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 개인전 ‘예기치 못한 손님 An Unexpected Guest’ 갤러리 나우

입력 2026년09월12일 11시50분 김가중 조회수 107

전시 제목 : 예기치 못한 손님 An Unexpected Guest

전시 기간 : 2026.10.07()-10.28()

관람 시간 : ~토요일 10am~6pm

전시 장소 : 갤러리 나우 (서울시 강남구 언주로 15216)

문 의 : T. 02-725-2930, E-mail. gallerynow@hanmail.net







 

김연수의 회화에서 자연은 기억과 감정이 개입하면서 새롭게 구성된다. 이동 중 스쳐 지나간 풍경을 그리기 시작한 초기 작업부터 최근의 들풀과 나무, 구름과 파도에 이르기까지, 김연수의 관심은 객관적인 형상을 옮기는 데 있지 않았다. 실제로 보았던 장면은 기억 속에서 변형되고, 다시 그 장면을 마주하는 순간의 감정과 결합한다. 자연은 외부의 대상인 동시에, 그것을 바라보는 자신의 상태를 확인하게 하는 매개가 된다.

이런 작업은 이미 알고 있는 감정을 그림으로 옮기는 일과는 다르다. 일상에서 우연히 마주친 장면이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적 반응을 일으키고, 작가는 그 반응의 실체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붓을 든다. 얇은 물감을 비비고 긋고 쌓아가는 행위는 대상을 묘사하는 동시에 불분명한 감각을 점차 구체화하는 과정이다. 동양화의 획과 호흡, 유화의 물성과 색의 중첩이 결합된 화면에서 명확하게 닫히지 않는 외곽선과 반복되는 붓질은 대상의 형태를 고정하기보다 시간과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상태를 드러낸다. 회화는 완성된 감정을 전달하는 수단이 아닌, 감정이 인식되는 과정을 포함하는 형식이 된다.

이번 전시 <예기치 못한 손님>은 이러한 흐름 위에서 풍경과 감정을 대하는 태도에 새로운 강조점을 둔다. 예기치 않게 찾아오는 감정처럼, 우연히 마주친 자연은 어느 순간 작가의 시선을 붙잡고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마음을 드러낸다. 작가의 이전의 작업이 불분명한 감정을 회화의 과정에서 조금씩 알아가고 정리하는 일이었다면, 이번 전시는 그 감정을 반드시 명확한 의미로 귀결시키지 않으려 한다. 감정의 탐색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회화가 도달해야 할 결론을 미리 설정하지 않는 것이다.

풀숲 사이의 작은 꽃과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 흐르는 물가의 새처럼 일상에서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자연에서 작가는 이들을 설명하기보다, 우연히 마주한 순간의 인상과 그때의 감정을 화면에 남긴다. 여러 색을 섞고 붓질을 반복하면서 자연의 형태와 분위기를 구성하지만, 그 감정이 무엇인지 하나의 답으로 정리하지는 않는다. <예기치 못한 손님>은 작가에게는 알 수 없는 감정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시도이며, 관람자에게는 익숙한 자연을 자신의 경험을 통해 다시 바라보는 기회를 제안한다.

-갤러리나우 큐레이터 유한식

 

[작가노트]

요즘 나는 매일 같은 길을 걷고, 같은 나무를 보고, 가끔 하늘을 바라보여 작업실을 오간다. 하지만 그 때마다 보이는 풍경들은 같은 장소임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같은 모습으로 보인 적이 없다.

우연히 만나는 그 순간의 물이나 풀들은 계절, 시간, 온도, , 습도 등의 자연적인 요소들 그리고 거기에 그 순간의 내 마음이 한 겹 더 쌓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 때 쌓이는 마음은, 도대체 언제부터 자리 잡았는지도 모를 만큼 오랫동안, 깊숙이, 하지만 무심하게 들어 앉아 있으며 지들끼리 마구 엉켜있기도 하는 듯하다. 그런 마음들이라, 그게 무슨 마음인지 알아차리기에는 너무 어렵다. 그렇게 고요히 숨죽이고 있던 그 마음들은 내가 어떠한 풍경을 마주하게 되면 비로소 아주 가느다란 감정을 입고서 나에게 발견된다.

그렇듯, 내가 그리는 풍경들은 장소와 대상이라기보다는 나도 모르게 자리 잡았던 감정들이 나에게서 발견되게 하는 트리거(trigger)가 될 수도 있겠다. 그 감정을 찾기 위해 난 붓을 들고, 왜 인지 모르지만 울컥과 움찔 그 어느 중간의 감정을 건드린 그 때의 그 풍경을 그려나간다. 얇은 물감으로 이리저리 비벼 보고, 그어 보고, 쌓아가기를 반복하다보면 어느새 그 감정의 실체들이 아주 조금은 뚜렷해지게 된다. 그렇게 점점 보여지는 그림을 보다보면 숨어있던 그 가느다란 감정이 무엇이었는지가 정리가 되고 그림은 어느새 마무리가 된다.

-김연수

 

 

[평론]

그림에 옮겨 심은 자연

 

김연수의 작품에는 이름 없는 자연물이 등장한다. 굳이 알아보려 한다면 정보가 나오는, 요컨대 특정 학술적 명칭이나 무슨 쓸모 등으로 분류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작품에서 중요하지 않다. 풍경은 이것저것 자유롭게 그려넣을 수 있는 융통성이 있지만, 보통 풍경화는 볼만한 무엇이 있다는 기대치가 있다. 그 기준에 의한다면 그의 작품은 이국적이거나 특별한 의미가 있거나 하는, 요컨대 그럴듯하고 주목할만한 것이 있는 풍경화에 미치지 못한 풍경이다. ‘나는 눈에 띄는 풍경을 그리고 싶은 것이 아니다. 강렬한 색이나 자극적인 구도로 시선을 붙잡는 그림보다, 우리가 매일 마주하지만 무심히 지나치는 아주 평범한 풍경을 바라보고 싶다고 말한다. 그는 중요 장면을 그냥 스쳐가고 그렇지 않은 것에 발길을 멈춘다. 작가는 롤랑 바르트가 [카메라 루시다]에서 대조한 두 개념처럼, 보편적인 문화적 코드(스투디움)를 깨는 요소(푼크툼)에 집중한다.

대량생산과 소비에 의존하는 문화는 철저히 스투디움을 요구한다. 딱 보면 의미가 바로 나와야 한다. 모든 것을 축약으로 파악하는 시대에 분류부터 평가와 이해까지 걸리는 시간은 짧아야 한다. 그 또한 인간을 넘어서 자동화 과정으로 넘어가고 있지만 말이다. 주변부의 타자에 끌리는 김연수 작품은 이 부분에 특히 자신이 없다. 바르트는 늘 단일한 사진의 공간에서 하나의 하찮은 것이 나를 끌어당긴다고 하면서 푼크툼의 실례를 보여준다는 것은 어떤 방식으로 내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라고 말한다. 언제나 정보나 흥미 등으로 약호화되는 스투디움과 달리, 푼크툼은 이름붙일 수 없기 때문이다. ‘푼크툼은 내가 사진에 덧붙이는 그러나 이미 거기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바르트). 바르트는 사진에서 개인적인 울림이므로 표지될 수 없는면을 발견하지만, 이미 그곳에 자연적으로 있었던 무엇과의 우연한 만남에서 시작하는 김연수의 작품 또한 그렇다.

작가의 눈에 닿은 하찮은 세부는 작품의 중심에 자리한다. 그 식물을 단지 작품에 옮기기 보다는 옮겨 심는다. 그곳에 있을 때의 복합적인 관계 또한 딸려온다. 관객은 작가가 의도하지 않은 부분에서 연쇄적으로 이끌릴 수 있다. 작은 풀이 작은 화면에 담긴 것도 있지만, 같은 크기의 화면들이 연결되어 또 다른 풍경으로 확장되기도 한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큰 작품은 5개의 패널이 스펙터클하게 연결된 초록 풍경이다 그것은 작가가 걸어가면서 봤던 시점의 연결이기도 하다. 관객 또한 이 대규모의 작품을 거닐며 볼 수 있을 것이다. 자연물이 있는 풍경은 정확히 무엇인지 어디인지 언제인지가 확실하지 않다. 작가는 의미와 연결될 구체적 맥락을 지운다. 거기에는 어디에나 있을 법한 초록 생명체들이 있다. 한창 때의 무성함이 담긴 각 패널에는 한 종이 아니라 여러 종이 얽혀있는 건강한 생태계를 이룬다. 누군가에게는 자유와 풍요가 아닌 혼돈과 무질서로 간주되어 없애버려야 잡풀이나 잡목일 수도 있다.

그가 작품에 옮겨 심은 잡초나 나무들은 누군가에 의해 심겨지거나, 돌봄이 없이 엄마 아빠가 바람으로 뿌린 씨앗에서 스스로 뿌리를 내고 땅에 그 뿌리를 박은 채, 계절의 눈치를 보면서 자란다.’ 일상과 관련된 풍경이 아니어도 그의 눈이 닿는 장면은 대개 비슷하다. 작업실에 오고 집에 가기 위해 아침저녁으로 통과하는 장소는 물이 다시 흐른지 오래되지 않은 그런 천()이다. 인공폭포 등이 조성되어 인기가 많아 먼 곳에서도 찾아온다는 곳이다. 누군가의 산책로가 누군가에게는 관광지가 될 수 있다. 그의 작품의 보이지 않는 배경인 홍제천은 인구 밀집 지역을 관통하면서 숨통처럼 터진 소중한 자연공간이다. 하지만 자연이라 하기에는 이미 문명의 손길이 많이 가해진 곳이기도 하다. 도시 정책에 의해 강처럼 물은 흐르게 됐지만 자연스러운 흐름은 아니다. 그래도 흐름은 흐름이다. 그의 작품 속 동식물도 그러한 흐름에 동참한다. 최초의 관객이었을 작가 자신도 흐른다.

흐르는 시점에서 흐르는 존재를 보기에 외곽선이나 의미가 분명치 않다. 장소든 대상이든 그것의 자세한 양상을 재현하지는 않는 애매모호한 풍경이다. 흐름은 근대의 특징이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액체 근대]에서 근대의 유동성과 이동성을 지적하면서 그 이유로 지속은 자산을 부채로 바꾸어 놓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근대는 그 시작부터 어떤 액화의 과정이다.’ ‘이동을 가로막고 제한하는 모든 것, 모든 육중하고 고체이고 무거운 것들도 지양된다, ‘이동하기 좋은 날렵한 육체와 몸매, 단출한 옷과 운동화 언제나 연락이 되어야 하는 유목민들이 사용할 수 있게 고안된 휴대전화, 일회용 소지품들은 즉시성의 시대를 으뜸으로 표상하는 문화적 징표들이다.’(지그문트 바우만) 김연수가 택하는 산책자의 입장이 그렇다. 도시 산책자가 바라보는 자연은 정원사나 농사꾼의 시점과는 다르다. 그의 예술은 소유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는 무상의 존재들이 안착하는 자리이다.

표현의 방식에 있어서는 액체나 기체의 특징인 유동성(fluidity)이 있다. 그의 작품에서는 바람과 물살에 몸을 누이는 풀 뿐 아니라 땅 속 깊이 뿌리를 내리는 나무조차도 흐르듯이 표현된다. 간혹 등장하는 동물의 경우 외곽선은 흐릿하고 순간적인 동작에 집중돼 있다. 그의 풍경에서 허무함과 자유로움, 외로움과 홀가분함 등이 느껴지는 것은 단지 여린 마음에서 나온 서정성을 넘어서 이동성과 유동성이라는 근대의 특징이 내재돼 있기 때문이다. ‘고체와 달리 액체는 그 형태를 쉽게 유지할 수 없다. 액체는 자신이 어쩌다 차지하게 된 공간보다 시간의 흐름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결국 액체는 공간을 차지하긴 하되 오직 한순간 채운 것일 뿐이다. 근대 역사에서 여러모로 새로운 단계인 오늘날의 속성을 파악하고자 할 때 유동성이나 액체성이 적합한 은유이다.’(지그문트 바우만) 이번 전시에 출품할 최근작에는 식물이 많다. 개천 주변에 자생적으로 자라난 풀들이 대부분이다.

작품 [머물 듯이 기웃거리는7]은 작은 화면을 꽉 채우는 꽃의 존재감이 있다. 보라색 꽃이 우거진 풀숲에서 작은 얼굴을 내민다. 작은 꽃은 주변 다른 풀들의 위세에도 불구하고 여기 내가 있다고 외친다. 침묵하는 매체인 회화에서 소리를 상상하게 하는 것은 메아리처럼 퍼지는 보라색 꽃 주변의 잎들이다. ‘머물 듯이 기웃거리는이라는 제목은 이번 전시에서 많이 사용된다. 그가 관심을 가지고 작품에 들여온 존재들이 그런 상황에 처해있기 때문이다. 나리꽃이나 수선화 등 그가 그렸던 작은 식물은 틈과 사이에서 잠시 정박하다가 사라지는 존재다. 어느 날 큰 계획에 따라 이전의 것을 싹 치우고 줄 지워 심어진 식물이 아니라, 그때그때 유연하게 생겨나 자리를 잡는 기회주의적존재다. 산책로는 지자체에서 관리하는 곳으로, 그곳을 지나는 많은 대중들이 사용하는 시설과 관리 대상이 있지만 그의 작품에 그런 구조물이나 인간 등은 등장하지 않는다.

작품 [머물 듯이 기웃거리는8]에서 배경의 빠르게 흐르는 물살은 이 작은 존재들이 생겨나고 이겨내고 결국은 스러지고 또다시 생겨나는 시간의 힘을 말한다. 전경의 갈대밭과 후경의 수변 풍경이 있는 [보이지 않는 숨결]에서는 따스함과 차가움, 머묾과 흐름이 대조한다. 그는 단순하게 두 요소를 대조시켰지만, 자잘한 구성요소로 가득한 수풀은 그 안에 많은 요소를 품고 있어 볼 때마다 다른 느낌이다. 뒤에 흐르는 물 또한 마찬가지다. 자연적 실재의 징표인 두터운 겹을 작품에 이어가고자 한다. 작가는 그 풍경은 단 한 번도 같은 모습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계절과 시간, 빛과 공기, 그리고 그 순간의 마음에 따라 풍경은 매 순간 아주 미세하게 달라진다. 나는 그 변화 속에서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아주 가느다란 감정들을 발견한다고 말한다. 작은 존재들에서 그가 보는 것은 빽빽한 생태계 속에서 가까스로 비집고 나와 생존하고 있다는 대견함만은 아니다.

작가는 그가 만난 길섶의 생명에서 의미나 기능으로 환원될 수 없는 미지의 타자를 발견한다. 생태학적으로 식물은 크기와 상관없이 지구의 모든 생명체를 가능하게 했던 거대한 존재다. 식물에 내재한 매혹과 신비는 인간과 격세유전적으로 맺었던 깊은 관계에 의거한다. 어둑한 숲을 그린 [너희는 달빛인 줄 알겠지]는 위험사회의 도시에서는 낭만적이라고 할 수만도 없는 풍경이다. 무엇이 나올지 알 수 없는, 전모가 밝혀지지 않는 초록덮개다. 현대의 화가에게서 필수가 된 것은 현장 드로잉을 대신할 수 있는 사진이다. 물론 김연수는 사진을 보고 그리지는 않는다. 그것은 단지 기억을 위한 도구이며 작업이 진행되어 가면서는 아무것도 보지 않고 그냥 그려나간다. 하지만 추상으로 귀결되지 않는 것은 추상 또한 쉽게 코드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무엇으로도 환원될 수 없는 자연적 실재를 신뢰한다. 특히 야간의 장면에서 강한 전경은 사진의 흔적이다. 그 흔적은 미소한 존재들이 빛을 발하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기억을 위한 사진 촬영은 형태와 배경 사이에 명암의 차이를 크게 했을 것이다. 그 덕에 이름 없는 풀은 화면 가득히 빛의 다발로 존재하게 됐다. 작품 [머물 듯이 기웃거리는12]은 어둑한 무렵 시선에 반응하여 빛을 발하는 한 무리의 밝은 꽃들이다. 작품 [노랑의 마음]에서 화면 가득 잡힌 노랑 꽃은 빛을 발한다. 작고 미미한 것은 빛의 비유로 인해 기념비적인 위상을 가지게 된다. 노랑 색감의 식물은 빛과 관련되는 식물의 생태를 떠올린다. 식물이 천상으로부터 내려오는 빛을 잡아 생성한 원소들은 생태계의 연결고리를 따라 지구 생명체의 중요한 에너지원이 됐다. 물론 식물이 아닌 것도 빛을 받는다. 작품 [해가 질 때 빛나는]이라는 시적인 제목은 모든 타자적 존재에 대한 작가의 연민과 감정이입을 말한다. 인간이 규정한 하루 24 시간 중에서 해가 지거나 뜨는 순간은 극히 짧다. 그 과도기의 시간에 빛을 발하는 미소한 존재는 다름 아닌 물을 건너기 위한 징검다리다.

그가 우연히 만난 자연은 색의 흐름으로 번역된다. 작품 [초록의 숲]에서 그는 명확하게 제목을 붙였지만, 그의 작품 속 색 초록은 확실하지 않다. 작품 [머물 듯이 기웃거리는13] 특정할 수 없는 색의 꽃들이 근접 화면으로 잡혀있다. 그는 작품의 색감에 대해 초록도 청록도 아닌, 핑크도 연보라도 아닌 이름 없는 색이라고 말한다. 원경이 푸른 작품 [보이지 않는 숨결]은 단 두 가지 색감으로 축약되었지만, 자연의 대표색을 반영한다. 마가레테 브룬스는 [여덟가지 색으로 풀어본 색의 수수께끼]에서 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인용한다. ‘16세기에 우주적 암흑의 그림자들이 같은 공기를 뚫고 진입함으로서 필연적으로 공기의 흰색이 파랗게 보일 수밖에 없다...공기의 파랑은 빛과 어둠이 합쳐진 색이다마가레테 브룬스는 본래 무색이며 공간, 즉 창공의 깊이에 의해 색을 빌려 받는 공기의 파랑을 언급한다. [보이지 않는 숨결]에서 후경과 대조되는 전경의 노랑빛은 파랑과 더불어 근원색에 속한다.

마가레테 브룬스는 이 두 가지 근원색에서 어둠과 빛이라는 양극을 본다. 두 색은 밤과 낮이 교차하듯이 자리를 바꿀 것이다. 김연수는 보통 두세가지 이상의 물감을 섞어 그린다. 그의 조색 과정은 자연적 대상이 습도, 온도, 바람, 안개 등이 섞여 매번 다른 색으로 나타날 수 있음을 말한다. 공기와 그 흐름은 간접적으로 형태도 변화시킨다. 수변에 빽빽한 풀숲은 바람에 따라 그들의 몸을 한 방향으로 눕힌다. 작품 [스쳐가는 어두운 바람]은 그 자체로는 눈으로 볼 수 없는 공기의 이동을 나무의 흐름으로 표현한다. 단색조로 단순하게 표현한 숲에서 스스로는 움직일 수 없는 나무는 바람을 통해 자신을 드러낸다. 그 열정과 슬픔, 환희와 고통 등을 바람결에 실어 보낸다. 무성한 식물 사이로 난 걸림돌 없는 길은 문명과 야생이 공존하는 모습이다. 작품 [이른 아침의 숨소리]의 식물은 왕성한 에너지를 내뿜어서 주변의 길은 신선한 기운으로 가득하다. 푸른 가로수는 식물이 뿜어내는 신선한 공기로 화면을 채운다.

그의 작품 속 식물은 물질이나 생명체이기보다는 세상을 이루는 근본적인 원소로 다가온다. 작품 속 동물은 때로는 외롭게도 때로는 자유롭게도 보인다. 바람같은 물살 속에 홀로 선 새의 날개를 움츠린 모습은 극도의 긴장과 집중 상태를 말한다. 생존을 위해 기회를 노리는 사냥꾼이다. 이 운명으로부터 자유로울 동물은 없다. 작가는 붓질과 일체화된 흐름 속에 새를 위치시킨다. 텅 빈 배경은 구체적 배경을 지우는 듯한 붓질이 남아있다. 같은 시리즈의 작품은 시간이 많이 지났음에도 사냥에 집중하는 새의 긴 기다림을 보여준다. 그는 식물이 등장하는 작품과 같이 [머물 듯이 기웃거리는]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노을지는 하늘을 배경으로 날아가는 새 또한 자기만의 의미 있는 행로를 따라 움직인다. 물 위의 새와 더불어 하늘의 새다. 자연에서 필연과 자유, 본능과 목적은 모순되지 않는다. 그의 자연은 대개 예상치 못한 상태에서 마주쳐. 우연히 맞딱뜨린 것들이다.

우연은 무의미로 흩어질 임의성과 자유를 동시에 내포한다. 일찍이 세계를 원자의 구성으로 봤던 고대의 원자론자들은 우연에 큰 역할을 부여했다. 우연은 변화의 요인이자 결과다. 작가가 발견한 것들은 다시 정확한 위치를 찾기 힘들고, 설사 다시 찾았어도 그때는 또 다르게 보인다. 도심의 인공 조성 하천이라 사람들이 많을테지만 사람은 발견되지 않는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들은 흐르는 물가에서 자라나는 다양한 잡초들로, 큰 물살이나 바람에 넘어져 있다가도 며칠 후 가면 다시 서 있기도 한다. 생명력 있는 존재를 보면서 자신의 작품도 눈에 확 띄지는 않아도 잔잔한 감동을 주기를 바란다. ‘이것은 풍경화가 아닌, 사회 속 약자들에 대한 이야기들이다....내가 관심을 가지고 보는 대상들은 우연히 발견된 인간에 의해 키워지지 않은 야생화, 들풀, 잡초가 우거진 숲과 나무 등의 식물들, 그리고 사라져버리는 구름, 파도 등이다.’(작가노트)

김연수의 작품은 서양화재료로 제작되었음에도 동양화처럼 담백하다. 그는 생 천으로 틀에 입힌 후 젯소를 바르고 작업한다. 대상을 정확히 재현하기보다는 감정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붓질이 남길 원해서 표면이 매끄러운 면천을 애용한다. 면천은 독일 유학 때부터 사용했다.연희동 작업실에는 올이 풀리는 면천을 처리하기 위한 재봉틀도 있다. 그는 유학 전에 한국에서 동양화를 전공했다. 동양화의 어법은 재료를 달리해도 남아서 화면을 계속 올리는 습관을 남겼다. 자연의 두툼한 실재를 표현하기 위해 쌓기가 중요하지만, 작가는 동양화나 유화의 경우 쌓기의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 그의 방식은 자연의 겹이 화면 안에 스미게 하는 것이고, ‘평면 안에서 3D가 나오는효과를 기대한다. 김연수는 나에게 풍경은 시간과 감정이 머물렀던 흔적이다. 나는 그 흔적들을 섬세한 붓질과 절제된 색으로 천천히 쌓아 올린다...그 풍경을 오래 바라본 끝에, 각자의 기억과 감정이 조용히 흔들리는 순간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이선영(미술평론가)

 

 

[약력]

김연수 (b.1984)

 

교육

2017.02 마이스터슐러, 국립 뮌헨조형예술대학 회화과 졸업 (Prof. Anke Doberauer)

2010.02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동양화과 졸업

2007.08 성균관대학교 미술학과 졸업

 

개인전

2026 ‘예기치 못한 손님’, 갤러리 나우, 서울

2025 ‘덤덤한 사색’, 갤러리 호호, 서울

2024 ‘Read More’, La Vitrine, Stems Gallery, Paris

2023 ‘마음둘곳’, Sonoart, 서울

2022 ‘네모 그리고 바다’, 갤러리 인, 서울

2021 ‘beautiful day’, Seloarts & C, 서울

2021 ‘Landscapes’, 8Colors, 서울

2021 ‘스쳐지나간_again’, 아트레온갤러리, 서울 <신진작가후원전>

2021 ‘Between Green’, ARTFLOW, Online

2020 ‘초록의 기억’, 갤러리 인, 서울

2018 ‘네모가 본 풍경’, Apt Seoul, 서울

2017 ‘스쳐지나간’, Bürgerhaus Unterföhring, 뮌헨

2016 ‘스쳐지나간’, 스페이스00연희, 서울

2016 ‘Vorüberziehen’, Club Hotel Robinson Ampflwang, 오스트리아

2010 ‘김작가의 고추밭’, 이앙 갤러리, 서울

2009 ‘서울 그리고 나무’, 코이누르 갤러리, 서울

2007 ‘연수 종이에 스미다’,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서울

 

2인전

2025 우와! ! 풍경 테라피, 도로시살롱, 서울

2025 ‘The Moment Between’, 갤러리 플레이리스트, 부산

2022 ‘모른체하는 눈들’, 화인페이퍼갤러리, 서울 (김연수/전은숙)

2022 ‘Indian Summer’, 무우수갤러리, 서울 (김연수/채복기)

2021 ‘사적풍경’, 금나래아트홀갤러리,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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