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고원 한복판, 눈두덩이에 처박힌 차량을 맨손으로 파내는 말코,
딸치고 나른한 다리를 절며 슬그머니 다가온 말코의 넉두리가 바람에 실려 지평선 너머로 달려가고 있었다. 아이고, 내 팔자야. 몽골고원 영하 30도 눈보라 속에서 갤갤거리는 중고 렌터카를 손가락 얼어가며 파내고 앉았는데, 옆에서 카카 놈은 카메라는 팽개쳐두고 거룩한 '베일의 미학' 타령이다. 여체의 곡선이 어쩌고 늑대와 사슴이 저쩌고 하는데, 내 눈에는 베일이 아니라 얼어 죽기 직전의 사시나무 떨듯 떠는 모델의 패딩 점퍼만 보인다.
"베일이고 나발이고 엔진 오일 얼어서 차 멈췄다. 念(념)을 쓰든 뭘 쓰든 해모수 좀 당장 불러와서 차 좀 밀라고 하지!“
버드나무 숲의 '사기캐' 해모수와 유화의 인스타그램 라이브
역사가 밥 먹여주냐고? 맞다. 역사책엔 '묵돌한테 얻어맞은 동호 잔당' 수준으로 나올지 몰라도, 카카의 렌즈 속 해모수는 천하를 호령하는 '원조 인플루언서'다.
해모수가 지상에 내려온 진짜 이유? 거창한 천하평정? 개뿔. 그냥 버드나무 숲에서 인스타 릴스 찍던 유화 낭자를 훔쳐보고 '좋아요' 누르러 온 거다.
"낭자, 나는 하백 용왕의 후손이요"
요즘으로 치면 "나 강남에 빌딩 몇 채 있는 재벌 3세인데~" 하는 삼류 작업 멘트다. 근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게 먹힌다. 여체니, 미학이니, 온갖 감언이설을 입에 침도 안 바르고 털어대니 유화 부인도 홀딱 넘어간 거다. 카카가 모델들한테 "자, 베일 뒤에 가려진 가능성의 신비를 표현해봐!" 하면서 셔터 누르는 거랑 완전 판박이다.
근데 웃긴 건, 이 자유연애의 결과로 유화가 엎어진 새빨간 개구리가 아닌 알을 낳았다. 사람이 알을 낳다니! 요즘 같으면 SBS ‘궁금한 이야기 Y’에 나와서 '알을 낳은 여인의 진실' 같은 걸로 취재 나올 감이다. 하지만 부여의 왕은 "신화인데 따져서 뭐 하나!" 하고는 쿨하게 자기 자식으로 거두어들였다. 유전자 검사 키트가 없던 시절의 엄청난 평화주의라 하겠다.
이야기는 이제 금와왕(金蛙王)으로 넘어간다. 바위 밑에서 새빨간 갓난아이가 울고 있어서 들춰보니 벌거숭이 아이가 개구리처럼 엎어져 울고 있었다.
카카식으로 베일을 슬쩍 거둬서 쌩-얼을 까보면 이건 지극히 범죄 스릴러다. 당시 북방 초원 사람들은 땅 파고 들어가서 살았고, 늑대사냥을 나갈 때 입구를 커다란 바위로 막아놨다. 즉, 부여왕이 행차하다가 남의 집 문짝(바위)을 강제로 뜯어 내고는, 안에서 자고 있던 남의 집 애를 "어이쿠, 하늘이 주신 금개구리로다!" 하면서 냅다 납치해 온 거다.
"전하, 남의 애를 그냥 가져오시면 어떡합니까?"
"시끄럽다! 베일 속의 신비다! 오늘부터 이 애 이름은 금와(金蛙)다!"
혈통? 유전자? 초원에서는 그딴 거 안 따졌다. 어차피 남의 집 애든, 강가에서 주워온 애든, 몽둥이질 잘하고 칼질 잘해서 늑대 때려잡으면 그게 장땡인 시대였으니까.
이 황당무계한 '아무나 데려다 키우기' 신화의 결정판은 절친 칭스에게서 완성된다.
마누라 보르테가 적한테 납치당했다가 돌아와서 낳은 큰아들 이름이 '조치'다. 이름 뜻이 무려 '손님(Guest)'.자기 피가 1도 안 섞인 걸 아주 대놓고 인증하는 이름을 지어준 거다. 요즘 같으면 아침드라마에서 김치로 뺨 맞을 상황이다.
"너 이 새끼, 핏줄도 안 섞였는데 왜 내 집에 있냐?"
"아버님, 저 '손님'인데요?"
"아, 맞다. 손님이셨지. 자, 칼 들고 제일 먼저 나가서 싸워라!"
칭스는 핏줄의 순수성 따위는 개나 줘버리고 그 '손님'을 제일 무서운 장수로 굴려먹었다.
아비다른 공주도 있었다. 붉은 정적이 드리운 붉은 들판 끝, 사막의 모래바람을 뚫고 거대한 서역 상단의 비단 텐트가 흔들렸다.
텐트 안에는 아라비아산 로즈워터 향과 자극적인 향신료 냄새, 그리고 노련한 거상의 냉소가 가득 차 있었다. 실크로드를 주무르는 서역의 대재벌이자 세력가인 아불하산은 비단 방석에 기댄 채, 먼지를 뒤집어쓴 채 서 있는 여인을 훑어보았다. 허울만 남은 부족의 귀족 여인, 버르테였다.
“서역의 끝, 사막 넘어 감옥까지 가달라?”
아불하산은 금잔을 들며 비웃었다.
“테무진이라는 보잘것없는 사내 하나를 구하겠다고 이 험난한 비단길을 건너라니. 여인아, 내가 그 멸망의 땅까지 위험을 무릅쓰고 당신을 데려가 준다면, 당신은 내게 무엇을 줄 수 있지? 가진 것 하나 없는 허울뿐인 이름이 전부이지 않은가.”
버르테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그녀의 눈동자 속에는 초원의 강풍과도 같은 푸른 독기가 서려 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자신의 어깨를 감싼 털가죽 옷자락을 풀며, 거상의 눈을 똑바로 올려다보았다.
“아시잖아요, 남자들이 좋아하는 것…”
아불하산의 목소리가 턱 멈췄다. 그의 입가에 징그러운 미소가 번지는 순간, 버르테의 손가락 끝에서 푸른빛의 은은한 주술 문양이 뿜어져 나왔다. 그녀가 말한 것은 흔한 육신의 거래가 아니었다. 탐욕스러운 거상들이 목숨을 걸고서라도 쥐고 싶어 하는 비밀—권력자들의 목숨을 연장하고 영혼을 사로잡는 금기된 서역의 고대 환술이자, 사막의 주술이었다. 거상의 눈동자가 푸른 주술에 물들며 완전히 그녀의 노예로 전락했다.
“기꺼이… 대고모님, 당신을 서역 끝까지 모시지요.”
세월이 흘러, 초원에는 다시 평화와 함께 피린내 나는 제국의 기운이 감돌았다. 서역의 감옥을 부수고 돌아온 테무진은 칸의 자리에 올랐고, 버르테는 그의 곁을 지키는 단단한 바위가 되었다.
어느 날 해질녘, 붉게 물든 몽골의 들판 위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테무진의 아들들과 함께 초원을 달리는 아이들 사이에, 햇빛을 받아 금빛으로 반짝이는 노란 머리칼과 호수처럼 푸른 눈동자를 가진 소녀 하나가 섞여 있었다.
테무진은 게르 앞에 서서 그 이질적인 아이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몽골비사 그 어느 장에도, 제국의 공식 사서 그 어느 구석에도 기록되지 않은 아이. 서역의 깊은 주술과 거상의 피, 그리고 버르테가 치른 참혹한 대가의 흔적.
테무진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저 버르테의 어깨를 조용히 감싸 안았을 뿐이다. 바람이 불어와 소녀의 금빛 머리칼을 흔들었고, 초원의 석양은 그 비밀을 영원히 침묵 속에 묻어두었다.
바위 밑에서 주워온 애나, 적진에서 덤으로 얹어온 애나, 일단 초원의 바람을 견디면 다 내 새끼가 되는 미친 초원의 illogical art(김가중 예술철학)였던 것이다.
눈발이 쓸고 지나가는 몽골고원의 밤. 얼어붙은 차량 옆에서 장작불을 피워놓고, 카카 칭스 말코는 여전히 베일과 여체, 그리고 아득한 신화타령에 소주잔을 기울인다.
"카카, 결국 신화라는 게 별거가? 남의 집 애 주워다 키우고, 작업 멘트 쳐서 알 낳게 만든 다음, 나중에 폼나게 포장하려고 겉에다 가림막(베일) 하나 턱 얹어놓은 거?"
카카가 껄껄 웃으며 카메라 렌즈를 닦는다.
"이 사람아, 그래서 베일이 위대한 거야! 다 까발리면 쌩얼에 잡티만 보이지만, 살짝 가려놓으면 삼류 사기극도 거룩한 미학이 되는 법이거든! 자, 술이나 마셔!“
세상의 모든 미학(美學)은 거창한 법이 아니다. 카카가 몽골 눈구덩이에서 ‘베일의 미학’을 부르짖으며 베일의 속성을 동해안 끝자락 울진에서 인류 역사상 가장 황당무계하고 거룩한 ‘대한민국 제1위 미녀 탄생 신화’를 역사에 낑겨 넣었다.
가릴수록 피어나는 ‘복면가왕형’ 절대 미인
울진에서 만난 그녀는 차원부터 달랐다. 보통 미인이라 함은 이목구비를 온천하에 드러내어 자랑하기 마련이거늘, 이 여인은 자고로 “나는 가리면 가릴수록 예뻐지는 지독한 속성을 가졌다”며 낯빛을 감추는 것이 아닌가.
마치 몽골 초원의 짙은 안개처럼, 그녀가 머리수건을 둘러쓰고 썬글라스를 끼며 마스크로 얼굴의 90%를 가릴 때마다 미의 아우라가 가우스 수열로 폭발했다.
"형님, 이 여자는 완전히 복면가왕 시스템입니다. 다 가리고 눈동자만 살짝 보일 때가 미스코리아 진(眞)이고, 아예 이불을 뒤집어쓰면 클레오파트라도 울고 갈 기세입니다!"
실상보다 아름다운 것은 실상 너머의 ‘가능성의 신비’라 했던가? 가리면 가릴수록 예뻐진다니, 이 얼마나 경제적이면서도 신비로운 미학인가.
그러나 그녀가 ‘대한민국 공식 1등 미녀’타이틀을 획득하게 된 전말은 해모수와 금와왕의 탄생 설화를 훌라후프처럼 가볍게 비틀어버리는 압도적 사기극이었다. 사건은 어느 쓸쓸한 가을날, 울진의 한 횟집에서 열린 초등학교 동창회에서 시작되었다. 심사위원단은 단 한 명. 세월의 풍파를 직격으로 맞아 늙어 꼬부라진 초등학교 시절 담임선생님이었다.
- 1등 도착:꼬부라진 담임선생님 (공정한 심사를 위해 본인이 1등으로 도착함)
- 2등 도착:바로 그 ‘가릴수록 예쁜’ 문제의 여인
그런데 여기도 천지개벽할 신화적 룰(Rule)이 적용된다. 담임선생님이 술잔을 기울이며 선언한 심사 기준이 압권이다.
“에고야... 시상에 아무도 안 오는 거 보이까... 니가 시상에서 질로 이쁘다”
다 가려서 안 보이고, 아무도 안 와서 정해진 1등. 이것이야말로 껍데기만 숭배하는 이 시대의 진정한 ‘형상 너머의 헛소리 미학’이 아니겠는가.
끝없이 펼쳐진 몽골의 수평선 위로 밤안개가 자욱하게 깔린다. 신화도, 여체도, 그리고 눈구덩이에 처박힌 차량(고물상에서 수집한 수십 대를 합쳐놓은 모호한 몽골판 승용차)까지 모두 거대한 베일 속으로 아득하게 잠겨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