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 질감 위에 펼쳐진 명산의 푸른 절경
임채욱 아티스트의 ‘Blue MountainⅡ’ 사진전
‘갤러리 서촌재’ 2026.7.5.까지 앵콜전시 연장
서촌(西村)은 인왕산 동쪽과 경복궁 사이에 있는 청운효자동과 사직동 일부지역을 지칭하는데 경복궁, 창덕궁, 경희궁 등 궁궐이나 육조거리의 관아에 가까이 위치해 있어 조선시대 이후 중인들의 문학예술활동이 특히 활발했다. 수많은 명필을 남긴 추사 김정희와 수성동 계곡을 그림으로 남긴 겸재 정선이 이곳에 거주하였고, 송강 정철이 여기서 태어나 불후의 명작을 남겼다. 또, 이상범, 이상, 구본웅, 이중섭, 윤동주, 박노수, 노천명, 이광수, 천경자 등도 이곳에 거주하면서 문화예술의 혼을 이어갔다. 현재 600여 채의 한옥과 옛 골목들이 현대와 공존하고 있는 서울의 명소이다.
서촌 골목길을 거닐다 보면 1960-70년대 서울의 모습을 담고 있는 재래시장, 오래된 가옥들을 볼 수 있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한옥밀집지역에서 옛 정취를 느낄 수 있고, 경치좋은 계곡을 도심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최근 미래유산으로 지정된 건물이 갤러리 또는 휴식공간으로 재탄생되었고 통의동 주변에는 다양한 갤러리 및 공방이 자리잡고 있다. 또한 옥인동 일대를 중심으로 각종 이색 상점과 음식점 그리고 독특한 카페까지 아기자기하게 들어서 있다.
서촌 가는 길은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2번 출구로 나가면 된다. 이곳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우리은행 건물이 있는 좌측 삼거리를 만날 수 있다. 이곳에서부터 수성동 계곡에 이르는 거리가 서촌의 메인 도로이다. 서촌 메인도로 주변의 주요 명소로는 천재시인 이상의 집-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인 대오서점-세종마루 및 통인시장-박노수미술관-윤동주하숙집-갤러리 서촌재-수성동계곡 등이 있다.
이중 윤동주 하숙집터 바로 위에 위치한 '갤러리 서촌재'는 자칭 '아주 작은 갤러리'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실내에 들어가 보면 아기자기한 한옥분위기에 압도된다. ‘서촌재’ 한옥 자체가 예술품이다. 전시작품을 감상하고 차라도 마시다보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른다.
'갤러리 서촌재'의 전체 평수는 약 13평 정도. 정문 돌계단을 오르면 좌측에 메인 갤러리가 있고 우측에는 별도로 '골방' 형태의 더 작은 갤러리가 있다. 1평 내외 정도의 넓이. 김남진 갤러리 관장은 이 방을 '손뼘갤러리' 또는 '손바닥갤러리'로도 부른다고 소개한다. 여행을 즐겨하는 필자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예배당',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화장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작은 섬영화관’ 등으로 세상 구석구석의 특징적인 명소를 소개한 적이 있다. 갤러리 서촌재의 '손뼘 갤러리'를 보고 문득 또 다른 이름을 붙이고 싶어졌다. ‘손뼘갤러리’도 정말 예쁜 이름이지만 추가로 '세상에서 가장 작은 갤러리'라고 소개하면 어떨까?
필자가 방문한 최근에는 산악사진가로 유명한 임채욱 아티스트의 '청산에 가시려거든 Blue MountainⅡ'라는 제목의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었다. 전시기간은 26.6.5-7.5일까지 앵콜전시 연장. 임채욱 작가는 서울대 미술대학 동양화과를 졸업한 화가로, 사진이라는 매개체를 자신의 예술적 표현수단으로 활용하는 아티스트다.
홍콩개인전 3회 등 국내외 개인전을 26회나 개최한 바 있는 유명작가다. 국립현대미술관, 국회의장실, 그랜드하얏트호텔 등 국내외 유명 갤러리 및 공공기관, 금융기관, 호텔 등에 그의 작품이 다수 소장비치되어 있다.
마침 임채욱 아티스트도 와서 작가로부터 작품배경 및 작가의 의도 등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임채욱 아티스트는 산 관련 작품을 주로 찍는 이유에 대해 "산을 주제로 작품활동을 이어오고 있기는 하지만 산을 풍경사진으로 찍는 건 아니다"라고 말한다. '산이 지닌 역사성과 깊은 정서'를 중히 여긴다고 말한다. 일예로 그는 '대둔산' 단행본 도록도 낸 적이 있는데, 이 책에서 그는 대둔산의 풍경 자체보다는 '동학농민혁명'의 역사성과 의미를 많이 다뤘다고 설명한다. 그는 또 산 작품들을 자신이 직접 개발한 한지에 인화했다고 한다. "사진인데 사진처럼 보이지않는 매력 때문"이라고 말한다. "사진은 표면으로만 존재하는 이미지이지만, 한지와 결합하면 작품이 한지에 스며들어 투시하지않고 은은하게 보여진다. 그림이 그릴 수 없는 디테일이 있고, 사진이 표현할 수 없는 깊이가 있다. 한지의 질감이 만들어낸 산의 어떤 기운을 느끼게 한다. 한지는 사진 같은 표면이 아닌 깊이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작품 한점 한점이 모두 감동적이다. 감탄사가 저절로 나온다.
임채욱 아티스트는 작가메모 ‘청산으로 가는 길’에서 “(전략)//무거운 배낭에 짓눌려/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굽이마다/우리네 팍팍했던 삶의 고개가 겹쳐 오지만/성큼 또 한 고개 너머로 묵묵히 걸음을 던져두면/어느새 쪽빛 능선이 내어주는 서늘한 바람결에/어깨를 누르던 무거운 삶의 향기도 씻겨 내려간다//백여 리 기나긴 산줄기를 제 발로 딛고 넘어선다는 것/그것은 발아래 굽이치는 구름의 바다를 건너며/비워진 가슴속에 가장 맑고 고요한 우주를 채우는 일이다//어스름을 뚫고 천왕봉에 서서/맞이하는 붉은 새벽 앞에서는/스스로 견뎌낸 그 모든 땀방울이/눈부시게 빛난다//(후략)”라고 읊는다.
지리산은 물론, 덕유산, 설악산, 무등산, 대둔산, 북한산, 낙산 등 우리나라 대표적 명산들의 장엄한 산그리메와 환상적인 운해의 결정적 순간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무거운 배낭과 카메라 및 삼각대를 메고 수없이 고산능선을 오르내렸을 임채욱 작가의 피땀어린 열정에 찬사를 넘어 경외심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글,사진/임윤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