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예술을 입히다. 金嘉中 누드 철학

입력 2026년07월24일 09시08분 김가중 조회수 185

여후, 그녀는 권력을 먹고 자라난 짐승이었다


유방이 죽고 마음이 유약한 혜제가 황위에 오르자, 천하는 황제의 것이 아니라 여후의 것이 되었다. 황제는 옥새를 쥐고 있었고, 여후는 사람들의 목숨을 쥐고 있었다. 권력이란 결국 칼을 가진 자가 아니라, 공포를 설계하는 자의 것이었다.

 

여후는 먼저 유방이 총애했던 아름다운 척부인(척희)을 선택했다. 그것은 복수가 아니라 "이제 천하의 태양은 나다." 란 선언이었다. 그리고 인간의 존엄을 한 꺼풀씩 벗겨내는 권력의 퍼포먼스를 시작했다.

 

먼저 손과 발을 잘랐다. 그러나 죽이지는 않았다. 죽음은 너무 짧다. 권력은 죽음보다 질긴 고통을 사랑한다. 그녀는 상처를 정성껏 치료했다. 마치 연놀부가 제 손으로 부러뜨린 제비 다리를 제 손으로 고쳐 주듯, 피를 닦고 약을 발랐다. 악마도 때로는 테레사 같은 간호사의 얼굴로 찾아온다.

 

상처가 아물자 이번에는 눈을 도려냈다. 아름다움을 빼앗으면 인간은 세상을 잃는다. 다시 상처가 아물기를 기다렸다가 혀를 뽑았다. 말을 빼앗으면 인간은 자신을 잃는다.

 

여후는 서두르지 않았다. 그녀는 고문보다 시간을 더 잔인한 형벌로 사용했다. 상처가 아물기를 기다리는 그 인내야말로 가장 무서운 폭력이었다.

 

마침내 옷마저 벗겨 돼지우리 오물 속에 던져 넣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그녀를 '인간돼지'라고 부르게 했다. 이때부터 척부인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니었다. 이름을 잃는 순간, 인간은 두 번째로 죽는다.

 

어느 날 여후는 아들 혜제를 불렀다.

"저 돼지가 누구인지 아느냐?"

혜제는 끝내 알아보지 못했다. 아니 알아볼 수 없었다. 그는 인간이 저 정도까지 무너질 수 있다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자 여후는 마치 4시간 짜리 특별강연을 마련하여, 차근차근 저 고깃덩어리가 한때 아버지 유방이 가장 사랑했던 척부인임을 학습시켰다.

범생이였던 혜제에게 이 학습의 효과는 만점이었다.

 

", 이것은 사람이 할 짓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제 어머니입니다."

그날 병든 것은 혜제의 몸이 아니라 한나라의 양심이었다. 그는 충격으로 국정을 돌보지 못했고, 권력은 온전히 여후의 손안으로 흘러들어 갔고 그 위대함을 맛본 그녀는 얼마 지나지 않아 기어이 혜제마저 역사 속으로 밀어넣고 말았다. 기록은 병사(病死)라 적고, 권력은 침묵했다. 침묵은 언제나 가장 충성스러운 공범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 대목을 잔혹사로 읽는다.

그러나 사진가인 나는 조금 다른 질문을 던진다.

옷을 벗긴 순간, 여후는 과연 무엇을 벗긴 것일까.

사람들은 흔히 누드를 벌거벗은 육체라고 생각한다. 아니다.

누드는 옷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가식이 없는 상태다.

사진가인 나는 이 장면을 오래 바라본다.

 

사진은 빛으로 사람을 남기지만, 권력은 공포로 사람을 지운다.

여후는 척부인의 팔다리를 자른 것이 아니다. 그녀는 인간이라는 개념 자체를 해체했다. 그리고 아들 혜제에게 마지막 수업을 했다.

 

"권력이란 사랑도, 혈육도, 눈물도 넘어서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다른 답을 적었다.

권력은 오래 살아남을 수 있어도 공포는 오래 존경받지 못한다.

천하를 지배한 여후의 이름은 남았지만, 사람들이 기억하는 것은 그녀의 왕관이 아니라 돼지우리의 악취다.

 

결국 철학은 이것이다.

누드는 몸을 드러내는 예술이 아니라 존재를 드러내는 철학이다.

 

여후는 척부인의 옷을 벗겼지만, 실은 자신의 영혼을 먼저 발가벗겼다. 그녀의 육체는 비단으로 감싸여 있었지만, 그녀의 권력은 이미 벌거벗은 광기였다.

 

반대로 척부인은 모든 것을 잃었다. 아름다움도, 신분도, 말도, 시력도, 옷도 잃었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잃지 않은 것이 있었다.

 

그것은 인간이란 거창한 단어였다.

돼지우리에 던져졌어도 인간이었고, '인간돼지' 라는 모욕을 뒤집어써도 인간이었다. 인간의 존엄은 옷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누드는 몸을 벗기는 행위가 아니다.

거짓을 벗기는 행위다.

그래서 예술의 누드는 인간을 아름답게 만들지만, 권력의 누드는 인간을 파괴한다.

둘 다 옷은 벗긴다는 점에선 상통한다.

그러나 하나는 존엄을 드러내기 위해, 다른 하나는 존엄을 지우기 위해 벗긴다.

그 차이가 예술과 폭력을 가르는 경계다.

사진은 그 경계를 기록하는 예술이다.

나는 사람의 옷을 벗기려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이 평생 입고 살아온 허위와 위선, 권력과 허세를 벗겨 인간다운 인간의 진실을 만나려는 것이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누드의 철학이다.



















 

*** 작가의 자존을 높입니다.

한국사진방송은 개인뉴스홈 아이템 성공 수직성장. 현재 12000 예술가 일10, 동접 2000, 대한민국 대표 art platform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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