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곡 할매들, 이제는 감동이 아니라 존재의 역사로 읽다”

입력 2026년05월30일 10시14분 김가중 조회수 144

가산산성 아래서 피어난 가장 동시대적인 예술


 

 

 

 

경북 칠곡군 가산면. 오래된 산길을 따라 올라가면 조선 숙종 시기 축조된 가산산성이 모습을 드러낸다. 돌로 쌓인 성벽 사이로 바람이 지나가고, 산 아래 마을의 시간은 조용히 이어진다. 전쟁과 피난, 생존과 노동의 시간을 견뎌온 이곳에서 지금 특별한 현대미술 전시가 열린다.

 

 

 

오는 612일부터 73일까지 칠곡문화예술위원회 복합문화공간 SAN55에서 개최되는 존재와 감각의 축제 : 일곱 공주들은 지역 여성들의 삶과 기억을 동시대 예술의 언어로 다시 읽어내는 전시다.

 

 

 

하지만 이번 전시는 단순히 작품을 보여주는 행사에 머물지 않는다. 오랫동안 기록되지 못했던 사람들의 시간을 예술 안으로 천천히 불러오는 작업에 가깝다.

 

 

 

그동안 칠곡 할매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의 서사로 기억돼왔다. 늦은 나이에 한글을 배우고 시를 쓰기 시작한 할머니들의 이야기는 방송과 언론을 통해 널리 알려졌고, 사람들은 그들의 글을 읽으며 웃고 울었다.

 

 

 

그러나 이번 전시는 그 익숙한 감동의 프레임을 넘어선다.

 

 

 

우리는 왜 그들의 삶을 늘 감동으로만 바라봐왔을까.

 

 

 

가산산성 아래에서 살아온 여성들의 시간은 대부분 역사 바깥에 머물러 있었다. 가족을 돌보고, 밭을 일구고, 하루를 견디며 살아낸 시간들은 너무 평범하다는 이유로 기록되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의 삶 역시 바로 그런 시간들 위에서 이어져왔다.

 

 

 

이번 전시는 바로 그 오래된 삶의 결을 현대미술 안으로 가져온다.

 

 

 

전시장에는 영화·회화·설치·사진·포토에세이·비평 텍스트가 함께 놓인다. 폴란드 영화감독 파트리차 스카프스카의 영화 수니와 일곱 공주들에서 출발한 장면들은 여러 작가들의 작업으로 이어지며 하나의 감각적 흐름을 만든다.

 

 

 

전시는 거창한 해석보다 삶의 감각 가까이에서 시작된다. 오래된 사진 한 장, 손의 움직임, 침묵 속 표정, 노동의 흔적 같은 것들이 작품이 된다. 관람객은 작품을 이해하기보다 그 안에 남아 있는 시간의 온도를 천천히 마주하게 된다.

 

 

 

그래서 이번 전시의 제목 속 공주는 동화 속 인물이 아니다.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지만 끝내 자기 삶을 살아낸 존재들, 긴 세월을 견디며 자기 자리를 지켜온 여성들의 존엄을 뜻한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전시가 열리는 장소다.

 

 

 

가산산성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조선의 방어 체계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산성이다. 그러나 이번 전시는 그곳을 단순한 문화유산이나 관광지로 바라보지 않는다. 오랜 세월 사람들의 삶과 기억이 켜켜이 쌓여 있는 장소 자체를 하나의 서사로 읽어낸다.

 

 

 

복합문화공간 SAN55 역시 단순한 전시장이 아니다. 산성의 오래된 시간과 오늘의 삶, 그리고 동시대 예술이 서로 만나는 작은 플랫폼처럼 기능한다.

 

 

 

전시를 총괄 기획한 서세승 칠곡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은 이번 프로젝트를 보이지 않았던 삶의 시간을 예술의 중심으로 옮겨오는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서 위원장은 제61회 베니스 비엔날레 몽골 국가관 협력 대표로 활동하며 몽골·유럽·남미 등 다양한 국제 예술 교류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그는 오랫동안 지역 예술이 수도권 중심 구조 안에서 작게 소비되는 현실에 문제의식을 가져왔다고 말한다.

 

 

 

그는 가산산성은 단순한 옛 유적이 아니라 오랜 시간 지역 사람들의 삶이 겹겹이 쌓여 있는 장소라며 이번 전시는 그 안에 남아 있는 삶의 감각을 오늘의 예술 언어로 다시 바라보려는 시도라고 말했다.

 

 

 

이어 칠곡 여성들의 삶은 작은 지역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오래 놓쳐왔던 존재의 기록이라며 누군가의 평범한 하루 안에도 충분히 깊은 예술의 시간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국제 협업 구조 역시 눈길을 끈다. 몽골 Blue Sun Contemporary Art Center와의 협력, 그리고 김환기·Banksy·Nomin Bold 등의 작업 세계를 참조 지점으로

 

연결하는 방식은 지역 예술이 더 이상 지역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초대 작가로는 강성애, 김선경, 김재경, 김점희,

 

김종희, 배현숙, 정원찬 등이 함께한다. 이들은 회화·설치·사진·서사적 이미지 작업 등 서로 다른 예술 언어를 통해 지역 여성들의 삶과 기억, 노동과 시간의 흔적을 각자의 방식으로 풀어낸다.

 

 

 

특히 이번 전시는 개별 작품을 단순히 나열하는 방식이 아니라 서로 다른 작가들의 감각이 하나의 흐름처럼 연결되며, 가산산성이 품고 있는 장소의 시간과 현재의 삶을 함께 드러내는 구조로 구성된다.

 

 

 

무엇보다 이번 전시는 빠른 속도와 경쟁에 지친 오늘의 사람들에게 조용한 질문을 남긴다. 우리는 흔히 세계적인 예술이 거대한 도시와 유명 미술관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때로는 가장 오래 침묵했던 장소에서 가장 깊은 질문이 시작되기도 한다.

 

 

 

가산산성 아래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결국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지금까지 누구의 삶을 기억하며 살아왔는가.

 

 

 

그리고 너무 평범해서 오래 바라보지 못했던 삶들 안에도 얼마나 깊은 시간과 아름다움이 숨어 있었는가.

 

 

 

전시 정보

 

 

 

2026 경상북도·경북문화재단 전시발간지원사업

전시명 : 존재와 감각의 축제 : 일곱 공주들

기간 : 2026612~ 73

1: 612~ 22

2: 624~ 73

장소 : 칠곡문화예술위원회 복합문화공간 SAN55

주최·주관 : 경북문화재단 · 칠곡문화예술위원회

후원 : 경상북도

문의 : 010-6433-3131

 

 

 

영상

수니와 일곱 공주들 하이라이트

https://videopress.com/v/lrTOF0r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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