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뗀 역사, 렌즈가 벗긴 위선."

입력 2026년08월18일 11시01분 김가중 조회수 193

대몽골 여행기. 金嘉中 누드 철학

- 대설원, 렌즈 그리고 피 흘리는 역사 따위

타타르한테 패하고, 테무친의 아버지 예수게이가 독살당하면서 왕국은 풍비박산이 났다. 그리고 영하 40도의 아득한 몽골 대설원 위에서, 나와 칭스가 만났다.(사실 생명의 원천인 이 그만의 능력으로 호출하고 조바가 순한 양을 만들어) 당시의 우리는 하루하루가 삶과 죽음의 경계선이었다. 칭스가 보르지긴족의 후예든, 아비 없는 하늘의 자식이든 내 알 바가 아니었다.

 

- 칭스가 정복한 것은 세계가 아니라 찰나였다

후일 칭스는 부족을 통일하고 세계에서 가장 큰 제국을 세웠다. 세상 사람들은 그를 칭기즈칸이라 부르며 역사책에 피로 써 내려갔다. 하지만 나는 안다. 칭스가 진정으로 눈뜬 것은 칼싸움이 아니라, 그날 설원 위에서 벗어던져진 모피 속 생명의 숭고함이었다는 것을.

 

역사는 거짓말을 하고 진실은 왜곡되며 문법은 파괴된다. 하지만 셔터가 찰칵하고 닫히는 그 100분의 1초 동안, 하늘의 아들도, 땅가진 타브가치도, 세계 제국도 모두 발가벗은 한 점의 ''로 돌아가는 법이다.

 

이 호출한 칭스는 역사속에서는 세계에 유래없이 가장 강력한 정복자였지만 김가중의 예술안에서는 동년배의 막역한 절친일 뿐이다. 물론 말코 역시 동격이었다.

칭스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내 대형 카메라 삼각대를 고정하고 있었고, 나는 렌즈 셔터를 만지작거리며 소리쳤다.

", 칭스! 반사판 각도 좀 똑바로 잡아봐! 빛이 흩어지잖아!"

"카카야, 타타르 놈들이 추격해올지도 모르는데 지금 가죽 껍데기를 벗기고 누드를 찍을 때야?"

"이 무식한 놈아! 제국을 세우고 피를 흘리는 건 고작 몇 십 년짜리 역사지만, 이 장엄한 대자연과 원초적인 인체의 나신(裸身)이 만나는 순간은 영원이야! 너 역사 쓸래, 예술 할래?“

 

마침내 몽골의 아리따운(으이그, ''이네!) 여인들이 두터운 동물 가죽과 퀴퀴한 모피 껍질을 활활 벗어던졌다. 하얀 설원 위에 드러난 생명 그 자체의 원초적 곡선! 태양 빛이 눈밭에 반사되어 여인의 피부를 어루만질 때, 나와 칭스는 넋을 잃었다. 말코는 진작에 으슥한 눈구덩이로 사라져 보이지도 않았다. 아마도 딸을 치고 있는 것 같았다.

 

보라, 독자들이여! 카메라 렌즈 앞에 펼쳐진 그 아스라한 대자연의 장엄함과 그 속에서 빛나는 생명의 알몸을 보면서, 과연 무슨 제국주의니, 족보니, 정통 역사니 하는 따위의 잡념이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올 구멍이 단 한 평이라도 남아 있겠는가?

 

- 푸른 늑대의 혈통과 금빛 물결의 결계

대륙을 붉게 물들인 정복자, (Khan)의 법전 예케 자사크에는 먼 옛날부터 내려오는 금기가 적혀 있었다.

 

"어미의 신분이 어떠하든, 아비의 피를 물려받은 자는 모두 정당한 후계이다. 아비가 숨을 거두면, 선왕의 여인들은 장자의 소유가 되거나 새로운 운명을 부여받는다."

 

사람들은 이 참혹하고도 강인한 유목의 율법이 칸의 머리에서 나왔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것은 오산이었다. 이미 1,200년 전, 대륙 동쪽의 신비로운 정령 대륙 부여(夫餘)’의 금와왕이 용의 신 해모수의 여인 유화를 거두었을 때부터 내려온 혈통 보존의 주술이었다.

 

용의 이름을 가진 아이, '주몽'

유화가 알에서 깨어난 신성의 아이를 낳았을 때, 하늘의 정령들은 아이에게 (/)’이라는 칭호를 내렸다.

 

그것은 동방의 언어로 신궁(神弓)’을 뜻함과 동시에, 유목 부족의 언어로 절대 꺾이지 않는 용맹을 의미하는 마법의 정령어였다. 몽골의 원조가 될 푸른 늑대 부족은 먼 훗날, 자신들의 기원이 된 그 아이의 칭호를 가슴에 품고 대륙을 누비게 된다.

 

대설원의 밤은 시리도록 푸르렀다. 달빛조차 얼어붙은 듯 숨죽인 공제선 너머, 우뚝 선 사나이의 실루엣이 대지를 압도했다. 내 친구 칭스,

 

그의 눈빛은 대초원의 끝을 향하지 않았다. 먼 우주, 그 아득한 심연을 향해 레이저 빛처럼 뻗어나간 그의 시선은 시간의 강을 거슬러 오르고 있었다. 그의 눈동자 속에는 푸른 늑대의 피가 요동치고 있었다. 대륙을 붉게 물들였던 그 용맹함, 꺾이지 않는 투지가 우주의 별들과 공명하며 새로운 역사의 장을 열어가고 있었다.

대설원의 밤은 깊어만 갔지만, 칸의 눈빛은 꺼지지 않는 불꽃처럼 대지를 밝히고 있었다. 그 불꽃은 나의 누드 위에 인류의 역사에 길이 남은 웅장한 서사, 푸른 늑대의 묵시록을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었다.















 


 

 

 

 

 

 

 

 

 

 

 

 

 
결제하실 금액은 원 입니다.
무통장 입금시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