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포먼스란 무엇인가?

입력 2026년08월31일 11시13분 김가중 조회수 157

― 예술은 관념의 지문을 남기는 행위이다.

어느 유명 작가가 책을 냈다.

제목이 아마도 #내 카메라 온도는 39.5도다# 였던 것 같다. 책은 서점가에서 예술 분야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나는 그 책에 아주 짧게 등장한다. 달랑 세 줄이다.

내가 사진을 시작하게 된 것은 대학로에서 그를 만난 것이 계기가 되었다. 그는 기인이라 불리었는데 반드시 사진을 연출해서 촬영하곤 했다.”

 

그런데 여기서 아주 중요한 단어가 하나 있다. 연출. 옛날에는 이 말을 썼다.

사진은 연출해서 찍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세상이 얼마나 고상해졌는가. 연출이라고 하면 왠지 영화감독 냄새가 나고, 퍼포먼스라고 하면 갑자기 예술가 냄새가 난다. 그래서 요즘은 슬쩍 말을 바꾸었다. 퍼포먼스라고 부르기로 했다. 말 하나 바꿨을 뿐인데 갑자기 현대미술가가 되었다. 이것이 예술의 첫 번째 고등사기술이다.

 

퍼포먼스는 쇼가 아니다 그렇다면 퍼포먼스란 무엇인가? 사전적인 설명은 다른 사람들이 알아서 하면 되고, 김가중식으로 설명하면 아주 간단하다. 퍼포먼스란,

내가 어떤 대상에 나의 흔적을 남기는 행위다. 사진만 찍는다면 카메라가 본 것을 기록한 것이다. 그러나 퍼포먼스를 개입시키는 순간 이야기가 달라진다. 나는 대상을 그대로 바라보지 않는다. 대상을 내 직관 속으로 끌고 들어온다. 그리고 그 직관은 다시 내 관념속으로 들어간다. 그 관념은 또다시 뒤틀리고, 과장되고, 비틀리고, 뻥을 저장하고, 마침내 김가중이라는 인간의 눈으로 다시 태어난다. 그러므로 내가 찍은 사진은 세상의 복사본이 아니다. 세상을 한 번 먹었다가 소화해서 토해낸 것이다. 이것이 김가중식 예술이다.

사진가가 세상을 그대로 복사한다면 복사기와 무엇이 다른가.

 

-몽골의 눈밭에 빨간 것을 뿌리다-

눈이 새하얗게 쌓여 있었다. 나는 그 하얀 눈밭에 새빨간 분말을 뿌렸다. 그랬더니 누군가 사진을 보고 말했다. “환경오염!!!”

 

참나.

지당한 말씀이다.

빨간색을 뿌렸으니 빨갛지, 파란색을 뿌렸으면 파랗다고 했을 것이다.

비행기 한 대를 화장시키려면 생각보다 돈도 많이 들고, 시너도 많이 들고, 페인트도 엄청나게 들어간다. 수백 통의 시너와 페인트가 비행기 몸뚱이에 발라지고, 시너는 하늘로 증발하고, 페인트의 일부는 땅으로 내려앉고, 일부는 인간의 폐 속으로 들어간다. 그러자 어느 날 환경론자들이 벌떼처럼 들고일어났다. “비행기에도 화장을 하지 맙시다!”

 

참으로 거룩한 말이었다. 지구를 살리겠다는 일념과 철학이 절절히 살아있다. 그래서 비행기에서 페인트를 싹 벗겨버렸다. 그 결과 비행기는 아주 정직해졌다. 본래의 쇳덩어리 몸체를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이것을 예술적으로 표현하면 비행기의 누드라고 부르고 싶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사람들이 그 비행기를 보더니 비명을 질렀다.

저거 비행기 맞아?”

고철 아니야?”

저걸 타고 하늘로 올라가도 되는 거야?”

 

승객들은 탑승구 앞에서 슬금슬금 뒷걸음질 쳤다. 누군가는 말했다.

저렇게 시뻘겋게 녹슨 비행기를 타느니 차라리 페인트 냄새나는 비행기를 타겠다.”

 

환경을 살리겠다는 인간의 거룩한 발상이 추락하는 비행기보다 먼저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여기서 또 하나의 위대한 철학을 발견했다. 인간은 자연을 사랑하지만 자연 그 자체는 싫어한다. 오징어는 빛을 좋아한다. 벌레도 불빛을 보면 미친 듯이 달려든다. 그리고 인간은 현란한 원색을 보면 눈을 반짝인다.

빨강!

파랑!

노랑!

금색!

빛나는 것!

반짝이는 것!

새것처럼 보이는 것!

인간은 이상하게도 썩어가는 참다운 자연보다 반짝이는 인공물을 더 신뢰한다.

 

그래서 비행기는 사포로 녹을 벗겨내고 다시 화장을 진하게 했다. 시너를 탱크로리로 들이붓고 페인트를 톤으로 들이붓고 또 들이부었다. 비행기는 다시 새것처럼 반짝였다. 사람들은 줄을 서서 탔다. 그리고 창밖으로 비행기 날개를 바라보며 말했다.

!” “멋진 비행기다.”

 

정말 비행기가 멋진 것일까?”

아니다.

어쩌면 인간이 멋지다고 믿고 싶은 것을 멋지게 보는 것인지도 모른다. 결국 비행기는 하늘을 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관념() 위를 날고 있는 것이다. 그 관념에 페인트를 몇 겹 더 칠하는 순간, 고철은 예술이 되고 녹슨 쇳덩이는 작품이 되고 환경을 걱정하던 인간은 다시 비행기에 올라타며 말한다. “멋진 비행기다.”

 

인간은 자연을 보는 동물이 아니라 자기가 보고 싶은 것을 보는 동물이다. 그래서 사진도 그렇고, 예술도 그렇고, 인생도 그렇다. 결국 세상은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떻게 칠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존재한다. 이것이 바로 김가중식 뻥 철학이다. 그러니 예술도 별것 아니다. 사실보다 멋지게, 진실보다 그럴듯하게, 본질보다 화려하게 만들어놓고 사람들이

! 예술이다!”

 

라고 말하게 만들면 된다.

내용이 없으면 색깔을 칠하고, 색깔도 없으면 뻥을 칠하라.”

 

내가 눈밭에 분말 조금 뿌리면,

환경오염이다!”

 

이것이 인간의 선택적 환경철학이다. 당신이 입고 있는 청바지는 물감으로 염색하지 않았는가? 셔츠는? 운동화는? 가방은?

우리가 몸에 걸치고 있는 것의 모든 것은 색을 입히기 위해 무언가를 사용했다. 손톱도 발톱도 머리칼도 입술까지도....

심지어 어떤 형광 아크릴 물감은 인체에 암을 유발하는 화학물질 문제를 걱정해야 할 정도인데, 나는 예술 한 장면을 만들기 위해 밀가루에 무공해 안료를 섞은 특수분말을 사용했다. 특히 바지 한 자락을 물들일까 말까 한 한 줌 정도로(사실은 재료비도 아까워서....)

그런데 사진 한 장이 나오자 지구의 운명이 위태로워졌다. 아마 내가 뿌린 빨간 가루 때문에 북극곰도 긴급회의를 열었을 것이다. “김가중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런데 중요한 것은 빨간 가루가 아니다

그리고 여기서 사실 환경오염 이야기는 본질이 아니다.

이쯤에서 잠깐 삼천포로 빠져보자.

 

왜 뿌렸느냐?

이것이 중요하다.

눈은 그냥 눈이다.

하얗고,

차갑고,

넓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 위에 빨간색 하나가 들어가는 순간,

눈은 더 이상 그냥 눈이 아니다.

그것은 피가 되기도 하고,

상처가 되기도 하고,

생명이 되기도 하고,

죽음이 되기도 한다.

또는 아무 의미도 없는 빨간 가루일 수도 있다.

그 판단은 보는 사람의 몫이다.

나는 다만 세상에 작은 사고 하나를 던져놓은 것이다.

그리고 카메라로 그것을 붙잡는다.

바로 여기서 퍼포먼스가 시작된다.

 

나는 세상을 찍는 것이 아니다

나는 세상을 찍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세상을 내 안으로 끌고 들어온다.

눈밭 하나를 보고,

나는 눈밭만 생각하지 않는다.

그 안에서 피를 보고, 역사를 보고,

죽음을 보고,

생명을 보고,

욕망을 보고,

전쟁을 보고,

때로는 아무것도 보지 않는다.

그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까지도 나의 관념이다.

 

그러므로 사진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다. 대상을 나의 관념으로 끌어들이는 행위다. 여기에 퍼포먼스가 들어간다. 내가 대상에 행동을 가하고, 그 행동이 대상의 의미를 흔들어 놓고, 흔들린 대상이 다시 나의 관념으로 들어온다. 그것을 사진으로 붙잡는다. 그러면 세상에 없던 하나의 이미지가 태어난다.

 

퍼포먼스는 나의 지문이다.

그래서 나는 퍼포먼스를 이렇게 정의한다. 퍼포먼스란 행위를 통하여 나만의 표식을 남기는 것이다. 붓으로 그린다면 붓의 흔적이 남는다. 조각을 한다면 칼의 흔적이 남는다. 사진을 찍는다면 빛의 흔적이 남는다. 그리고 퍼포먼스를 한다면 작가의 정신이 흔적을 남긴다. 그 흔적이 바로 작가의 지문이다. 누구도 똑같은 지문을 가지고 있지 않듯이, 진짜 예술가라면 누구도 똑같은 관념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나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보다, 세상이 나를 통과하고 난 뒤 무엇으로 변하는가를 보여주고 싶다.

 

눈이 나를 통과하면 피가 되고,

바위가 나를 통과하면 괴물이 되고,

사람이 나를 통과하면 이야기가 되고,

사진이 나를 통과하면 철학이 된다.

그리고 그것을 사람들이 보고

저게 도대체 뭐야?” 라고 한다면, 조용히 웃는다.

됐다.”

 

이미 당신 머릿속에 내 지문 하나가 찍혔으니까.

그것이 내가 말하는 김가중식 퍼포먼스다.

예술은 아름다운 것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세상에 내 흔적을 남기고 도망가는 일이다.

그리고 들키면,

그때부터 그것을 예술이라고 우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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