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국회초대전 작가를 만나다 (32)] 소멸을 바라는 현대인에게 ‘흙 속’이 건네는 아늑한 위로, 김희경 작가

입력 2026년06월16일 15시11분 은형일 조회수 358

- 고려 수막새와 신라 기마토우, 현대적 심리 서사와 회복의 신화로 부활하다
- 미술치료학 기반의 깊은 내면 통찰… ‘흙 속’이라는 원시적 치유 공간의 발견
- 출품작 정밀 분석: 사진과 회화의 경계를 허무는 격조 높은 예술적 변주

[한국사진방송=은형일 기자] 오랜 침묵의 시간 동안 대지의 깊은 품에 안겨 있다가, 마침내 세상 밖으로 나와 해학적이면서도 익살스러운 인사를 건네는 고귀한 존재들이 있다.

 

2026년 대한민국국회문화예술초대전의 32번째 초대 작가로 선정된 김희경 작가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김희경 작가

김 작가는 이번 국회초대전에서 ‘흙속에 묻는다는 것’이라는 심오하면서도 따뜻한 대주제를 통해, 상처받고 지친 현대인들의 내면을 포근하게 보듬는 격조 높은 치유의 미학을 선보인다.

 

김희경 작가는 한양대학교 융합산업대학원 미술치료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지난 2015년부터 한국교육심리협회 대표를 맡아 인간의 내면 심리와 자아의 회복 과정을 끊임없이 탐구해 온 심리·예술 전문가다.

 

이러한 그의 독보적인 인문학적·심리학적 배경은 문화예술계에서도 높이 평가받아 2025년 (사)한국미술협회(KFAA) 우수 작가 유공 표창에 이어, 2026년에는 (사)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FACO) 표창을 연이어 수상하며 중견 작가로서의 확고한 예술적 입지를 굳혔다.

 

김 작가가 이번 전시에서 집중한 ‘흙속’이라는 공간은 소멸과 생성이 분리되지 않고 공존하는 층위이자, 자아가 해체되고 재조립되는 가장 아늑하고도 안전한 원시적 시공간이다.

 

현대 사회 속에서 무수한 관계와 환상에 지쳐, 프로이트가 언급한 ‘타나토스(죽음 충동)’처럼 흔적 없이 소멸하고 싶어 하는 인간의 심리를 작가는 날카로우면서도 한없이 온정적인 시선으로 포착해 낸다.

 

작가에게 스스로를 흙 속에 묻는 행위는 영원한 사라짐이 아니라, 가장자리로 돌아가 고요와 침묵 속에서 다시 존재 에너지를 축적하겠다는 가장 강력한 ‘생의 의지’이자 내밀한 밀도를 채우려는 실존적 몸짓이다.


이번 국회초대전에 출품된 4점의 연작들은 역사적 유물들과 대지의 생명력이라는 모티브를 사진과 회화의 경계를 넘나드는 정밀한 시각 언어로 구현해 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고려시대 ‘짐승 무늬 수막새(용안와 사래 기와)’의 얼굴을 한 호랑이 도상은 한국 신화 속 세계의 시작과 생명 탄생을 대변한다. 용의 수염과 닮은 태초의 식물 에너지인 ‘고사리’ 문양, 그리고 생명의 근원인 바다를 품은 ‘여의주’가 화면 곳곳에 등장하며 신비로움을 더한다.

 

또한, 무덤 내부의 주인공에게 안식과 평안을 주고 안과 밖의 경계를 지키던 신라시대 국보 제91호 ‘기마인물형토기(기마토우)’는 영성적인 수문장의 역할로 스며들어 있다.


작품들을 정밀 분석해 보면 그 예술적 깊이가 더욱 도드라진다. 화면을 지배하는 거대한 푸른 잎사귀들과 유기적인 동심원적 파동은 흙 속에서 서서히 응축되는 밀도 높은 에너지를 시각화한다.

 

특히 비어 있는 듯하면서도 강렬한 붉은 선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기마토우의 흰 실루엣은 자아가 해체되고 재조립되는 치유의 여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여기에 흙 속에서도 눈에 보이지 않게 끊임없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지하화(코멜리나 벵갈렌시스)’의 모티브가 푸른 대지 위 보랏빛 알갱이와 유연한 곡선으로 패턴화되어 흐른다.

 

이에 가장 깊은 정지 상태처럼 보이는 순간에도 생명은 끊임없이 움트고 있다는 시각적 증거다. 마침내 흙의 오랜 침묵을 깨고 세상 밖으로 고개를 내민 호랑이 수막새는 고고학자들의 엄숙하고 엄격한 정의를 사뿐히 뛰어넘어, 현대인들에게 생동감 가득한 익살스러운 위로의 인사를 건넨다.

 

수면 위로 힘차게 날아오르는 백색의 기마토우는 비로소 내부의 에너지를 가득 채우고 새로운 세계와 실존적 관계를 맺기 위해 비상하는 존재의 순환을 극적으로 완성한다.

 

김희경 작가는 “우리 대부분은 긴 삶의 여정 속에서 어렵고 지치고 의미 없다 여겨지는 순간들을 지나게 된다”라며, “흙속은 삶의 순환 속 한 지점일 뿐이며, 잘 살아지지도 그렇다고 죽어 있지도 않은 순간에 누구에게도 침범당하지 않고 고요히 머물며 다시 나아갈 힘을 얻는 가장 생명력 가득한 곳”이라고 작업 소회를 밝혔다.

 

미술치료적 통찰력으로 대지의 치유 에너지를 짙게 녹여내어 사진의 예술적 품격을 한 차원 높인 김희경 작가.

 

삶의 속도를 줄이고 스스로의 내면 밀도를 채우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그의 이번 국회초대전 작품들은 가슴 깊은 울림과 가장 안전하고 따뜻한 예술적 안식처를 선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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