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마를 받아 간 동호는 또 배꼽이 빠지게 웃었다.
"하하하! 흉노 선우라더니 알고 보니 초원의 호구였구나."
웃다가 갈비뼈 하나쯤 금이 갔을 것이다.
그들은 회의를 열었다.
"다음엔 뭘 빼앗을까요?"
"활이요?"
"아닙니다."
"왕관이요?"
"그것도 아닙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드디어 어느 천재가 입을 열었다.
"선우의 연지를 달라고 합시다."
순간 회의장은 폭소의 도가니가 되었다.
"좋다!"
"그 여자까지 내놓으면 흉노는 끝이다.“
사실 연지는 단순한 여자가 아니었다.
왕비였고, 선우의 체면이었으며, 초원의 꽃이었다.
오늘날로 치면 영부인과 국가 브랜드와 국보 1호를 한 바구니에 담아 놓은 존재였다.
연지는 閼氏라고 쓰고 알씨라고 읽기도 한다. 신라의 첫 왕비도 閼英알영 이고, 칭키즈칸의 시작점이 알란고아 임도 우리와의 연관이 예사롭지 않다. 알은 북방민들이 황금을 뜻하는 말이고 모글리 족들은 귀족 부인의 칭호로 주로 사용하였다.
사신이 찾아왔다.
"우리 대왕께서 선우의 연지를 탐내십니다."
신하들은 들끓었다.
"이번에는 절대 안 됩니다!"
"차라리 전쟁을 하시옵소서."
"여자를 내주느니 죽는 것이 낫습니다."
회의는 세 시간째 계속되었다.
언성이 높아질수록 지혜는 낮아졌다.
입이 많을수록 나라는 작아졌다.
묵돌은 조용히 신하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피식 웃었다.
'옷만 입으면 다들 애국자가 되는구나.'
나는 이것을 누드철학이라고 부른다.
사람은 옷을 입으면 체면을 생각한다.
벗으면 본능을 생각한다.
권력도 마찬가지다.
왕관을 쓰면 자존심을 외치지만, 왕관을 벗기면 살아남을 계산부터 한다.
묵돌은 이미 그 계산을 끝낸 사람이었다.
"연지를 보내라."
회의장은 무덤이 되었다.
누군가는 기절했고,
누군가는 충격으로 수염이 한 뼘은 더 자랐으며,
누군가는 나라가 망했다고 통곡했다.
그러나 묵돌은 속으로 웃고 있었다.
'천리마를 가져간 놈은 말을 얻었고,
연지를 가져간 놈은 여자를 얻었다.
하지만 나는 시간을 얻는다.'
초원에서 가장 비싼 것은 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니었다.
시간이었다.
시간은 군대를 키웠고,
시간은 활을 만들었고,
시간은 겁쟁이를 늑대로 바꾸었다.
동호는 승리했다고 술판을 벌였다.
소를 잡고,
양을 잡고,
말까지 잡아먹으며 흉노를 비웃었다.
"묵돌은 사내도 아니다!"
그들은 그렇게 떠들었다.
그러나 역사는 참 잔인하다.
허세는 술안주가 되지만,
실력은 훗날 역사가 된다.
나는 누드사진을 찍으며 늘 같은 생각을 한다.
사람들은 옷을 벗는 것을 부끄러워한다.
그러나 진짜 부끄러운 것은 몸이 아니다.
욕심이다.
체면이다.
허세다.
그것들을 벗기면 황제도 벌거숭이이고,
선우도 벌거숭이이며,
나도 벌거숭이이다.
역사는 옷 입은 사람들이 기록했지만,
진실은 언제나 벌거벗은 채 웃고 있다.
동호는 연지를 얻었다고 환호했다.
묵돌은 웃음을 잃었다고 모두가 생각했다.
하지만 실은 그날,
웃음을 잃은 쪽은 동호였다.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초원의 바람이 방향을 바꾸고 있었다.
그리고 바람이 방향을 바꾸면,
초원에서는 왕도 바뀐다.
이제 부하들의 가슴에 동호에 대한 한이 피멍울처럼 맺히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