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의 피부같이 매끈한 방대한 초원,
정말이지 초원은 여자의 피부처럼 매끈했다. 그러나 속은 아니었다. 그곳은 수천 년 동안 칼과 화살이 흙을 갈아엎은 거대한 도마였다. 말들은 바람보다 먼저 달렸고, 화살은 새보다 먼저 날았으며, 영웅들은 역사책보다 먼저 죽었다.
세상은 이곳을 '초원'이라 부르지만, 나는 거대한 공동묘지의 잔디밭이라 부르고 싶다.
유목민은 주인이었고, 농경민은 침략자였으며, 다음 날이 되면 둘의 역할은 바뀌었다.
역사는 늘 승자의 기록이라지만, 초원에서는 승자도 패자도 모두 바람에 날리는 먼지였다.
나는 그 격전장을 헐떡이며 달리다가 비명을 지르며 잠에서 깨어났다.
창문을 여니 울란바토르는 보랏빛 스모그에 질식하고 있었다.
환경? 그건 아직 이 도시에선 내일의 이야기다. 겨울이 오면 사람들은 석탄을 태우고, 석탄은 도시를 태운다. 연기는 하늘로 오르지 못하고 땅바닥을 기어 다닌다. 회색도 아니다. 검정도 아니다. 마치 거대한 화가가 도시 전체에 보랏빛 물감을 들이부은 듯한 붉은 스모그가 짧은 겨울 햇살마저 삼켜 버린다. “붉은 영웅”이란 도시 이름과 걸맞기도 하다. 대낮인데도 환락가의 새벽 같은 묘한 조명이 도시를 감싼다.
21세기라는 간판을 달고 있지만, 이곳의 겨울은 아직도 19세기의 난로 앞에 앉아 있다. 사람들은 땅거죽에 드러난 갈탄을 긁어다 아궁이에 넣고 혹독한 추위를 견딘다. 첨단 스마트폰으로 결제를 하면서도 난방은 수억 년 전 숲이 남긴 석탄에 의지한다. 문명은 LTE인데 난로는 공룡시대다.
사실 우리도 불과 한 세기 전만 해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야산의 갈탄을 캐다 아궁이를 지피고, 연기가 굴뚝을 넘어 마을을 덮곤 했다. 인간은 생각보다 오래 석탄 냄새를 먹고 살아온 동물이다.
몽골에는 오래전부터 전해 오는 전설이 있다. 칭기스칸의 선조들이 철광맥으로 막힌 산을 넘기 위해 석탄에 불을 지피고, 일흔 마리 소가죽으로 만든 거대한 풀무를 돌려 산을 녹여 길을 열었다는 이야기다. 사실이든 신화든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몽골 사람들의 상상력조차 석탄과 철을 품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광활한 초원 아래에는 아직도 엄청난 석탄과 철, 구리와 희토류가 잠들어 있다. 세상은 몽골을 가난한 유목국가로 기억하지만, 땅속은 누구보다 부유하다. 옷은 낡았는데 주머니 속엔 금괴를 넣고 다니는 사내처럼 말이다.
나는 누드를 찍는 사진가다. 그래서 풍경도 먼저 옷을 벗겨 본다. 스모그를 벗기면 석탄이 보이고, 석탄을 벗기면 지질이 보이며, 지질을 벗기면 수억 년의 시간이 드러난다. 누드란 벗기는 것이 아니라 본질을 드러내는 일이다. 울란바토르의 보랏빛 하늘도 결국은 한 도시가 벗지 못한 가난의 속살이었다.
2천 년 전에는 말발굽이 흙먼지를 일으켰고, 오늘은 자동차가 매연을 일으킨다.
문명은 발전했는데 먼지는 업그레이드되었다.
방죽 아래 눈 덮인 버드나무 사이를 늑대 같은 들개인지, 들개 같은 늑대인지 알 수 없는 녀석들이 서성거린다.
곰곰이 보니 혹시 역사학자들 아닐까.
누가 먼저 침략했는지, 누가 먼저 맞았는지, 누가 정의인지 아직도 서로 물어뜯고 있으니 말이다.
그때 念이 호출한 마르코 폴로가 또 입을 연다.
마르코의 이야기는 당연히 곰팡냄새가 팡팡 나는 대원제국의 낡은 이야기다. 한 지방에는 놀라울 정도로 굵은 대나무가 자라는데, 밤에는 이 대나무들을 몇 개 가져다가 불에다 던져 넣는다. 그러면 그 대나무가 터지면서 굉장히 큰 폭음이 터지는데, 이 소리는 10키로 밖에서도 들릴 정도로 매우 크다. 어쩌면 서울 북한산 중턱의 우리집 까지 들렸는지도 모르겠다. 그 소리에 이끌려 여기까지 왔으니.....
아스라히 들려오는 북소리에 이끌려
나는 긴 여행을 떠났다.
낡은 외투를 걸치고,
모든 것을 버린채....
- 터키의 민요중에서
그 지방에는 호랑이, 곰, 늑대,이리등 사나운 맹수들이 많아 상인이나 여행자들을 많이 잡아 먹는데, 이 대나무의 폭음은 맹수들을 쫓는데 좋은역할을 한다.
또 이 지방에는 희한한 풍습이 있는데, 그것은 남자들이 숫처녀에게 장가들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닳고 닳은 경험이 많은 여자일수록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서 경험이 많은 여자를 아내로 얻으면 그것을 자랑으로 여긴다.
그곳은 미음이 강한자에겐 천 국 그 자체였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강과 70명의 아내를 신이 선사하는 그런 곳이었다.
어느 랍비가 아내를 얻었는데 정말 1개 사단병력이 지나간 여자였다. 풍부한 경험에서 우러난 기교는 랍비에게 진정한 천국을 맛보게 하였다. 해서 처음엔 주변의 친구들에게 자랑도 하고 아내의 그 현란한 기교를 증명해 보이기도 했다. 당연히 아내는 드러내 놓고 스파링 상대들을 바꾸어 가며 계속 기교를 더욱 수련하였다. 아내는 수련에 너무 열중한 나머지 남편에게 소홀하게 되었다.
아내가 수련을 하러 매일 밤마다 집을 나가버리자 랍비는 독수공방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신에게 기도를 올렸다.
“ 내 아내에게 다른 이의 그것이 더 이상 들어올 수 없게 해 주세요. 지금 정도가 딱 알맞습니다. 저의 마지막 소원이나이다.”
신의 목소리가 들렸다.
“걱정 말아라 내가 이 반지를 줄 터이니 너는 절대로 이 반지를 손가락에서 빼지 말도록 하거라”
랍비는 신에게 감사를 하며 기도를 마쳤다. 그리고 그것이 꿈이란 것을 금방 깨우쳤다. 잠에서 깬 그의 옆에 아내가 돌아와 곤히 잠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의 손가락은 아내의 질 속에 깊숙이 박혀 있었다.
다시 등장한 신은 웃으며 말했다.
"사람은 배우자를 묶는 것이 아니라자기 허영부터 묶어야 한다."
랍비는 그제야 깨달았다.
세상에서 가장 큰 구속은 반지가 아니라 자신의 허풍이라는 사실을.
이것이 김가중식 역사다.
사실은 한 줄인데, 허풍은 열 장이다.
직선으로 쓰면 역사책이 되고, 꽈배기로 꼬아 쓰면 예술이 된다.
사진도 그렇다.
남들이 선명하게 찍을 때 나는 일부러 흔든다.
남들이 복원할 때 나는 망가뜨린다.
남들이 정답을 찾을 때 나는 오답을 예술이라 우긴다.
세상은 그것을 실패라 부르지만, 나는 그것을 '역행론'이라 부른다.
일단 다르고 보자.
틀려도 재미있으면 반은 성공이다.
맞기까지 하면 그때는 이미 예술이 아니다.
창문 아래 길게 이어진 방죽 위로 간간히 두터운 누비옷 위로 황색의 따를 두른 전통복장의 몽골인들이 하얀 입김을 쏟아내며 걷고 있는 것이 내려다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