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여

입력 2026년08월04일 14시28분 김가중 조회수 84


역사에 예술을 입히다. 金嘉中 누드 철학

형제여, 보드카를 부어라!

하하하하!

통째로 술잔을 비워라!

하하하하!

예쁜 여자는 모조리 천막 안으로 잡아들여라!

하하하!

형제여, 우리는 몽골들이니까!

하하하하!

 

한때 전 세계를 들썩이게 했던 팝송 칭기스칸의 한 대목이다.

그런데 한국의 어느 가수가 번안한 노래는 갑자기 영웅전이 되어 버렸다.

 

"나라 위해 몸을 바친 아름다운 이야기.“

"약한 자를 도우며 사랑했네.“

"슬픈 자에게 용기를 주었네.“

"내 마음속 영웅이었네."

 

세상에.

천막에서는 술통이 굴러다니고 있는데, 한국에 들어오는 순간 갑자기 새마을운동 모범청년이 되어 있었다. 보드카는 사라지고 우유를 마셨으며, 약탈은 봉사활동으로 번역되었고, 여자는 보호 대상이 되었으며, 초원의 정복자는 동네 청소년 선도위원장으로 승진했다.

 

번역이 아니라 창작이다.

그럼에도 이 노래는 금지곡이 되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국민은 웃으면 안 되었고,

역사는 점잖아야 했으며,

영웅은 반드시 도덕 교과서에 실려야 되는데 내 친구 칭스는 도덕 교과서와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폭군도 검열을 통과하면 성인이 되고, 농담도 심의를 통과하면 교훈이 된다.

 

한국은 이상한 나라였다.

현실은 마음껏 왜곡하면서, 노래 가사는 사실적이면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칼은 괜찮고 웃음은 위험했다.

전쟁은 교육이 되고, 풍자는 불온문서가 되었다.

 

참으로 신기한 재주다.

우리 사회에는 오래된 병이 하나 있다.

무슨 일만 생기면 "우리 공동체"를 외친다.

'우리' 속에는 늘 감시가 들어 있고, 눈치가 들어 있고, 줄 세우기가 들어 있고,

'모든 사람은 천편일률적으로 똑 같아야 되며 개인은 의무는 있되 권리는 없다' 라는

압력이 들어 있다.

튀면 미운 놈.

다르면 이상한 놈.

웃기면 불량한 놈.

비틀면 위험한 놈.

창의성은 입으로만 외치고, 현실에서는 복사기를 최고의 예술품으로 떠받든다.

 

더 웃기는 것은 서로 사랑하자는 구호보다 서로 미워하는 기술이 훨씬 발달했다는 사실이다.

남이 잘되면 분석부터 한다.

"수상하다."

 

남이 성공하면 연구한다.

"뒤가 있다."

 

남이 행복하면 걱정해 준다.

"곧 망할 거야."

 

이 정도면 질투가 아니라 국가무형문화유산이다.

몽골 기마병은 초원을 달리며 활을 쏘았지만, 우리는 인터넷을 달리며 댓글을 쏜다.

그들의 화살은 한 번 꽂히고 끝났지만, 우리의 악플은 자동재장전이다.

칭스는 세계를 정복하려 했지만, 우리는 옆집 사람 기분 망치는 데 훨씬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가끔은 이런 생각도 든다.

초원을 달리던 유목민보다 아파트 숲을 떠도는 현대인이 훨씬 더 서로를 사냥하며 살고있는 것은 아닐까.

 

결국 가장 무서운 것은 칼도 아니고, 칭스도 아니다.

'남들과 달라 보이는 사람을 견디지 못하는 마음.‘

 

 

역사에서 칭스만큼 욕도 많이 먹고 칭찬도 많이 받은 인간은 드물다. 어떤 이는 그를 인류 최대의 정복자라 하고, 어떤 이는 인류 최대의 민폐라 한다. 양쪽 말을 다 듣고 있노라면 칭스는 한 사람이 아니라 최소 33 명쯤 되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이번 몽골 여행에서 아예 칭스 피해 다니기로 제목을 정했다. 그 친구 이야기는 이미 전 세계 역사학자들이 수백 년 동안 우려먹었고, 유튜브에서도 하루가 멀다하고 부활시키고 있으니 내가 또 숟가락 얹기가 민망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름도 없는 조연들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역사책에서 "기타 등등"으로 처리된 사람들, 말꼬리 잡아주던 병사, 말똥 치우던 관리, 천막 못 박던 기술자, 술 따라주던 아저씨.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진짜 역사의 주인공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출발도 하기 전에 계획은 산산조각이 났다.

 

몽골에서는 고개만 돌리면 칭기스칸이었다.

산도 칭기스칸.

길도 칭기스칸.

맥주도 칭기스칸.

보드카도 칭기스칸.

공항에서도 칭기스칸.

기념품 가게에서도 칭기스칸.

심지어 내 머릿속에서도 칭기스칸.

 

'잠깐, 화장실만은 아니겠지?'

그런데 화장실 문을 열자 거울 속에 서 있는 내 얼굴마저 어딘가 칭기스칸을 닮아 보였다.

 

칭기스칸 이전의 몽골고원은 그저 '막북'이라 불리던 이름 없는 바람의 초원이었다고들 한다. 그러나 칭기스칸은 그 이름 없는 초원에 자신의 이름을 너무 깊이 새겨 놓았다. 아니, 새긴 정도가 아니라 역사라는 콘크리트로 들이부어 버렸다. 그래서 몽골에서는 칭기스칸을 피한다는 것이 마치 바다에 가서 물을 피하겠다는 소리와 비슷했다. 나는 이름 없는 조연을 찾으러 왔는데, 조연에게 길을 물어도 "칭기스칸 쪽으로 가세요."라고 할 것만 같았다.

 

결국 나는 깨달았다.

칭스를 피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몽골에 오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이미 와 버렸다.

역사는 또 한 번 나를 비웃고 있었다.

결국, 이번만큼은 칭스를 피해 가겠다고 큰소리를 쳤는데 결국 또 그놈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내가 피한 것이 아니라, 칭스가 나를 추격해 온 것이다. 이쯤 되면 그는 정복왕이 아니라 집착왕이다.

 

학자들도 그를 놓고 아직도 싸운다.

"잔혹한 학살자다."

"아니다. 효자였다."

"아니다. 개를 무서워했다."

"아니다. 개가 칭기스칸을 무서워했다.“

**사실 내 친구 칭스는 의리의 화신이며 어머니에겐 3살 어린애였고 개를 무서워 할 정도로 유약한 면도 있고 특히 나에게 살갑게 구는 것을 보면 전선에서 앞장서 말달릴 때 외엔 착하디착한 청년이었다.

 

결국 몽골보다 먼저 정복당한 것은 학자들의 멘털이었다.

한쪽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칭기스칸은 선전선동의 천재였다. "항복 안 하면 다 죽는다!"라고 소문만 퍼뜨렸는데, 사람들은 겁을 먹고 성문부터 열어 버렸다. 그러니 기록에 적힌 수백만 학살도 사실은 공포 마케팅이었다는 것이다. 세계 최초의 바이럴 광고. "학살 예정"이라는 현수막만 걸었는데 도시가 먼저 기절했다는 논리다.

 

반대편은 코웃음을 친다.

"그렇게 겁만 줘서 누가 항복하냐? 적어도 몇 번은 진짜로 보여 줬겠지."

생각해 보니 그 말도 맞다. 곰도 한 번은 벌통을 뒤엎어야 소문이 난다. 천둥도 한 번은 번개를 내려쳐야 사람들이 우산을 챙긴다. 공포도 실적이 있어야 브랜드가 된다.

 

그래서 기록은 점점 부풀어 오른다.

어떤 기록은 도시 하나를 통째로 지웠다고 하고, 어떤 기록은 백만 명이 사라졌다고 한다. 또 어떤 기록은 몇 주 동안 칼이 쉬지 않았다고 한다.

 

기록은 이상한 생물이다.

승자는 영웅을 만들고, 패자는 괴물을 만든다.

영웅은 시간이 지나면 신이 되고, 괴물은 시간이 지나면 전설이 된다.

역사는 그 둘 사이에서 술 취한 서기가 휘갈겨 쓴 초고인지도 모른다.

 

몽골비사를 펼치면 또 다른 장면이 나온다. 타타르를 정복한 뒤 수레바퀴에 맞춰 사람을 잘랐다는 기록.

정말 그랬을까?

나는 모르겠다. 그와 거의 매일 붙어 다녔지만 그런 것을 물어 본적은 한 번도 없었다.

 

다만 확실한 것은 하나다.

칭스는 800년이 지난 지금도 사람들을 정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칼로가 아니라 논문으로.

말로가 아니라 댓글로.

활로가 아니라 유튜브 알고리즘으로.

 

그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번 전쟁의 무기는 칼이 아니라 해석이고, 화살이 아니라 상상력이다. 그리고 그 전쟁에서 가장 많이 희생되는 것은 진실이다.

칭스와 내가 한 전쟁은 완벽한 꽈배기 사실보단 비틀기 진실보단 왜곡하기그리고 누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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