 물론 올누드는 자제하고 세미하게 갔지만, 위의 詩처럼 저토록 아름다운 날이었다면 인산인해의 파도로 인해 단 한 컷의 누드 작품도 그곳에선 불가능했음이 분명했다. 아무리 그분이 뒤에서 밀어준다고 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