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초원에는 말보다 빠른 것이 세 가지 있었다.
소문.
욕망.
그리고 아내의 주인 바뀌는 속도.
쿠이티므르는 칭기스칸을 자므카(칭기스칸의 숙적)로부터 보호한 케레이트족의 나얀(귀족)이다. 후에 옹칸이 칭기스칸에게 패배하여 달아나자, 쿠이는 칭기스칸의 휘하에 들어온다. 그에겐 많은 부인들이 있었는데 유독 간볼라 부인만을 총애했다.
얼마 후, 옹칸의 아들 "셍쿤이 살아 있다!"는 뉴스가 초원방송에 조그맣게 실렸다.
그 뉴스 한 줄에 쿠이는 말에 올라탔다. 사랑하는 부인들에게는 "금방 다녀오겠다."라는, 인류 역사상 가장 믿지 말아야 할 거짓말을 남긴 채 초원으로 사라졌다.
쿠이가 떠나자 칭기스칸은
"주인 없는 게르에 말만 놀게 할 순 없지.“ 라며 쿠이의 부인들을 다른 장수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오늘날로 치면 인사발령이었다. 다만 당시 인사과장은 칭기스칸이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중에서도 한 여인은 유난히 인기가 높았고 장수들마다 그녀를 원했다. 간볼라였다.
간볼라는 콩코트종족의 틀운 헤르비에게 주었다.
그런데 희한한 일이 벌어진다.
헤르비 역시 수많은 부인이 있었지만 그 여인만 바라보는 것이다.
초원의 남자들은 활은 여러 개를 가져도, 마음은 하나만 꽂히는 모양이었다.
얼마 뒤 쿠이가 초원을 하염없이 헤매다 허탕만 치고 돌아왔다. 핸드폰이 없던 탓이었는지 아니면 생쿤이 유럽행 비행기를 탔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혼자 돌아온 쿠이는 옛 부인들을 원했다. 특히 간볼라를....
칭스가 헤르비에게 물었다.
"돌려줄 수 있겠느냐?"
헤르비는 속으로는 심장이 열두 토막 났지만 얼굴만큼은 몽골 평원처럼 평평하게 말했다.
"대칸께서 원하신다면 돌려드려야지요."
나는 이 장면을 읽으며 문득 깨달았다.
누드사진도 똑같다.
벗기는 기술보다 놓아주는 기술이 더 어렵다.
욕심은 셔터보다 빠르고,
집착은 광각렌즈보다 넓다.
칭스도 그것은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부인에게 칭스가 묻는다.
"도대체 너는 뭐가 다르기에 남자들이 모두 너만 좋아하느냐?"
그녀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몸은 여자마다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다른 것은 마음입니다."
참 허무한 대답이다.
- 라시드 앗딘의 부족지에서-
인간에겐 본능 외에 더 필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화이다.
수간도 그렇다. 요즈음 조사한 기록들 중에선 어디에도 그런 대목을 찾아내지 못했다. 하지만 옛날에 읽었던 어느 책에선 병사들은 양을 끌고 전쟁터로 나가는데, 도중에 배고프면 잡아먹기도 하고, 욕정이 일면 암양의 음부를 남성으로 틀어막고 배설한다고 쓰여있었다.
특히 칭기스칸의 예크 자사크에
-수간을 한자는 사형에 처한다- 는 법령을 선포한 것을 보면 그 말은 사실일 것 같다.
-- 이게 왜? 사람을 죽여야 되는 법이란 말인가? 사람은 죽이고 양은 살리고....
초원의 법은 참 단순했다.
말 훔치면 죽이고,
반역하면 죽이고,
법을 어겨도 죽이고.
빌어먹을 세상이다.
사람 죽이는 일은 왜 이렇게 간단한가.
김가중의 念 이론으로 보면 인간 하나가 태어나기까지는 우주가 셀 수도 없는 우연을 수없이 통과해야 한다.
별이 돌고,
시간이 돌고,
인연이 돌고,
정자 하나가 기적처럼 골인해야 겨우 인간 하나가 나온다.
그런데 죽이는 것은?
왕의 말 한마디.
칼 한 번.
참으로 장사는 쉽고 창조는 어렵다.
그래서 위대한 현자들은 틈만 나면 법을 만들었다.
여자와 어떤짓도 하지 마라, 여자 안에 이빨이 있어 네 고추를 물어뜯을테니까
-아파치 인디언-
모든 남자는 여자를 가까이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길이다. 음행의 위험에 빠질바에는 차라리 한 여자를 선택하여 결혼을 하라-
성 바울-
정욕이 불같이 타는 것보다 혼인하는 것이 나으니라
-고린도서 7장 9절 -
이 세상이 그로 인하여 파멸을 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이 일을 행해야 한다
-루터-
구멍은 다 똑같다. 그 구멍을 통하여 보이지는 않지만, 마음을 보고 여자를 골라라
-나의 어떤 선배-
인류는 지구촌 곳곳에서 수없이 많은 윤리와 법을 만들어 왔다. 위대한 현자와 지도자들은 인간 안의 야성을 길들이기 위해 쉼 없이 규범을 세웠다. 하지만 아무리 정교한 법과 윤리라는 제어장치를 만들어도, 그보다 더 오래되고 더 강렬한 것이 있다. 바로 본능이다. 법은 문명과 함께 태어났지만, 본능은 문명이 태어나기 훨씬 이전부터 인간의 피 속에 새겨져 있었다. 아득한 원시의 세계에서는 지금처럼 개인의 자유의지와 사회적 합의를 통해 후손을 남기기보다, 힘이 곧 권리였고 승리가 곧 번식의 기회였을 가능성이 크다. 약자는 빼앗겼고, 강자는 차지했다. 자연의 법칙은 윤리보다 냉혹했고, 법전보다 잔인했다.
그렇다면 정복 전쟁이란 무엇이었을까. 물론 굶주림 때문에 식량과 영토를 차지하려는 욕망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쩌면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승자의 혈통을 더 넓게 퍼뜨리려는 생물학적 본능, 자신의 유전자를 다음 세대로 이어가려는 원초적 본능 역시 역사의 보이지 않는 동력 가운데 하나였을지 모른다.
역사는 왕들이 명분으로 기록했지만, 자연은 언제나 본능으로 움직였다. 문명은 그 본능 위에 어렵사리 윤리라는 옷을 입혔을 뿐이다. 그럼에도 역사는 언제나 법전보다 전쟁터가 두꺼웠다.
나는 누드를 찍으며 늘 같은 생각을 한다.
사람들은 옷을 벗으면 모든 것이 드러난다고 믿는다.
천만의 말씀이다.
옷은 3초면 벗는다.
욕망은 평생 벗지 못한다.
권력은 죽을 때까지 벗지 못한다.
허영은 관 속에서도 벗지 못한다.
그래서 누드는 피부를 찍는 예술이 아니라 욕망의 지문을 촬영하는 일이다.
칭스는 세계를 정복했다.
나는 셔터 하나도 마음대로 정복하지 못했다.
그러나 누가 더 어려운 일을 하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칭기스칸(이 여행기를 통하여 그는 나의 친구가 되었다. 나는 이 괴상한 나의 친구에게 칭스란 이름을 붙여 주었다.)이 웃으며 다가왔다.
"김가중,
세계를 정복하는 것보다 여자 마음 한 장 찍는 게 더 어렵지?"
”빌어먹을 칭스! 너 나와 동시대에 아니 태어난 것을 행운으로 알아라, 같은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너는 내 발밑에 깨고락지 엎어지듯 엎어져 있을 것이 분명하다 홀랑벗고 말이다.“
젠장 이 소리는 나의 입에서 나온 소리는 아니다. 내 카메라가 셔터소리 대신 웅얼거린 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