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의 범람, 허름한 폰카 셔터가 구원하는 예술의 본질
- 필름과 암실의 부활, 그리고 휴대폰으로 그리는 일상의 찰나
요즈음 세상이 거꾸로 돌아가는 모양새다.
1억 화소가 넘는 스마트폰이 주머니마다 들어있고, 명령어 몇 줄만 입력하면 AI가 예술의 전당에 걸려도 손색없는 기깔난 이미지를 1초 만에 뚝딱 만들어내는 세상이다. 포토샵은 고전이 되었고, AI 알고리즘이 완벽한 채도와 구도, 빛을 계산해 잔치를 벌인다.
그런데 정작 사람들은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가?
장롱 속에 처박혀 있던 까칠한 필름카메라를 꺼내 들고, 잊혀가던 흑백 현상 인화 확대기를 찾으러 방방곡곡을 뒤진다. 폴라로이드니 즉석 인화 카메라니 하는 ‘불편하고 돈 드는’ 물건들이 2030 청년들의 필수품이 되었다.
이것은 단순한 레트로 열풍이나 일시적인 유행이 아니다. AI와 최첨단 디지털이 만들어낸 '매끈하지만 영혼 없는 매끄러움'에 대한 인간 본능의 거센 반동 작용이자 미학적 반란이다.
- 거창한 카메라를 버려라, 시선이 곧 카메라다
과거의 사진은 단단한 학습의 영역이었다. 조리개 수치를 외우고, 셔터스피드를 계산하고, 삼각대를 짊어지고 전국 유명 출사지를 유랑하며 대작(大作)을 낚으려 혈안이 되었다. 그러나 그렇게 찍어낸 일출과 일몰, 정형화된 풍경사진들은 이제 AI가 0.1초 만에 더 완벽하게 합성해낸다. 고도의 기술로 완성한 사진이 도리어 가짜처럼 느껴지는 역설의 시대가 온 것이다.
그래서 사진의 성향이 급선회하고 있다. 어렵고 무거운 사진에서 가볍고 솔직하게 스케치하는 ‘감성사진’의 방향으로.
필자 역시 오며 가며 돈 주고 산게 아닌 돈 받고 산 싸구려 저화질 휴대폰을 무심하게 꺼내 든다. 10초짜리 의미 없는 동영상을 누르고, 무심한 내 그림자를 찍는다.
골목길을 지나다 문득 바라본 돌담장의 기하학적 율동.
화장실 문 표지판의 파란 픽토그램과 그 밑에 겹쳐진 내 쓸쓸한 그림자의 유머.
밋밋한 하늘을 향해 외롭게 솟구친 감시카메라 하나.
낙산 언덕 너머로 붉게 타오르며 뭉게구름을 태우는 노을의 격정.
아무도 없는 텅 빈 운동장에 그어진 아득한 흰 선과 초록색 잔디.
이 사진들에 고도의 촬영 기술이나 거창한 장비가 필요한가? 전혀 아니다.
이것은 기술이 찍은 것이 아니라 '나의 철학과 감성'이 찍은 것이다. 아니지! 맥 없고 의식 없이 무심코 누른 것이다.
사진과 예술, 과연 어디로 튈 것인가?
AI가 완벽한 거짓을 창조할수록, 인간은 '내가 그 순간 그 자리에 존재했다' 는 사소하고 서툰 증거에 목을 멘다. 손끝으로 전해지는 필름의 질감, 인화지 위에서 은은하게 번지는 흑백의 냄새, 그리고 길을 걷다 무심히 눌러 담은 스마트폰의 미니멀한 구도야말로 AI가 절대 따라 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온도'다.
예술의 귀추가 어디로 튈지 묻는다면, 나는 감히 이렇게 말하겠다.
"기술의 인플레이션 속에서, 사진은 다시 가장 원초적인 '시선의 예술'로 돌아갈 것이다."
화려한 기술과 매끄러운 보정으로 도배된 사진은 금세 질린다. 그러나 작가의 삶이 묻어나는 담백한 일상의 스케치, 철학이 담긴 미니멀한 찰나는 오래도록 가슴을 울린다. 지금 주머니 속에 휴대폰이 있는가? 그렇다면 카메라를 들고 거창한 풍경을 찾으려 애쓰지 마라. 오늘 당신이 마주친 길가의 그림자 하나, 구름 한 조각에 셔터를 눌러라. 그것이 이 팍팍한 AI 시대에 당신이 남길 수 있는 가장 위대하고 인간적인 감성 예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