셔터는 거들 뿐이다
세상 사람들은 사진이 셔터를 누르는 기술이라고 믿는다.
천만의 말씀이다.
셔터는 카메라 안에서 가장 할 일이 없는 부품이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면 끝난다. 원숭이도 바나나를 들려주면 셔터는 누른다. AI도 누른다. 심지어 우연도 가끔 명작을 만든다.
그러나 예술은 셔터가 눌리기 훨씬 전부터 시작되고, 셔터가 닫힌 뒤부터 본격적으로 사기... 아니, 철학이 시작된다.
나는 오래전 깨달았다.
사진가는 사진을 찍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을 그럴듯하게 우겨 넣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첫 번째 재능은 껍데기를 줍는 고고학자다.
누군가는 버려진 옷을 쓰레기라 부른다.
그러나 내 눈에는 그것이 인간 문명의 흔적이다.
초원 위에 던져진 청바지 한 장. 셔츠 한꺼플. 팬티 한 조각.
그것은 단순한 면직물이 아니라, 인류가 어느 날 갑자기 "부끄럽다."라는 이상한 병에 걸렸다는 역사적 증거다.
나는 그 껍데기를 주워 프레임 한쪽에 슬쩍 놓는다.
사람들은 감탄한다.
"와... 문명과 원초성이 충돌한다."
사실은 바람에 날아갈까 봐 돌멩이 하나 올려놓았을 뿐인데....
예술은 가끔 돌멩이 하나에서 시작된다.
두 번째 재능, 옷을 벗기는 것이 아니라 관념을 벗긴다.
사람들은 묻는다.
"어떻게 멀쩡한 사람이 카메라 앞에서 옷을 벗습니까?"
간단하다.
옷을 벗으라고 하면 절대 안 벗는다.
그래서 나는 옷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사기케다.
"당신 안에는 아직 태초가 살아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피부를 찍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기록합니다."
"문명은 잠깐 밖에서 기다리라고 하죠."
이쯤 되면 상대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이 사기가 먹히네....‘
결국 최고의 장비는 최신 카메라가 아니라 입이다.
사진가는 광각렌즈보다 언어의 화각이 넓어야 한다.
세 번째 재능, 장소를 냄새 맡는 짐승의 직감
남들은 폐허를 본다.
나는 무대를 본다.
남들은 잡초를 본다.
나는 조명을 본다.
남들은 "여기서 뭘 찍어?"라고 묻는다.
나는 "여기가 아니면 어디겠소!"라고 대답한다.
그러다 경찰차가 멀리서 다가온다.
유목민 아저씨가 말을 타고 달려온다.
순간 머리는 초당 수천 번 회전한다.
"예술입니다!"
"문화 교류입니다!"
"세계 평화 프로젝트입니다!"
그 말을 믿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 틈에 촬영은 끝났다.
예술은 결국 순발력이다.
네 번째 재능, 가장 위대한 기술, 내러티브를 입히다.
사진은 한 장이다.
그러나 이야기는 우주만큼 커질 수 있다.
사진 한 장을 그냥 보여주면
"벗었네."
끝이다.
하지만 내가 설명하기 시작하면 사정이 달라진다.
지구역사가 얼마나 되지? 45년? 그것 가지고는 모자란다. 나의 예술엔...
순간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사실 나도 방금 처음 들은 말이다.
하지만 현대예술에서는 설명이 작품을 이기는 경우가 팩트다.
현대의 사진가는 셔터보다 혀가 더 길어야 된다.
결국 누드사진가는 사진가가 아니다.
심리학자다.
협상가다.
공간연출가다.
철학자다.
시인이다.
희극배우다.
그리고 마지막 반전은 세상을 그럴듯하게 속이는 사기꾼이다.
오늘도 나는 새하얀 설원에 버려진 인간의 껍데기를 주워 담는다.
카메라보다 먼저 말을 준비하고,
조명보다 먼저 핑계를 준비하며,
철학보다 먼저 웃음을 준비한다.
세상은 이것을 B급 현장이라 부른다.
나는 그것을 A급 철학이라고 우긴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은 그 우김을 예술이라고 부른다.
그 순간 나는 다시 확신한다.
셔터는 사진을 찍는다.
그러나 나는 썰을 만든다.
우습게도 그것이 나의 실체다.
칭스와 말코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아마도 감동이 무지 컸던 것 같다. (에라이 사기꾼아 영하 35도의 칼바람에 눈물 콧물 안 나는 인간도 있다더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