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노에서는 선우의 여자들을 연지라고 불렀다. 요즘 말로 하면 왕비이자 후궁이자, 왕실 드라마의 시청률을 책임지는 주연 배우들이다.
두만 선우는 어쩌다 만난 연지에게서 늦둥이 아들을 하나 얻더니 정신줄까지 같이 얻어맞았다. "태자는 묵돌? 아니지! 우리 연지가 눈에 넣어도 안 아프니 그 새끼가 최고지!" 하며 대국민(?) 왕위 교체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방법도 참 기가 막혔다.
"큰아들 묵돌은 월지에 인질로 보내자."
여기까지는 외교였다.
그런데 속셈은 따로 있었다.
"월지왕이 알아서 죽여주겠지."
이게 바로 고대판 청부살인 외주 시스템이다.
하지만 세상은 늘 계획대로 안 된다.
묵돌은 죽기는커녕, 온갖 고생을 다 하고 살아 돌아왔다. 초원을 구르며 돌아온 그를 보자 두만은 속으로 외쳤을 것이다.
"아니... 귀신은 뭐했나 모르겠네, 이게 살아오네?“
묵돌은 그날부터 효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물론 효도의 '효'가 아니라 효율의 '효'였다.
그는 인류 최초의 '단체 세뇌 리모컨'을 발명한다. 여기서 세뇌는 쇠뇌로 발음해도 무방하다.
바로 명적(鳴鏑). 이 기막힌 발명품 소리 내는 화살촉은 러시아의 역사 박물관에 가면 볼 수 있다.
화살촉에 구멍을 뚫어 휘익~ 소리가 나면 모두가 그 방향으로 화살을 쏘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오늘날로 치면 "좋아요 누르면 무조건 따라가기 챌린지"의 원조다.
처음에는 묵돌이 새를 쏘았다.
부하들이 일제히 소리나는 화살을 따라 다 같이 쏜다.
사슴을 쏜다.
다 같이 쏜다.
멧돼지를 쏜다.
다 같이 쏜다.
그러더니 어느 날...
자기 애마에게 명적을 날렸다.
부하들은 멍했다.
"천하의 명마인데...?"
잠깐 망설인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목이 날아갔다.
충신들이 먼저 사라졌다.
생각 있는 사람들이 먼저 없어졌다.
의리 있는 사람들도 줄줄이 퇴장했다.
초원에는 순식간에 "예!"만 외치는 자동응답기 인간들만 남았다. 아이큐는 겨우 김가중 수준이다.
이번에는 가장 아끼던 애첩에게 명적을 날렸다.
"설마..."
망설인 자들은 역시 역사책에서 영원히 삭제됐다. 지능이 김가중 이하 생각이 아예 없는 자들만 살아 남았다. 결국 살아남은 사람들은 무엇이든 날아가면 같이 날리는 인간 드론 부대뿐이었다. 이쯤 되면 군대가 아니라 초원의 복사 .붙여넣기. 공장이다.
드디어 결전의 날.
사냥터에서 두만 선우가 사슴을 찾으며 폼을 잡고 있었다.
묵돌이 명적을 꺼냈다.
부하들은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생각하는 사람은 이미 며칠 전에 다 사라졌기 때문이다.
휘이익──.
명적은 아버지를 향해 날아갔다.
잠시 뒤,
하늘은 메뚜기 떼가 아니라 화살 떼로 뒤덮였다.
두만은 역사상 가장 빠른 정년퇴직을 당했다.
묵돌은 말에서 내려 슬퍼하는 척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엎드린 고슴도치 한 마리를 힐끗 바라보며 지나갔다는 전설만 남겼다.
그리고 곧바로 선우 즉위식. 약식에 벼락치기였다. 박수부대 약간만 동원하였다.
참석자는 모두 박수쳤다. 안 치면 다음 명적의 목적지가 자기였기 때문이다.
즉위하자마자 묵돌은 아버지의 연지들을 자신의 후궁으로 맞아들였다.
현대인의 눈으로는 충격이지만, 당시 초원의 풍습이었다고 전해진다.
역사는 가끔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고, 드라마는 역사를 따라오지 못한다.
기원전 210년.
새로 즉위한 묵돌을 보며 동방의 강자 동호 사람들은 배꼽이 빠지고 말았다. 조정이 단체로 포복절도를 하였기 때문이다. 동호는 중국측 역사고 사실 단군할배의 후손들이 다스리는 고조선이었다.
"저 풋내기? 우리가 가지고 놀다 제자리에 갖다 두자. 우리의 서쪽 방패막이로"
그러나 초원의 법칙은 늘 같았다.
사자를 고양이로 착각하는 순간, 저녁 메뉴가 바뀐다.
동호는 곧 깨닫게 된다.
자신들이 갖고 논 것이 아니라,
역사가 자신들을 갖고 놀았다는 사실을. 무슨 일이라도 그렇다. 그들이 묵돌을 가지고 놀지 않고 처음부터 아예 짖밟아 버렸다면 역사가 달라졌을 것이다.
사실 동호는 그 이상 파워가 막강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