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들에게서 사진이 나오면 내 손가락에 장을 지지마! 김가중 사진론 서울시립경희궁미술관 서울특별시사진작가협의회(회장 정두원)주최
동영상 촬영 : 김재완 기자
필자가 혜화동에 사무실을 연지는 30여년 가량 된다. 많은 이들이 충무로로 나오라고 수없이 권했지만 꿋꿋하게(?) 대학로와 혜화동 로터리부근을 지켰다. 수많은 우리 회원들이 충무로에서 사진 일을 보고 혜화동까지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이동을 해야 되었고 이는 결국 필자가 사진 밥을 먹는 데는 크게 손해가 되었을 터이다.
필자의 성향을 유심히 보면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제도권에서 상당히 멀리 잇고 많은 이들과 활발하게 교류하는 편은 아니었다. 사진을 시작할 즈음부터 잡지 등에 많은 글을 기고를 하였기 때문에 필명은 꽤 알려져 있었지만 실제로 필자의 실체(?)와 프로필(?)을 아는 이는 퍽 드물었다. 실제로 필자의 경우 사람들이 많이 가는 장소 즉 선호하는 장소는 거의 가지 않는다. 아직 설악산이 어디 메에 있는지 알지 못하고 지리산이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본적도 없다. 산의 정상을 간곳을 대략 꼽아보니 약 7군데 정도 된다. 북한산 인왕산 남산 관악산 불암산 함백산 등 주로 주면의 산뿐이다. 바다도 마찬가지라 추암과 해운대 정도만 가보았을 정도다. 철따라 봄이면 벚꽃을 따라, 철쭉꽃을 따라 수달래를 따라 가을이면 내장산을 ....
사진 스타일이 주로 선 구상 후 촬영을 하다 보니 나의 바운다리 안에서 쉽게 접하고 늘 보고 늘 생각하게 만드는 장소를 주로 촬영하니 멀리 있는 잘 모르는 생소한 장소와 특히 이름난 명승지는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 몰론 촬영의 장소뿐만 아니라 사진을 하는 방식도 기존의 방식과 많이 다르다.
오래전에 암실을 가지고 인화확대를 직접 하던 시절 현상의 방식을 한마디로 개판으로 했다. 흑백 탱크현상의 경우 암실에서 릴에 필름을 감아 탱크 속에 넣은 다음 밝은 데서 현상약품을 주입 후 처리시간이 되면 약품을 쏟아내고 정지 처리를 한 후 정착약품을 주입하여 정착 후 수세건조의 순서인데 이과정이 끝날 때 까지 탱크의 뚜껑을 여는 것은 금물이다. 하지만 필자는 현상약품처리가 끝나면 뚜껑을 열고 필름을 꺼내 정지(그냥 물)액에 담갔다가 정착액에 담구는 편법을 사용했다. 이 과정에서 현상탱크에서 필름을 꺼내므로 빛에 노출되고 일반 물에 씻고 정착액으로 넘길 때 까지 필름에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물론 이 과정을 체계화 한 것이 사바티에효과라고 세계 사진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솔라라이제이션 테크닉이다.
하지만 이러한 특수한 테크닉을 원한 것이 아니라면 문제가 될 수밖에 없는 방식이지만 필자는 이 방식으로 현상을 하였다. 필자의 계산으론 이방식의 현상법이 사진에 미치는 악영향은 약 5000분의1정도라는 것이었다. 즉 사진이 약간은 손상을 입었지만 인간의 육안으로는 문제될 것이 없다는 것이 필자의 논리였고 이 방식을 사용하면 탱크하나에 수많은 필름들을 연달아 현상해내어 작업의 속도와 효율성이 매우 높다는 거였다. 즉 암실에 들어가 릴에 필름을 감아 약품이 들어 있는 탱크에 넣은 다음 암실에서 나와 밖에서 처리를 한 후 필름을 정착액으로 옮기고 또 곧바로 필름을 탱크에 넣고 하는 식이기 때문이다.
김승환 작
각설하고 당시에 인근에 있는 유명한 모대학교의 사진반(그 대학의 사진동아리)학생들도 자주 찾아왔는데 그 꼴을 보더니 “선생 사진인들께 스탠다드를 가르치시오?” 하고 정색을 하며 엄하게 훈계를 널어놓았다. 하진만 필자는 그때 유독 예술=자유로움에서를 심하게 주장할 때였고 또 이론이든 학문이든 기존의 것을 그대로 답습하기보단 필자의 방식으로 가설을 설정하고 그것들을 새로이 정립시켜 나가느라 밤을 새워 연구도 하는 등 필자의 나름으론 꽤나 까불고 있던 때였다.
“내가 너희들에게 충고하나 할 게, 너희들의 카메라를 통하여 작품이 나온다면 내 손가락에 장을 지지마, 모든 테크닉은 편법에서 나오고 기존의 스탠다드를 벗어 난 모든 것이 곧 테크닉이야. 너희는 너희 교수가 만들어낸 작품을 감상만 하다가 뒈질 놈들이야, 너희들 같이 고루한 사고를 가진 넘들에게서 어떻게 새로운 창작품이 나오겠는가? 사바티에 효과가 기존의 스탠다드에서 나올 수 있나? 만레이는? 모홀리나기는? 브렛송의 작품도 철두철미하게 연출되어 있고 배경과 주제의 관계와 설정이 교묘하게 계산되어 있어 그 계산상 가장 절묘한 순간에 셔터를 끊은 결정적 순간이 그이의 철학이야. 그러한 것들은 인간의 직관과 사고와 철학이 동일궤도상에 일치되는 순간에 파생되는 것이지 너희들처럼 잘 배우고 잘 외우고 배운 것을 그대로 한 치의 틀림도 없이 잘 답습한다고 되는 것이 곧 예술은 아니야.”
** 브렛송에 대한 필자의 견해는 공모전에 내면 대부분 작품들이 상위입상이 가능하다는 거였다. 배경을 고려하여 조형적인 예술적 미의식을 부각시키고 그 전경에 배경과 절묘하게 부합되는 모델을 배치하여 구성과 작가의 의도가 일치되는 결정적 순간에 셔터를 끊은 작품들이 그의 주요한 모티브였다.
** 자료 작품은 아래의 전시회 때 촬영해온 것이다.
전시명 : 사진미학의 거장 앙리 카르티에 - 브레송 전 " 결정적 순간 "
전시장소 :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전시기간 : 2012년 5월 19일 ~ 9월 2일 까지
브렛송은 사진의 배경을 매우 중시했으며 전경에 배치한 모델과의 설정을 통하여 자신만의 스토리텔링을 구축하였다. 특히 그는 전직 화가답게 전경 중경 원경이란 구도의 원칙과 황금비율을 매우 중시했음을 엿볼수 있었다. 이러한 스타일의 작품은 공모전에서 매우 강세를 보이는 특징이 있다. .