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에 와서 얻은 것은 사진보다 역사 지식이다. 카메라 들고 갔는데, 돌아올 때는 세계사 한 권을 머리에 이고 왔다."
몽골 초원은 참 이상한 곳이다.
겉으로 보기엔 양들이 풀 뜯고 바람만 몰려다닌다.
그런데 땅을 조금만 파 보면 역사책이 튀어나온다.
올란곤. '붉은 고원'이다.
처음엔 석양이 예뻐서 붉은 줄 알았다.
아니었다. 피였다.
1950년, 소련군이 막사를 짓다가 우연히 이곳을 파헤쳤다.
그런데 뼈가...
한두 구가 아니었다.
수많은 인골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그것도 하나같이 칼에 맞아 죽은 흔적이었다.
고고학자들은 말한다.
이들은 초원의 옛 지배자였던 돌궐 사람들이고,
그들을 학살한 자들은 동쪽에서 등장한 흉노였다고.
흉노는 승리하면 끝이 아니었다. 흉포한 습성으로 적의 목을 베고, 흘러내리는 피를 자기들의 깃발에 뿌렸다.
'우리는 하늘의 아들이다.'
피로 도장을 찍는 것이 습성이었다.
요즘으로 치면 우승 세리머니인데, 너무 과했다. 칭기스칸에게도 그 습성이 유전된 것이 분명하다. 그 시절이 아니었기에 망정이지
'아... 이 사람들 앞에서 누드 촬영 허가를 받았으면 큰일 날 뻔했구나.'
이들은 전쟁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놀기도 잘했다.
1년에 세 번씩 전 국민(?)이 모였다.
겨울.
봄.
가을.
요즘으로 치면 국가축제다.
그런데 먹고 마시는 것만이 아니었다.
국가의 중요한 일을 모두 여기서 결정했다.
회의도 하고,
제사도 지내고,
축제도 하고,
신내림도 받고.
정치, 종교, 축제를 한 번에 해결했다.
이 전통은 훗날 몽골 제국의 '쿠릴타이'로 이어진다.
칭기스칸도 여기서 황제가 되었으니,
초원의 국회이자 청와대이자 무당집이었다.
제사의 중심에는 거대한 신단수가 있었다.
요즈음 말로는 왕따 나무이고 당시의 말로는 외로은 버드나무거나 또는 세계수.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인터넷 케이블 같은 존재였다.
우리 신라 금관에 솟아 있는 나뭇가지 모양도 바로 이 세계수를 상징한다고 보는 학자들이 있다. '신라 지배층도 북방 유목민과 연결되어 있는 것 아니냐.' 가 정설로 굳어지고 있다.
역사는 참 묘하다.
몽골 초원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경주 금관까지 이어진다.
나는 누드 촬영하러 몽골에 왔는데,
정신 차려 보니 세계사 강의를 듣고 있었다.
그런데...
더 무서운 의식이 있었다.
흉노의 샤먼들은 '아레스 피의 제사'를 올렸다.
통나무를 높이 쌓아 제단을 만들고,
맨 위에 칼을 꽂는다.
그 칼 앞에 말과 가축을 바친다.
전쟁에서 잡아온 포로도 바쳤다.
그렇게 신에게 바쳐지는 제물을 '희생'이라 불렀다.
우리가 지금도 아무렇지 않게 쓰는 말. "희생됐다."
그 단어가 여기서 시작되었다니, 갑자기 말의 무게가 달라졌다.
의식은 더욱 섬뜩하다.
우두머리 샤먼이 희생의 머리에 술을 붓는다.
그리고 목을 베어 피를 받아든다.
그리고 제단 위 칼에 그 피를 붓는다.
그 아래에서는 다른 샤먼들이 희생의 팔을 잘라 하늘로 던진다.
그 제단 위에 꽂혀 있던 칼.
바로 훗날 오르도스 청동검이라 불리는 유명한 검의 원형이라고 한다.
역사는 참 잔인하다.
박물관에 유리 진열장 안에서 반짝이는 칼도,
처음에는 피 냄새가 진동하는 제사의 한복판에 서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이 피의 의식이 세월을 건너 우리나라 굿판에도 유전되었다는 점이다.
무당이 삼지창에 돼지머리나 소머리를 꽂아 세우는 의식.
"사슬 세운다."
또는
"솟을 세운다." 라고 부른다.
여기서 '사슬'은 쇠사슬이 아니다.
그 시대 사람들과 몽골사람들은 사츨리(Sachuli)라고 했는데 그것이 우리 말 솟으로 전이된 것이다. 사실 몽골 말과 우리말은 어순이 같고 같은 단어가 많아 몽골사람들은 우리말을 잘한다. http://blog.naver.com/kimjajoong/220860464405
초원의 바람은 사라졌다.
제국도 사라졌다.
흉노도,
돌궐도,
칭기스칸도 모두 흙이 되었다.
그런데 말 한마디는 아직도 살아 남았다.
그리고 굿판의 삼지창 위 에서....
우리는 2천 년 전 초원의 그림자를 아무것도 모른 채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역사는 늘 그렇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는데,
유전된 말들은 우리보다 오래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