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차...
첫잔은 그냥 마시면 안된다.
손가락에 술을 콕 찍어 이마를 탁! 튕긴다.
그리고 탱그리를 향하여...
"이번 일 꼭 되게 해 주소서어어어!!!"
거의 울부짖다시피 외쳐야 된다. 이 부분은 다시카의 목소리에 맡기면 압권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고시레 비슷한 의식인데... 이 사람들은 그걸 농담으로 안한다.
조금이라도 건성으로 했다간 하늘에서
"야... 너 다시."
하고 반품시킬 것 같은 분위기다.
그 다음은 술병을 들고 자동차를 한바퀴 돈다.
앞바퀴...
뒷바퀴...
또 앞바퀴...
술을 골고루 뿌려준다.
차가 술을 먹는건지...
탱그리가 먹는건지...
나도 잘 모른다.
하지만 이런건 이유를 묻는 순간 효력이 떨어지는 법이다.
그냥 한다.
무조건 한다.
세상엔 이해해서 하는 일보다
모르고 하는 일이 훨씬 잘되는 경우가 많다.
북을 치는 것도 아니다.
징을 치는 것도 아니다.
무당이 허공을 날아다니는 것도 아니다.
그냥 술 조금 뿌리고
이마 한번 튕겼을 뿐인데...
그들이 보여준 진지함은
국무회의보다 무거웠고,
유언장 쓰는 사람보다 절실했다.
그 엄숙함이 사람을 전염시킨다.
나도 어느새
'그래... 이번 촬영은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괜히 가슴속에서 뭔가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안주는 없었다.
술은 미친듯이 독했다.
목구멍으로 들어가는게 아니라
식도를 칼로 긁으며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희한하게 뒤끝은 없다.
몽골술은 사람을 죽일 듯 패놓고
다음날은
"우리 그런 사이 아니잖아."
하며 모르는 척한다.
밤하늘은...
와...
별이 아니라 못을 박아놓은 줄 알았다.
북두칠성은 손만 뻗으면 잡힐 것 같고,
북극성은 거의 정수리 위에서
"야... 여기다." 하며 깜빡거린다.
서울에서는 내 방 창문만 열면 삼각산 보현봉 위에서 북극성이 반짝인다.
그런데 여기서는...
고개를 드는 정도가 아니다.
목이 빠질 만큼 뒤로 젖혀야 한다.
북쪽으로 오긴 온 모양이다.
사실 비행기로 세시간인데...
기분은 거의 달나라다.
멀리 울란바토르의 불빛이 흐릿하게 흔들리고,
헤드라이트를 켠 차들이 한밤중에도 줄줄이 이 성산을 올라온다.
아...
이 사람들...
진심이구나.
산을 신으로 대하는 민족이었다.
우리도 그 정상에서
탱그리에게 정중하게 허락을 구했다.
"누드촬영 좀 하겠습니다."
생각해보니 인류 역사상
신에게 누드촬영 허가를 신청한 인간은
우리가 거의 최초 아닐까 싶다.
하여튼 허락은 받은 걸로 믿었다.
그래서...
"됐다."
"이제 아무 일 없다."
룰루랄라 산을 내려왔다.
...
그게 시작이었다.
탱그리는 분명 허락을 해주셨는데...
중간 전달자가 문제였던 모양이다.
내 기도가 하늘에 올라가는 과정에서
통역이 잘못됐는지,
팩스가 찢어졌는지,
아니면 천사가 졸았는지...
결과는 상상 이상이었다.
몽골 신문들이 난리가 났다.
한두 군데가 아니다.
거의 전국 릴레이 연재소설 수준이었다.
없는 이야기는 만들고,
있는 이야기는 열 배로 부풀리고,
없는 장면도 상상해서 그려 넣었다.
내가 누드를 찍으러 간 건지,
몽골을 정복하러 간 건지,
읽다 보면 나도 헷갈릴 정도였다.
결국 한 달 가까이 나라가 시끄러웠다.
국민감정이 들끓고,
사건은 점점 이상한 방향으로 번졌고,
나는 순식간에 국제적 민폐인간이 되어 있었다.
대한민국 정부에도 미안했고,
국민들에게도 미안했고,
무엇보다 우리 어머니가 신문을 안 봤기를 간절히 빌었다.
그렇다고 이걸 탱그리 탓으로 돌릴 생각은 없다.
신은 허락만 해주지,
신문 편집까지 해주지는 않으니까.
하지만 한 가지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 혹한의 막북 초원에서
목숨을 걸고 옷을 벗었던 이유는 단 하나였다.
예술.
딱 그것뿐이었다.
만약 그 순간,
예술 말고 다른 잡생각을 단 0.1그램이라도 품었다면...
나는 아마 얼어 죽기 전에
탱그리한테 먼저 벼락 맞아 재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니 이 사건의 결론은 하나다.
나는 죄가 없다는 말이 아니다.
다만...
예술은 무죄였다.
그리고 나는,
그 무죄를 증명하려다
유죄보다 더 크게 유명해졌다. 몽골에서
“예술을 하겠다고 몽골까지 와서 옷을 벗었더니, 예술사는 아무 말이 없는데 신문사들이 먼저 감동을 받았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데 나는 살아서 몽골 신문 1면을 남겼다."
"예술은 국경이 없다더니, 내 사고도 국경을 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