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과 밀폐, 과노출의 위험,

입력 2026년08월05일 14시45분 김가중 조회수 77

역사에 예술을 입히다. 金嘉中누드철학

그리고 제멋대로 번쩍일 준비를 마친 스트로보 사이에서, 나는 예술가라기보다는 멸망 직전의 현장에서 홀로 고군분투하는 카메라 노동자에 가까웠다.

 

울란바토르의 지하 스튜디오는 철학적 사유하기엔 너무나도 숨이 막혔다. 첨단 리모컨으로 조작되는 배경 화면들은 하나같이 촌스러웠고, 결국 내가 선택한 건 가장 원초적인 검은색이었다. 검은색이란 무엇인가? 모든 빛을 흡수하는 철학적 허무이자, 모델을 돋보이게 만드는 가장 뻔뻔하고 단순한 속임수다. 하지만 진짜 비극은 이제부터 시작되었다.

 

카메라의 배신, 그리고 혼돈의 자동 노출

검은 배경은 카메라 센서를 기만한다. 이 눈치 없는 기계 놈은 배경이 어둡다며 모델을 밝게 칠해버리려 하고, 결국 모델은 달빛 아래의 유령처럼 희게 질려 버릴 기세였다.

 

"수동으로 보정하면 되지 않냐고?"

 

배경 밖으로 카메라를 돌리는 순간 온 세상이 암흑으로 변할 텐데? 카메라 잡고, 조명 맞추고, 모델 연기 지도까지 해야 하는 이 1인 극장에서 일일이 수동 노출을 조작하는 건 철학이 아니라 학대에 가까웠다. 결국 나는 카메라의 지능을 믿어보기로 하며, 눈물을 머금고 자동 노출(Auto)’이라는 타협점을 눌렀다. 신이시여, 알아서 잘 잡으소서.

 

조명 잔혹사: 300W의 비명

스튜디오에 설치된 스트로보는 거장 사진작가의 그것답게 위풍당당했으나, 비디오 촬영 중 연신 번쩍대면 모델이 발작을 일으키거나 스튜디오가 클럽으로 변할 게 분명했다. 일반 라이트는 노란 촛불 수준의 색온도를 자랑했고, 서울에서 겨우 챙겨온 300W짜리 간이 조명은 울란바토르의 어둠 앞에서 모기 눈알만 한 빛을 발할 뿐이었다.

 

부드러운 확산광을 얻으려면 천장 바운스(Bounce)를 쳐야 하는데, 그렇게 하면 가뜩이나 불쌍한 300W 조명은 3분의 1 토막이 난다. 이건 조명이 아니라 '수면등' 수준이다.

 

필름 감도(ISO): 100에서 800으로 폭등 (그 시대 무식한 카메라의 노이즈야, 파티를 시작해라!) 조리개: F4.5로 개방 (포커스 맞추기 극악) 결과적으로 얻은 셔터 속도: 1

 

결단의 시간: 1초의 철학

사진의 세계에서 1초는 영원과도 같다. 모델이 숨을 한 번 깊게 쉬면 사진 속 인물은 삼면도처럼 번져버린다. 모델에게 *"얼음!"*을 외치며 미동도 하지 말라고 주문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경직된 누드화는 예술이 아니라 '석고상'이다. 자유를 찾아 몽골까지 와서 모델에게 '돌처럼 굳어있으라', 이 얼마나 자가당착적인 비극인가!

 

조명은 죽어가고, 카메라는 미쳐가고, 셔터 속도는 굼벵이처럼 기어가는 순간.

나는 카메라를 쥔 손에 힘을 주며 중얼거렸다.

"그래, 진실이 뭐 그리 중요하냐. 어차피 삶도, 예술도 모호한 잔상 아니던가?"

 

악조건이 완성해 낸 최악의 환경. 하지만 예술가는 핑계를 대지 않는다.

단지 흔들린 사진을 보고 "이것은 몽골 바람의 유동성을 담아낸 찰나의 미학"이라고 포장할 준비를 할 뿐.

 

나는 깊은 숨을 내쉬고, 영원 같은 1초를 향해 셔터를 눌렀다. ‘-.’

카메라가 울어대기 시작하면, 예술가의 이성은 렌즈 뒤편으로 조용히 물러난다.

 

철학자들은 존재의 이유를 찾아 묵상을 한다지만, 내 카메라에겐 그딴 한가한 소리는 뚱딴지로 치부한다. 오래 손에 익어 이제는 몸의 일부가 되어버린 이 기계 놈은, 렌즈 끝에 여인의 부드러운 곡선이 걸리지 않으면 잔뜩 허기진 야수처럼 내 손끝을 조급하게 쥐어짠다.

"참 오랫동안 이 짓을 해왔건만, 너는 왜 보채지도 않고 여전히 잘 노느냐?."

 

스스로에게 물어보지만 답은 이미 알고 있다. 이건 촬영이 아니라 중독이다.

며칠만 셔터를 누르지 않고 멍하니 있으면, 환각 같은 환영들이 눈앞을 스쳐 지나간다. 길가의 버드나무 가지에서도, 몽골 구름의 부드러운 능선에서도, 심지어 울란바토르 지하 스튜디오의 퀴퀴한 공기 속에서도 아리따운 여인들이 옷을 하나씩 벗어 던지며 환하게 웃고 서 있다. 금단현상이 이 정도면 거의 약물 중독자 수준이다.

 

지하 스튜디오의 300W짜리 초라한 조명도, 굼벵이처럼 기어가는 1초의 셔터 속도도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다. 조급함이 피를 타고 흐르자, 내 손은 이미 카메라의 셔터 버튼 위에서 경련하듯 떨리고 있었다.

"좋다, 집어삼켜 주마. 진실? 거기 뭔데 웃기면 되지, 사실? 거기 먼데 재미 있으면 돼지."

 

카메라의 렌즈가 어둠 속에서 번뜩였다. 저 지독하게 냉정하고 뻔뻔한 기계 놈의 허기를 채워주기 위해, 그리고 내 눈앞을 서성이는 이 아련하고 지독한 33명의 여인들의 일렁이는 나신들이 만드는 환영들을 현실로 끌어내리기 위해.

 

나는 숨을 고르고, 마침내 그 어두운 유혹을 향해 첫 셔터를 내질렀다. “철커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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